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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키에서 가장 유명한 짬뽕집을 안내한 기무라씨 모습
나가사키에서 가장 유명한 짬뽕집을 안내한 기무라씨 모습 ⓒ 오문수

"독도 문제는 우익 정치인들이 민족주의를 이용해 인기에 편승하려는 짓이니 한국인들이 과민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고…, 일본과 한국이 전쟁을 할 수도 없잖아요?"

한국말을 잘하는 한 일본인이 내게 한 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일본인이 이 사람뿐일까? 지난 4월 23일 코리아나호가 여수에서 현해탄을 건너 많은 요트가 정박해있는 '나가사키 선셋마리나'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부두에 나와 일행을 환영해 준 일본인이 있었다.

나가사키에 배를 정박하고 짐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조그만 체구에 인자한 얼굴을 한 일본인이 다가와 한국말로 인사했을 때 "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인상 좋은 일본인이 우리를 환영해주는구나" 하며 내심 반가웠다.

 갓길 주차없는 깨끗한 나가사키 시내 모습. 길을 건너는 행인이 보이면 전차도 정지 후 갈길을 갔다.  친절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고 배울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길 주차없는 깨끗한 나가사키 시내 모습. 길을 건너는 행인이 보이면 전차도 정지 후 갈길을 갔다. 친절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고 배울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문수

나가사키 범선 축제에 열일곱 번이나 참가했던 코리아나호 정채호 선장과 코리아나호를 타고 나가사키에 몇 번 왕래했던 분을 제외하고는 초면이다. 그가 내일 다시 만나자며 돌아가고 난 후 정채호 선장에게 물었다.

"저분이 누구입니까? 잘 아는 사이입니까?"
"기무라씨인데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이에요. 한국어를 배워 한국인들이 오면 안내를 할 뿐 아니라 이곳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된 조선인과 피해자를 돕고 있어요. 한국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태백산맥> 내용을 줄줄 외워요."

도쿄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이 나가사키였고, 나가사키의 한 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한 기무라(72)씨는 "제가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해요"라면서 자신이 지한파임을 강조했다. 1년 중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는 그는 천주교 신자다.

 나가사키역에서 길을 몰라  안내판을 들여다보며  망설이고 있을 때 일본인 장애자가 한글판 가이드북을 얻어다 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기분이 좋아진 일행이 기념촬영을 했다. 휠체어를 타는 일본인 장애인은 한류이후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역에서 길을 몰라 안내판을 들여다보며 망설이고 있을 때 일본인 장애자가 한글판 가이드북을 얻어다 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기분이 좋아진 일행이 기념촬영을 했다. 휠체어를 타는 일본인 장애인은 한류이후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말했다. ⓒ 오문수

 나가사키범선 축제장에 설치하는 천막에 쓰인 지주의 모습. 천막을 세우는 네 모서리에 세운 지주의 바탕에 30킬로그램에 달하는 쇳덩이를 이용해 고정시켰다. 안전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나가사키범선 축제장에 설치하는 천막에 쓰인 지주의 모습. 천막을 세우는 네 모서리에 세운 지주의 바탕에 30킬로그램에 달하는 쇳덩이를 이용해 고정시켰다. 안전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 오문수

"아베의 팽창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한 그는 일본 속담에 "악취가 나면 묻어놔야 냄새가 안 난다는 속담이 있다"라면서 "일본 정치인들과 극우세력의 주장에 한국인들이 과민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기무라씨가 영어교사로 퇴직했다는 소리를 듣고 나 역시 영어교사로 퇴직한 처지라 직업정신이 발동했다.

몇 년 전 오사카 일대를 돌아다닐 때 전철역에 있는 젊은 직원이 '우산'이란 단어도 몰라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영어로 길을 묻거나 질문을 하면 학생들까지도 손사래를 흔들며 모른다는 표시를 해 난감했기 때문이다.    

"기무라씨!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봤는데 일본사람들이 영어를 가장 못하는 것 같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예! 한국인들이 일본사람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남에게 예의를 갖추고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일본인들의 멘탈 문제(정신적인 기질)와 문법중심의 영어교육 방법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철저한 자료 준비로 일행을 안내한 기무라씨

나가사키 도착 3일째가 되던 4월 25일, 기무라씨가 일행을 안내하러 코리아나호를 방문했다. 승선인원이 20명이나 됐지만 국악공연을 해야 하는 단원들은 행사일정으로 바쁘고, 개별관광을 원하는 팀이 있어 기무라씨를 따라나선 일행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나한테는 오히려 잘 된 셈이다. 인원이 많으면 의심날 때 물어보지도 못할 것이고 잘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

코리아나호가 정박해 있던 '데지마 워프'를 떠나 일행이 정한 첫 목적지는 네델란드 상관이 있었던 데지마였다. 17세기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를 떠난 하멜이 1년간 머물다 네델란드로 돌아간 곳도 데지마였다. 기무라씨는 "일본이 가장 먼저 개화된 이유가 데지마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천주교가 일본을 개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해줬다.  

