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발생한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가운데, 육군은 1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해 이번 사고가 계획된 범행이라고 밝히고 있다. 난사 이유로는 가해자인 최아무개(24)씨가 남긴 메모를 통해 삶에 대한 회의와 낮은 자존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고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14일 오후, 2박 3일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예비군들을 만나 가해자 최씨를 중심으로 사고 상황을 재구성했다.
[결심] 계획된 범행... 전날 밤, 유서 남겨
예비군 2년 차인 최씨는 537명의 다른 예비군과 함께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52사단 210연대에 입소했다. 2박 3일간의 동원 훈련을 받기 위해서다. 동원 훈련은 현역과 예비군이 숙박하며 병기본·정신교육·주특기 훈련 등을 받는다. 부대는 서울 청계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울 강동·송파구에 주소지를 둔 이들이 주로 훈련을 받는 곳이다.
최씨는 7중대에 속해 304호 생활관을 지정받았다. 생활관에는 열대여섯 명의 예비군이 함께 생활했다. 혼잣말을 하는 등 동료 예비군들이 최씨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관심 있게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경기도 연천군의 한 육군 사단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3년 8월 전역한 최씨는 부대에서 B급 관심 병사였다. 다른 예비군들처럼 최씨는 K-2소총을 지급받았다.
최씨는 첫날밤 불침번 근무를 섰다. 이날 오후 9시 취침 점호가 끝난 뒤 가지고 있던 손바닥 크기의 노트에서 두 장을 뜯었다. 그는 3층 중앙 계단에 앉아 볼펜을 눌러 글을 썼다. 예비군 정아무개(27)씨가 "불침번이세요? 뭐 써야 돼요?"라고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편지 쓰는 거예요."정씨는 속으로 '예비군이 편지를 쓰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요즘엔 워낙 이상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씨의 메모는 다음날 세상을 놀라게 할 사건을 예고하고 있었다.
[준비] 통제 사각지대..."왼쪽 끝 1사로가 좋다"
지난 13일, 7중대의 오전 일정은 사격 훈련이었다. 최씨 등 예비군들은 지급받은 소총을 들고 부대내 '동원 훈련 사격장'으로 향했다. 사격장에는 40여 개의 시멘트 계단을 오르면 좌우에 10개씩 20개의 사로(사수가 사격을 하는 자리)가 있다. 가운데에 사격 통제실이 있어서 방송으로 사수들과 조교들을 통제했다. '사격장 안전 수칙'에는 '총구는 하늘은 또는 표적을 향한다', '표적 외에 사람 또는 물체에 조준을 금한다'고 적혀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최씨는 다른 예비군들에게 "현역 때 1사로에 가야 사격이 잘 되더라, 1사로가 좋다"는 말을 했다. 예비군 순서대로 사격이 진행돼야하지만, 결국 최씨는 1사로에 들어가기 위해 자리를 조정했다.
1사로는 20개 사로 중 좌측 끝이다. 이 자리는 통제관과 조교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였다. 당시 좌우측 사로에 3명씩 6명의 병사들과 장교 3명이 예비군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병사 1명당 3~4명의 예비군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차례가 되자 최씨는 예비군 19명과 함께 사로에 들어가 엎드렸다. 사로는 2미터 간격이었다. 사수들은 소총을 내려놓고 길이 36cm의 철제 고리에 연결했다. 총구를 전방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헤드셋을 꼈다.
이들은 곧 탄창에 장착된 실탄 10발을 지급받고 탄창을 소총에 삽입했다. 그 뒤에는 다음 사격 차례를 기다리는 20명의 부사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격 통제관인 6중대장이 확성기로 사격 명령을 하자, 사수들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실행] 총기 연결 고리푼 뒤 부사수부터
"탕탕탕탕탕~"사수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최씨도 25미터 앞 표적지를 향해 실탄을 한발 격발했다. 표적지 뒤로 우거진 숲은 총성의 전파를 막아주고 있었다.
최씨는 두 번째부터 더 이상 표적지를 향해 총을 쏘지 않았다. 최씨는 갑자기 총에 걸린 고리를 풀고 일어나 다른 예비군을 향해 쐈다. 최씨 뒤에 서 있던 부사수 윤아무개(24, 사망)씨의 오른쪽 목을 향했다.
이어 총을 오른쪽 사선을 향해 사격했다. 2사로 안아무개(25, 중상)씨, 3사로 박아무개(24, 사망)씨, 5사로 황아무개(22, 중상)씨가 쓰러졌다. 일곱 발 난사 뒤 최씨는 총구를 자신의 이마로 가져가 목숨을 끊었다. 최씨의 탄창에는 실탄 1발이 남았다. 이날 오전 10시 45분경이었다.
7중대장이 "사격 중지"를 두 번 외쳤다. 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내려가."우측 14사로에서 사격 중이던 박아무개(27)씨는 7중대장의 첫 '사격 중지'를 듣지 못했다. 헤드셋 때문이었다. 네 발을 쏘고 나서 두 번째 '사격 중지'를 듣고 헤드셋을 벗었다. 7중대장이 "내려가"라고 외치자 총과 탄을 그대로 두고 내려왔다.
내려오던 도중 좌측에 보니 예비군들이 쓰러져 있었다. 전투모와 탄띠, 전투화가 그대로 뒹굴고 있었다. 예비군 한 명의 얼굴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박씨는 탄창이 터져 부상을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는 심각했다.
사격장 내 구급차에 대기해있던 의무 지원관과 의무병들이 사로로 올라왔다. 심폐 소생술을 하고 쓰러진 사람들을 차량에 태웠다. 사격장 뿐만 아니라 화생방, 각개전투를 받고 있던 다른 중대의 훈련은 중단됐고 예비군들은 생활관에 대기했다. 생활관에서는 "사고 났대요"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일부 예비군들은 불안해했다. 군은 사고 상황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수습] 훈련 중단... 목격자 50여 명 정신과 치료
예비군들과 현역병 등 목격자 50여 명은 이날 오후 강당에 모였다. 이들은 국군수도병원 소속 군의관들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치료를 받았다. 군은 원하는 예비군들에게는 사고 확인증을 끊어 언제든지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나머지 예비군들은 부모에게 전화해 안부를 전했다. 정보 보안상 휴대폰을 수거했지만 부대에서도 휴대폰을 잠시 돌려줬다. 예비군의 전화를 받은 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로 예비군들은 조기 퇴소를 원했다. 하지만 군은 예정대로 2박 3일의 일정을 채웠다. 예비군들은 군의 통제를 따르며 차분하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사격이 예정돼 있던 한 생활관에서는 "말 없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웅성거리기도 했다.
예비군들은 14일 오후 2시에 퇴소했다. 군은 45인승 버스를 동원해 예비군들을 인근 양재시민의 숲역과 복정역으로 실어 날랐다. 복정역에서 만난 사고 목격자 박씨는 "총기 안전 고리가 (우연한) 사고를 막을 수 있지만 (의도된) 사건을 막을 수 없다"면서 "의지가 있으면 고리를 언제든지 스스로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사고는 예견돼 있었다. 군은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최씨가 지난 4월 22일 친구에게 '5월 12일 난 저 세상 사람이야, 안녕'이라는 등 자살을 암시하는 휴대 전화 문자 10건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사고 후 최씨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영원히 잠들고 싶다.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박증으로 되어간다. (중략) 그리고 미안하다. 모든 상황이 싫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