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일종의 여행서인 것 같다. 책 속 주인공이나 화자는 결코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 이리저리 걷고, 때론 뛰고, 때론 누군가에게 채이고 상처받기도 하면서 그들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그러는 중에 경험을 낳고, 생각을 낳고, 새로운 인연을 낳고, 새 삶을 낳는다.
모든 책은 일종의 여행서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을 여행서라 부르진 않는다. 여행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던 누군가의 발자국이 오롯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책을 우리는 여행서라 부른다. 여행서를 읽는다는 건, 그래서 자연스레 누군가의 발자취를 뒤늦게 쫓으며 상상으로나마 여행을 하는 것이 된다. 때로는 직접 하는 여행보다 이렇게 상상으로 하는 여행이 더 재밌을 때도 있다.
하루키가 말하는 여행
하지만, 여행기라고 해서 다 재미있는 건 아니다. 여행 이야기인데 재미없을 리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펴 들었던 여행기 중 끝까지 읽지 못한 것도 더러 있었다.
결국 호기심이 유발됐는가, 아닌가의 문제인 것 같다. 작가의 글이 내게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여행에 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나는 그 글을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기를 쓰는 사람은 독자에게 결국 이런 생각을 끌어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야, 여행이란 건 참으로 즐거운 것이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 <본문> 중에서 하루키는 여행을 즐기는 작가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는 젊은 시절 돈 없는 배낭족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작가가 된 지금까지도 줄기차게 여행을 다니고 있다. 며칠 여행지에 머무는 정도가 아니라 몇 개월이고, 몇 년이고 여행지에서 아예 살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여행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물론, 그가 쓴 여행서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만 읽는다는 하루키 광팬인 친구를 통해 하루키에 입문했던 나는 그의 소설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여러 소설을 시도해봤지만, 그 중 완독한 소설은 겨우 두 개뿐. 그것도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인내로 읽은 것이었다.
그러다 읽게 된 것이 지금은 절판된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에세이였다. 이 책도 그 광팬 친구가 선물로 줘서 읽은 책이었는데, 이후 나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재미있고 유독 소소한 하루키 에세이를 즐겨 읽게 됐다. 물론, 그의 여행기도.
여행을 오래 다니다 보면, 또 여행기를 계속 쓰다 보면, 저절로 어떤 '스킬 같은 걸 얻게 되는 걸까. 예전에 한 번 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 여행기를 써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두 페이지 정도 쓰다가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도통 어떻게 써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열심히 시간 순으로 글을 써내려 갔지만, 내가 봐도 참 재미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엘 갔고, 뭘 봤고, 뭘 먹었고 등등의 전형적인 소재로도 잘도 맛깔 난 여행기를 만들어내던데, 나는 그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이 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로 배워보려 했다. 하루키는 어떻게 여행기를 쓰는 걸까.
하루키는 먼저 말한다. 이제 여행이라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닌 게 됐다고. 시간이 되고, 여행 경비만 만들 수 있다면, 누구라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여행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여행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머릿속에 넣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궁금했던 건 이런 소소한 것들이었다. 하루키는 여행지에서 짬짬이 글을 쓰는 걸까? 아니면 여행에서 돌아 온 뒤 사진을 보며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 맞추는 걸까? 여행기를 쓰기 위해 특히 유념해 둬야 할 건 뭐가 있을까?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이 되면 정작 여행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등등.
하루키는 여행 내용을 세밀하게 글자로 기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작은 수첩에 그때그때 짤막하게 적어 놓는 것이 다란다. 예를 들면, 하루키가 서울에 놀러 왔다가 호떡을 먹었는데 그만 입천장이 다 디어버렸다고 치자. 그래서 병원에 갔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이렇게만 적어 놓는다는 것이다. <서울, 호떡, 병원>. 예외적으로, 일시나 장소 이름, 숫자 같은 것들은 나중을 위해 정확하게 메모해 둔다고 한다.
여행의 목적은 아무래도 제대로 여행을 즐기는 데 있을 텐데, 하루키 역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면서 그저 여행에만 몰입한다고 한다. 이러는 게 글을 쓰는 데도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진도 거의 찍지 않고, 그저 몸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여행을 쫙 흡수해 버리는 데 집중한다. 눈으로는 정확히 보고, 머릿속으로는 전경이나 분위기, 그리고 소리 같은 것들을 일일이 새겨 넣으면서 말이다.
눈 앞의 모든 풍경에 나 자신을 몰입시키려 한다. 모든 것이 피부에 스며들게 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 <본문>중에서 이렇다는 건, 하루키는 여행지에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데. 그렇다면 스스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 하루키는 언제 여행기를 쓰는 걸까. 여행지에서 돌아온 뒤 바로 글을 쓰지는 않고, 한 달이나 두 달쯤 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떠오를 것은 떠오르기 때문이란다. 떠오른 것들만 가지고 글을 이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게 바로, 여행지에 가지고 갔던 메모지와 머릿속 기억들이다.
이제부터는 여행기를 쓸 때만 필요한 스킬이 아닌, 일반적인 글을 쓸 때도 필요한 스킬이 필요해진다. 글 쓰는 기술, 고유의 문체, 열의나 애정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설득력 있는 글을 위해선 묘사력 또한 뛰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여행기를 잘 쓰려면, 역시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여행은 '비일상적인 일상'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할 건, 여행기가 얼마만큼 일상에 가까운가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여행이란 '비일상적인 일상'이라고 말했다. 여행도 일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화려한 여행기를 쓴다고 해도, 그 속에 일상의 감각이 스며들어 있지 않다면, 아무런 감동도, 공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하루키식 여행기 쓰는 비법이었다. 그리고 사실, 여행기를 쓰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얼마나 다르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즐겨 읽던 여행기의 작가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는 것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 책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는 사실 여행서였다. 그러니까, 하루키식 여행기 쓰기 비법은 책의 서문격에 해당하는 글이었고, 뒤의 삼백 페이지에 달하는 글은 하루키의 여행기로 채워져 있었다. 혹시, 나처럼 제목만 보고 덥석 책을 든 누군가는 실망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그러니 이 책은 하루키 여행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봐야 한다. 다행히 나는 하루키 여행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7개의 여행기 중에 일본 가가와 현으로 떠났던 '우동 맛기행'이 특히 재미있었다. 하루키 에세이는 역시 소소해야 제 맛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2015년 04월 20일/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