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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2002년 봄, 여성계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한바탕 벌어졌다. 한 페미니스트의 '박근혜 공개 지지'를 놓고 벌어진 여성계 내부 논쟁이 그것이다. 논쟁은 '초강력 아줌마 페미니스트'로 불렸던 최보은(당시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씨가 당시 월간 <말>과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그를 찍겠다"라고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내가 '출마한다면 박근혜 의원을 찍겠다'고 공언할 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여성정치 참여현실의 참을 수 없는 후진성에 대한 역설적, 반어법적 수사였다. … 박근혜가 구체적 화두로 다가온 것은, 그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주자로 나선 뒤였다. 그전부터 이 땅에서 여성의 참정권 행사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여성진영은 왜 참정권 행사를 여성 독자의 이해관계에 기반해서 바라보지 않고 '진보진영'의 틀 속에서 바라보려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2002년 월간 <말> 3월호, 80∼81쪽)

여성 정치인 가운데 가장 대권에 근접한 '박근혜'를 통해 여성의 현실정치 참여를 본격화하자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기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여성주의 시각'으로 여성의 현실정치 참여를 적극 기획하고 실행하자는 도발적인 제안이 깊게 깔려 있었다.

최씨의 '박근혜 공개 지지'는 여성계 내부에 '논쟁'과 '논란'을 함께 불러왔다. 지난 2002년 월간 <말> 4월호에서는 또다른 페미니스트들('조현옥-장정임-김정란')의 릴레이 논쟁이 벌어졌고, 장정임씨는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대표직을 그만두어야 했다(관련기사 : "박근혜는 여성주류화의 현실적 대안"... "박정희와 지역주의 그림자에 불과"). 

"나는 왜 '여성 주류화' 대안으로 박근혜를 지지했나?"

 최보은씨는 2002년 월간 <말> 3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의원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최보은씨는 2002년 월간 <말> 3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의원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최근 기자는 우연히 관련기사를 다시 접하면서 당시 논쟁 구도에서 '박근혜 지지' 쪽에 서 있었던 최보은씨와 장정임씨가 '지금의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그들이 지지했던 '박근혜'가 대권주자에만 머물지 않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을 얻었고, 약 2년여 동안 그 권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평가할 근거들이 지난 2002년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4일 오전 '박근혜 공개 지지 논쟁'의 여파로 살류쥬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장정임씨와 연락이 닿았다. 간호장교 출신의 시인이자 여성과 교육 분야 등에서 활동해 온 사회운동가였던 장씨는 2002년 논쟁 당시 '박근혜'를 '여성 주류화의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했다.

그는 최씨의 '박근혜 공개 지지'를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여성대통령 만들기 진입이란 실현가능성을 향해 놀랍고 용감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내가 최보은씨 말에 쌍수로 동의한 것은 그의 제안이 무력감만 가지고 말로만 여성주류화 선언을 외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으켜 '여성대통령 만들기'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우리가 만약 박근혜 같이 대중성 있는 여성과 연대하여 가열차게 노력한다면 여성대통령에 대한 반여성적인 정치적 환경은 조금이라도 다르게 바뀔 것이다. … 안타깝게도 이미경 의원이나 추미애 의원은 현실적으로 박근혜만큼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 선거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 아니라 유권자 현실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여성후보로서 박근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2년 월간 <말> 4월호, 87∼88쪽)

장씨는 "나는 박근혜를 여성이란 마이너로 보았다"라고 전제하면서 "박근혜가 여성이기에 남성과는 다른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박근혜 난장'이 한번 크게 벌어졌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장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당시 아버지(박정희)를 문제삼아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에 나오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연좌제라고 생각했다"라며 "남성들은 그런 식으로 제지받지 않는데 여성만 이렇게 특별하게 제지하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가 쓴 글도 봤더니 굉장히 큰 아픔을 겪은 평범한 여성이었다. 부모를 모두 잃는 아픔을 겪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등 다른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도와주고 동정해야 할 존재였다. 그리고 꼭 박근혜 의원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지만 (당시 여성 정치인들 가운데)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렇게 확률이 높은 사람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명숙 장관도 훌륭하고 존경하지만 이런 분들은 나오더라도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진보진영에 있다고 해서 보수 여성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것을 반대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여성 지위를 좀 더 향상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최보은씨 생각에 동의했다."