17세기 당시 유럽인들이 살았던 글로버엔 방문을 마친 일행은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방문했다. 자료관을 설명하는 안내 자료에는 영문판과 한국어판이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나와 한국인 희생자 기념비를 안내하는 기무라(왼쪽)씨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을 나와 한국인 희생자 기념비를 안내하는 기무라(왼쪽)씨 ⓒ 오문수

원폭자료관을 나와 평화공원으로 가는 도중 기무라씨가 "보여줄 게 있다"고 해서 일행이 따라나섰다. 안내판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의 숫자와, 사망자, 피해자의 숫자가 정확하게 나와 있고 "이곳까지 끌려와 강제노동을 하며 힘들게 살다 억울하게 죽어간 한국인들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도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회'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재일교포들이 아닌 양심 있는 일본지식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1979년 8월 9일 세운 안내판과 비석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독도문제와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일본인들에게 화가 났던 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일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아베 총리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원폭희생자 위해 합천 찾아 봉사활동 하는 기무라씨

 2007년에 열린 '스톤 워크 코리아(Stone Walk Korea)' 행사 당시의 모습. 기무라씨도 이 행사에 참석해 한국의 많은 곳을 돌아보고 임진각을 거쳐 금강산까지 다녀왔다. '스톤워크'란 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무명의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우호를 기리는 반전평화운동단체로 미국에서 시작했다.
2007년에 열린 '스톤 워크 코리아(Stone Walk Korea)' 행사 당시의 모습. 기무라씨도 이 행사에 참석해 한국의 많은 곳을 돌아보고 임진각을 거쳐 금강산까지 다녀왔다. '스톤워크'란 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무명의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우호를 기리는 반전평화운동단체로 미국에서 시작했다. ⓒ 스톤워크코리아

기무라씨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2007년 '스톤 워크 코리아'(Stone Walk Korea) 행사가 한국에서 열렸을 때는 원폭희생자 마을이 있는 합천을 거쳐 지리산과 남원, 광주를 경유해 보라산역에 평화를 위한 비석을 세우고 금강산까지 다녀왔다.

'스톤 워크(Stone Walk)'란 미국 평화운동단체들이 전쟁으로 무명의 민중들이 많이 죽은 것을 사죄하기 위해 시작한 반전평화운동이다. 기무라씨는 틈만 나면 경남 합천의 원폭희생자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가사키에 머문 지 4일째가 되던 날(4월 26일) 밤에는 나가사키에 사는 일본인들이 주축이 돼 구성된 '일·한 친선협회' 주최 만찬이 있었다. 회원 1인당 10만 원 정도를 갹출해 정성스럽게 마련한 자리에 참석한 일행은 일본인들의 친절이 고마웠다. 일본 측 아베 회장의 축사다. 하필이면 왜 회장이 일본 총리와 동명인 아베일까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나가사키 한일친선협회 회원들이 코리아나호에 탑승한 일행들을 위해 성대한 만찬을 열어줬다. 한일국교 정상화가 된 50년 역사보다 더 오랜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아베 회장은"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더욱 돈독한 관계가 이뤄지기를 빈다"고 했다.
나가사키 한일친선협회 회원들이 코리아나호에 탑승한 일행들을 위해 성대한 만찬을 열어줬다. 한일국교 정상화가 된 50년 역사보다 더 오랜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아베 회장은"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더욱 돈독한 관계가 이뤄지기를 빈다"고 했다. ⓒ 오문수

 나가사키의 한 교복전문점 모습.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한 지인은  "신사복과 학생복 대부분이 검정색으로 꼭 장례식장에 온 것 같다"고 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복장에서 보수적인 일본을 느꼈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차림의 일본 여성들에게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가사키의 한 교복전문점 모습.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한 지인은 "신사복과 학생복 대부분이 검정색으로 꼭 장례식장에 온 것 같다"고 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복장에서 보수적인 일본을 느꼈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차림의 일본 여성들에게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꼈다 ⓒ 오문수

"우리가 함께한 이 모임은 한일 국교정상화가 된 지 50주년이 되는 햇수보다 더 오래됐습니다. 한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돈독한 관계가 이뤄지기를 빕니다."

일행이 나가사키에 머문 8박 9일 동안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갓길에 자동차가 주차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강력한 법집행과 교육 때문이겠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나가사키역에서 본 퇴근길 남성 직장인들의 복장은 거의가 검정이나 청색이고 학생들 교복도 검은색 일색이어서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깨끗한 거리와 친절한 일본인들은 본받을 만하다.

사람은 만나야 한다. 만나야 상대방의 생각도 알고 상대방도 내 생각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 북한도, 일본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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