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저 장사를 위해 여행하는 것은 아니라네
뜨거운 바람이 우리의 타는 가슴을 덮치는구나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려는 욕망을 쫓아
우리는 사마르칸트로 황금빛 여행을 떠나네 - 제임스 일로이 플레커 '사마르칸트로 떠나는 황금빛 여행'(프랜시스 우드, <문명의 중심 실크로드> 중)
황금빛 사막, 끝없이 늘어선 대상의 낙타들, 오아시스, 이국의 미녀들…. 제임스 일로이 플레커의 시 '사마르칸트로 떠나는 황금빛여행'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인은 한 번도 중앙아시아에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시는 오랜 세월 동안 실크로드를 수식하는 관용구나 관광 슬로건으로 쓰였고, 실크로드에 환상을 가진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깃발이 돼 나부꼈다.
사실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다. 비단과 사치품들이 로마와 중국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중개상을 거쳤다. 오아시스에 점점이 박힌 나라들은 중계무역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고, 그 문화가 다시 동으로 혹은 서로 퍼져 나갔다. 실크로드는 그 점과 점이 만나 길이 된 셈이다. 점을 따라 사방팔방 이어진 길들은 무수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보따리, 그 중심에 사마르칸트가 있다.
긴 두개골의 비밀 사마르칸트. 여행자들의 환상 속 오아시스 왕국이다. 이 도시의 푸른 돔은 둔황의 사막과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오래된 도시는 한때 소그드인의 나라인 소그디아나의 수도였다. 당시 이름은 아프라시압이었다.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아프라시압 언덕을 방문할 수 있다. 한때 요새였던 옛 도성이다. 하지만 바싹 마른 황야에 다 무너진 진흙 벽돌만 남아있을 뿐이다. 언덕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아래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건물 기둥, 골호(죽은 자의 뼈를 담는 그릇), 철제 칼,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테라코타 신상 등 소그디드인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7세기 후반에 그려진 채색벽화다. 2미터 높이의 거대한 벽화에는 사마르칸트 왕을 알현하는 각국 사신들이 그려져 있다. 사실 빛이 바래서 형태만 남아있지만, 그 줄 끝에 조우관을 쓴 사내 두 명의 모습이 보인다. 시안에서도, 둔황에서도 만났던 한반도인들이다. 시기로 보아 이 먼 곳까지 사절을 보낸 고구려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작 내 관심을 끈 건 몇몇 유골들이다. 어떤 유골은 머리뼈가 상당히 길다. 마치 영화 <콘헤드>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히스토리HD의 '고대의 외계인' 방송내용이 떠올랐다.
고대 이집트의 왕인 아크나톤과 투탕카멘의 두개골이 기형적으로 길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나 멕시코나 페루 등에서도 정수리가 긴 두개골이 발견됐다. 그러고 보면 김해 지역에도 이마가 납작한 편두(褊頭) 인골이 발견됐다.
이렇게 동서양에 걸쳐 있었던 편두 풍습. 모든 내용이 '기-승-전-외계인'으로 끝나는 그 방송에서는 이런 편두 풍습은 정수리가 긴 최초의 외계인을 숭상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다. 하지만 이곳의 긴 두개골은 그런 흥미진진한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노예를 구분하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면 판자를 대고 끈으로 동여매 긴 두개골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귀한 존재를 기리기 위해서가 아닌 평생 부려먹기 위한 끔찍한 표식이었던 것이다.
사랑은 달콤한 술처럼 소련이 무너지며 중앙아시아의 각 나라들은 단합의 상징이 필요했다. 키르기스스탄은 민족 영웅 마나스를, 타지키스탄은 타직 민족의 대제국을 세운 소모니왕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은 정복자 티무르를 내세웠다.
소그드인의 나라는 8세기 아랍인의 침략으로 무너졌다. 그 후 이란과 투르크의 점령을 받다가 14세기 투르크-몽골 부족에서 태어난 티무르가 이곳에 다시 제국을 세웠다. 티무르는 30년간의 정복전쟁을 통해 바그다드, 델리, 다마스쿠스, 앙카라, 이스파한 등 지중해에서 북인도에 이르는 대 제국을 통치했다. 그에게 저항한 도시는 두개골로 쌓은 끔찍한 피라미드가 세워졌다고 할 정도다.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레기스탄 광장이나 비비하눔 모스크와 같은 건물들은 이전 중앙아시아에서는 없었다. 그가 전쟁에서 한번 승리할 때마다, 그 나라의 이름난 건축가와 기술자, 예술가 등이 사마르칸트로 잡혀 왔다. 그는 정복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그것을 건축물을 통해 발현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화려한 건물을 지은 티무르는 정작 유목민의 습성을 못 버리고 사마르칸트 외곽에서 야영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 건물은 그저 승리의 트로피였다. 그의 고향인 사흐리사브의 악사라이 궁전에는 "누가 내 힘을 의심하면 내가 지은 궁전을 보여주라"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비비하눔 모스크다.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을 짓고자 그는 일꾼들에게 고기와 동전 등을 던져주며 사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모스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티무르가 아니라, 그의 애첩 비비하눔이다.
