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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난 덕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주곤한다. 먹을 때마다 만들어서 튀겨주면 좋겠지만 맘먹고 정육점에서 돈까스용 고기를 넉넉하게 사온 후 소금, 다진마늘, 매실, 계란, 밀가루를 섞어서 돈가스 옷을 입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 24시간을 숙성시켜서 튀긴다.

가끔 돈가스를 튀길 때 기름이 튀어 손등이나 팔을 다치기도 하는데, 화기를 빼느라 피부 위에 얼음을 올려 놓는 등 치료를 할 때면 몹시 쓰라리고 아프다. 그럴 때마다 덕이가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아찔하고 가슴 아린 순간이었다. 덕이 할머니는 덕이가 가능한 한 가지라도 더 배우고 사람들과 많이 만나길 바랐다. 그런 이유로 여름방학 내내 덕이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불교 포교원에 다녔다. 그곳에선 아직도 기도를 하기 전에 성냥을 사용해 초에 불을 붙인다. 처음엔 덕이가 할 수 있도록 알려준 다음, 다음부터는 덕이가 혼자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날도 덕이는 할머니보다 먼저 그곳에 가서 초에 불을 붙이려고 성냥을 켰다. 근데 그 순간 불 붙은 성냥이 성냥통 안에 떨어지면서 불이 확 커져버렸다. 이에 놀란 덕이는 불을 끈다고 성냥통에 얼굴을 대고 후 불었다.

결국 덕이의 온 얼굴에 불기운이 올라와서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속눈썹, 겉눈썹, 이마 위 머리털이 싹 타고 얼굴은 벌겋게 되어 집으로 왔다. 할머니는 병원에 가면 화상부위를 붕대로 감는데 그렇게 하면 화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안 된다며 덴 곳에서는 일단 화기를 빼야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침 7년 정도 키운 알로에가 있었다. 그것을 잘라서 얼굴 전체에 펴서 붙이고 그 위에 거즈 손수건에 얼음을 담아 계속 올려주었다. 8시간 이상을 번갈아 해주었다. 많이 아팠을 텐데도 덕이는 아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고모와 할머니가 해주는 대로 그것을 다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상황에 아프다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8시간 이상을 참고 있었을까. 오전 9시부터 알로에로 화기를 뺐는데, 오후 5시가 돼서야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 듯했다.

오후 5시 40분 덕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만난 전문의는 "화기가 전혀 없어 괜찮은데요, 그냥 가시면 되겠습니다, 단 당분간 햇볕은 직접 쬐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 후 덕이를 재웠다.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덕이 얼굴에 딱 한 곳, 윗입술 주위에 물집이 하나 생겼다. 거기만 화기가 조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알로에를 바른 후에 얼음 찜질을 몇 번 더 해주었다.

눈썹 없는 덕이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덕아~ 많이 아팠지?"
"(나도 모르게 흐르는 나의 눈물만 바라본다)"
"고모는 지금 덕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서 가슴이 아파서 그래."
"괜찮아."
"괜찮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어쩌면 그게 바로 너겠지 주위에 아이들이 때리고 목 뒤에서 티를 잡아 당겨 목에 라운드티 모양의 피멍이 들어도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등 뒤에 넣어 장난을 쳐도 "괜찮다"고만 하는 덕이.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이 아프니 어떻게 하니...

"우리 덕이는 앞으로 못하는 게 없겠다. 이렇게 잘 참는 착한 심성이니... 훌륭해!"

평소 난 기초 화장품을 사지 않고 알로에와 레몬으로 각각 로션과 스킨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래서 늘 알로에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알로에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하다니... 당분간 햇볕을 직접 받지 않기 위해 덕이에게 모자가 필요했다. 모자가게에 들러 이것 저것을 써보게 한 후 일일이 거울을 보여주며 어떤 모자가 좋은지 묻자, 하나를 집으며 그것이 좋다고 한다. 덕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보기에 덕이에게 잘 어울리는 모자와 두 개를 선택한 뒤 덕이에게 그것을 들고 있으라고 하고 옆에 있던 여성 모자를 하나씩 써보며 덕이에게 물었다.

"덕아~ 고모 어떤 게 잘 어울려?"
"(대답이 없다)"
"덕아~고모 이거 하나 살까?"
"(또 아무 대답이 없다)"
"고모 것은 사지 말고 그냥 갈까?"

덕이는 아무 말없이 내가 써 봤던 모자 몇 개를 집으며 하는 말

"사."
"다 사라고?"
"응."

다 사란다. 자기는 두 개 들고 있으면서 내것은 여러 개를 사란다. 그 어떤 말로도 덕이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고마움을, 감동을 표현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도대체 저 아이의 속엔 무엇이 있는 걸까. 어떤 때는 한없이 작아보이고 부족해 보이다가도 이런 경우엔 나를 뛰어넘는 심성을 보이니...'

그 후로 속눈썹과 겉눈썹이 자랐다. 원래 속눈썹이 길어서 위로 올라갔었으나 그 정도로는 자라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왜냐하면 전에는 큰눈에 속눈썹이 너무 길어서 나약해 보였으나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 덜 유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로를 삼는다.

할머니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그 이후로 덕이를 절에 데리고 가지 않으셨다. 단 한 번도... 그러면서 "덕이가 배워 평생 흔들리지 않을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어야 할 텐데"라며 고심하고 계시다. 이제는 무엇으로 덕이 중심을 탄탄하게 만들어 줘야 하나.


#절과 불교#성냥과 촛불#불경#소중한 보물#마음씀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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