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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과 철쭉이 어우러진
 부운치에서 팔랑치 가는 길
 사람들과 철쭉이 어우러진 부운치에서 팔랑치 가는 길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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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과 철쭉이 어우러진 팔랑치에서 바래봉 가는 길
 사람들과 철쭉이 어우러진 팔랑치에서 바래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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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산 시간이 넉넉하니까 옛날 얘기나 하며 즐거운 산행하세."

산행에 함께한 동창 네 명 중에 한 친구가 산행 들머리에서 한 말이다. 매달 한 번 가는 동문산악회의 이번 산행지는 지리산 바래봉이었다. 이곳은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습과 닮았다 하여 발악(鉢岳)또는 바래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신록이 점점 짙어지는 5월, 봄의 향기는 깊은 산 속까지 스며들어 있고 휴일을 맞아 진분홍으로 물들어 있는 철쭉을 보기 위해 바래봉을 찾은 산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정령치(1172m)-고리봉-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용산마을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가기로 했다. 전날 비가 내려 촉촉한 길은 먼지도 나지 않은 푹신한 흙길. 정령치에서 고리봉(1304m)은 가파른 길이다. 늘 그렇듯이 숨이 턱까지 찰 즈음 정상에 다다랐다.

 연초록 이파리와 꽃망울이 애틋하다.
 연초록 이파리와 꽃망울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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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분홍 철쭉 세상이다.
 진분홍 철쭉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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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산행 정상은 바래봉이지만 초입부에 있는 고리봉이 제일 높다. 시원한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바래봉을 5km 남겨 놓고 여러 사람이 가져온 진수성찬에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 후 친구 한 명(?)을 더 늘려 산행을 계속했다. 그 친구는 스마트 폰에 저장된 음악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이나 행군(소풍)을 갈 때는 소형녹음기나 카세트에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노래에 맞춰 고고 춤을 췄는데 손바닥만 한 폰 속에는 수많은 곡들이 들어 있다.

세걸산에서 부운치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 있어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구간이다. 조금 산행이 편해서 그랬을까. 스마트폰에서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스모키(Smokie)의 노래 'Living Next Door To Alice'다. 가사내용은 이렇다.

"나는 옆집에 사는 앨리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매일 창문을 활짝 열고 그녀 집을 보곤 한답니다. (중략) 앨리스를 태운 리무진은 가버렸어요. 그러나 옆 집 앨리스를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천만에, 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래봉 삼거리에서 바래봉 가는 길(1)
 바래봉 삼거리에서 바래봉 가는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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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래봉 삼거리에서 바래봉 가는 길(2)
 바래봉 삼거리에서 바래봉 가는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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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신나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묻는다.

"우리도 지금 짝사랑 할 수 있을까? 옆집 아줌마를..."
"짝사랑도 생각할 수 없는 나이인데 그것도 옆집 아줌마를... 꿈속에서도 불가능해."
"저 친구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마누라한테나 잘 보여."
"그래, 아침에 눈 떴다고 맞지나 말고."

잠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가볍게 던진 질문에 친구들에게 언어 폭탄을 맞고 말았다. 50대 중반 아저씨들의 슬픈(?) 대화다. 이젠 짝사랑도 못할, 해서는 안 되는 나이인가. 이래저래 한바탕 떠들고 나니 철쭉꽃들이 두런두런 얘기하고 있는 철쭉군락지인 팔랑치다.

발긋발긋한 철쭉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직 만개한 철쭉보다는 봄의 화려한 외출을 준비하고 있는 꽃망울이 더 예쁘다. 연초록 이파리나 꽃망울이 더 애틋한 것은 나이 탓일까.

 바래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1)
 바래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1)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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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래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2)
 바래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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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둘은 바래봉 삼거리에서 하산하고 나와 다른 친구만 바래봉(1165m)에 올랐다. 바래봉 표지석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다.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움직일 수 있는 동안 흔적과 추억을 만든다. 오늘 우리도 싱그러운 봄의 한복판에서 철쭉 길을 걸으며 진분홍 추억을 그렸다. 깊고 너른 품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어머니 산, 지리산이 온몸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하산하는 길에 요즘 중년층한테 인기가 많은 가요 중에 가사 한 소절이 생각나 불러본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첨단정보라인 6월호에 게재합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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