티무르는 애첩 비비하눔을 위한 모스크를 짓기로 했다. 온갖 값진 재료와 각국의 이름난 일꾼들을 불렀다. 그가 전쟁에서 돌아오면 모든 공사가 끝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치 하나가 계속 미완성이었다. 이란에서 온 젊은 건축가가 아치의 완성을 조건으로 비비하눔에게 구애 중이었던 것이다. 그가 원한 것은 단 한 번의 키스였다. 왕의 애첩인 비비하눔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인과의 키스를 허락하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건축가는 완강했다. 고민 끝에 비비하눔은 화려하게 채색된 달걀을 가져다놓고 그를 불렀다. "이 중 특별한 달걀을 하나 가져가세요." 젊은 건축가는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안은 달걀일 것이다. 비비하눔은 '어떤 여인이든 겉모습만 다를 뿐 알맹이는 같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건축가는 다시 비비하눔을 찾았다. 그의 손엔 두 개의 술잔이 들려있었다. 양 술잔에는 모두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당신이야말로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비비하눔은 어느 술잔도 선택할 수 없었다. 한 술잔엔 차가운 샘물이, 한 술잔엔 투명한 와인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젊은 건축가는 그녀에게 겉모습은 같더라도 그 알맹이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의 기지에 비비하눔은 흔들리고 만다. 결국 한쪽 뺨을 허락한 비비하눔, 그녀의 뺨에는 붉은 흔적이 남고 말았다. 전쟁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비비하눔의 낙인 같은 붉은 반점을 보고 그 내막을 알게 된다. 화가 난 티무르는 비비하눔을 높은 모스크의 미나렛에서 떨어져 죽게 한다. 그리고 젊은 건축가는 날개를 달고 도망가 버렸다. 머리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가슴이 흔들리는 게 사랑이다. 어쩌면 젊은 건축가가 가져온 한 잔의 술이 그녀를 취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티무르는 죽고, 비비하눔 모스크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애첩 비비하눔은 사랑의 상징이 돼 사마르칸트에 영원히 살아있다.
티무르의 저주 이 기이한 정복자 티무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명교류학자 정수일은 그를 두고 '사건 창조적 위인'이라고 할 정도다. 티무르는 1415년, 69세의 나이로 명나라를 공격하러 가다가 객사했다. 한겨울에 그 노구를 끌고 중국까지 간 것에서 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죽자 각 지방은 분열됐고, 그가 세운 대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사마르칸트에는 '구르 에미르'라 불리는 티무르의 무덤이 있다. 티무르와 일가족의 무덤이다. 그의 석관은 옥으로 돼 있는데 단일 덩어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하지만 지상에 놓여있는 석관들은 가짜다. 진짜 관은 도굴을 피하기 위해 지하에 따로 안치돼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그의 무덤에는 티무르의 휴식을 방해하는 이는 누구든 저주한다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1941년 6월 21일, 러시아의 인류학자들이 스탈린의 명령으로 그 관들을 열었다. 그중 한 시신은 오른쪽 다리가 불구였다.
실제로 티무르는 20대에 전투에서 한쪽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티무르는 타메를란(Tamerlane)이라 불리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는 티무르(Timur the Lame)가 와전된 이름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6월 22일 새벽, 독일의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티무르의 저주가 실현됐다고 믿었다. 결국 스탈린이 그 유골을 다시 사마르칸트로 돌려보내고 관뚜껑을 닫았다. 1942년 12월 20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 달 후 드러났다. 독일군의 무패 신화가 무너졌던 것이다.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세는 연합군에게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너무나 기괴하다. 이렇게 티무르는 자신의 사후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로 떠나는 황금빛 여행, 이야기 보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정보]- 우즈베키스탄 비자우즈베키스탄 비자는 발급도 까다롭고 법규도 혼란스럽다.
1. 우즈베키스탄 방문자는 72시간 내 거주등록이 필요하다. 거주등록증은 정부에서 인정한 호텔 및 게스트하우스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반드시 비자와 함께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2. 유효기간과 실제 체류일이 다르다. 보통 다른 나라 비자들은 입국일에서부터 30일 체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체류기간이 남았더라도 유효기간이 끝나면 비자 효력이 사라진다.
- 우즈베키스탄 비자 발급받는 법초청장을 발급받은 후, 대사관에 신청해야 한다. 초청장 발급에는 인적사항, 현지 체류 주소, 영문재직증명서, 여권 사본이 필요하다(기자, 작가, PD 등 미디어 계통 종사자는 비자 발급이 거부될 수 있다).
1. 발급대행 업체에 맡기는 방법. 하지만 업체에 따라 패키지 투어나 호텔을 예약하지 않으면 발급이 불가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2. 비자 직접 신청하기: ① 이메일 초청장 발급 받기(
http://www.stantour.com/ USD $70) ②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사이트(
http://www.uzbekistan.or.kr/)에서 신청서를 작성 후 출력. ③여권, 신청서, 여권사본, 증명사진을 가지고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방문(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76-1 외교센터 7층 702호) ④수수료 9만 원 납부 ⑤비자 발급 완료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