장씨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선'과 '후'가 있다"라고 전제한 뒤, "여성운동하는 데도 먼저 밑바탕을 깔아놓아야 한다, 그렇게 양이 많아지면 질이 좋아진다"라며 자신의 논리를 이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운동(세력)이 고르지 말고 (최대한) 많이 참여하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양이 많아지면 질이 좋아질 거니까. 누군가는 잘하고, 누군가는 못하지만 결국 여성이 발전하게 된다. 몇 년 전 김해지역 새누리당은 어느 여성단체의 괜찮은 사람에게 비례대표를 줬다. 그 (도)의원이 홍준표 지사가 무상급식에 반대할 때 혼자 일어나서 (홍 지사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야당 의원들보다 더 진보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면 물이 좀 맑아진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남성에게 보이는 주류 사회의식으로 가득차 있어"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 창업보육 현장방문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 창업보육 현장방문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하지만 장씨가 바랐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왔지만 2년여 국정운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늘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장씨는 "당시(2002년) 내가 생각했던 박근혜 의원과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좀 다르다"라며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약간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고백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마이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가 (여성이라는) 마이너였기 때문에 (남녀, 사회) 불평등에 관한 감수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약자를 보는 생각이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실망했다. 사람 쓰는 것을 보니 인재풀이 너무 없다. 주변에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불쌍할 정도로 바람직한 동지가 없어 보인다.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이너 감수성'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더 열심히 챙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성에게 보이는 '주류 사회의식'이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도 실망했다."

장씨는 "당시 박근혜 의원을 (크게) 기대해서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라며 "여성이 대통령을 못할 이유가 없고,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여권이 신장된다고 봤기 때문에 지지했다, 그 생각에는 변함 없다"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실망한 것은 아니다. 기대한 바가 크지 않아서 실망도 크지 않다. 다만 타인의 입장이나 다른 계층을 생각하는 여성성, 감수성이 있게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일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엄청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 되는 남성 정치인들도 없었다."

장씨는 "박 대통령이 외롭게 힘들었으니까 좀 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으로서 부족함이 있었다"라며 "일은 사람이 하는 거여서 어떤 사람을 앉히는지가 중요한데 박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 쓰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자기한테 잘하거나 자기 말을 잘 들을 사람이 아니라 누가 더 능력있는지를 열어놓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도 들으면서 정파,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해서 썼으면 좋겠다. 자기한테 충성하거나 옆에 있다고 능력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 말만 믿으면 일을 제대로 못한다. 박 대통령이 그런 면에서 공부를 덜하고, 국가경영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것 같다."

장씨는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실망스럽지만 특별히 더 실망스럽지는 않다"라며 "여성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여성 대통령이 잘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그림자론, 박근혜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

2002년 논쟁 당시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최보은과 장정임은 언제까지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이제는 박근혜를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보아주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라며 "나는 박근혜가 아버지의 유산을 단호하게 정리하지 않고, 계속 그 신화를 누리려는 한 박근혜는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와 육영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반박했다.

"박근혜는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도 없이, 비이성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신화적 아우라에 감싸인 채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박근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신화의 살아 있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박근혜임이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아니다. 박근혜는 언제나 박근혜의 타자이다."(2002년 월간 <말> 4월호, 90쪽)

김 교수는 "박근혜를 인정하는 것은 박정희를 완전시 복권시키는 일이며, 그것은 수십 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민주화의 역사적 의미를 완전히 무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장씨는 이러한 김 교수의 반박을 "틀렸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렇게 본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라며 "왜 남성의 경우 친일한 아버지는 꾸짖지 않으면서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만 문제삼아야 하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가 아니다. 박 대통령에게도 뭐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다. 대통령에 나올 권리도 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그림자'라는 김 교수의 반박은) 박 대통령 개인에게 과도하게 많은 짐을 지우는 거라고 본다."

이어 장씨는 "현재의 정치를 박 대통령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싶지 않다"라며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지만 (특정한) 누구만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평가를 놓고 볼 때 박 대통령만 특별히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우리가 언제 박 대통령에게 엄청나게 기대해서 도와준 적 있나?"라고 말했다.

"요즘 보면 노인들이 노령연금 받아서 아주 좋아한다. 자식들이 10원도 안 주는 노인들은 노령연금조차 못받으면 정말 살기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어렵게 했지만 이것 하나는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그렇게 안해줬다. 노인들한테 돈 줘야 한다면서 노인을 표로만 이용했지 노인복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장씨는 "저는 일찍부터 사회변혁에 힘을 보태기 위해 교육계와 지역, 현장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라고 토로했다. "진보진영과 '민주당'에도 실망했다"는 그는 "인터뷰 논지가 '박근혜에 실망했다'는 식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장씨는 "최보은씨처럼 (전혀 다른 생각으로 우리를) 환기시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2002년 '박근혜 공개 지지'가 정치·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논쟁이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런데 장씨와 최씨의 바람처럼 '박근혜 지지'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작동했을까? 그 도발적이고 뜨거웠던 논쟁을 촉발했던 최보은씨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장정임#박근혜#최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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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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