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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말라붙어 사막이 된 도시
▲ 당신에게 실크로드 27 바다가 말라붙어 사막이 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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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막다른 곳, 무이낙으로 

기차표를 잘못 샀다. 사마르칸트에서 밤 8시 30분에 출발해 다음날 오후 7시 30분에 콩기락에 도착한다. 23시간의 여정이니만큼 에어컨이 있다는 1등석을 끊으려 했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나니 뭔가 잘못됐다. 좌석은 2등석이다. 기차표를 끊을 때 분명히 러시아어로 1등석이라고 써서 줬는데 왜 그 아가씨는 나에게 2등석을 준 걸까.

숨이 턱턱 막힌다. 기가 막혀서 막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공기가 안 통한다. 이미 기차 안의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속옷차림이다. 마음 같아선 나도 벗고 싶다. 다행히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공기가 조금 순환된다.

덥다. 23시간동안 내내 더웠다.
▲ 기차내부 덥다. 23시간동안 내내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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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후, 기차는 콩기락에 도착했다. 이 악몽 같은 기차는 이곳을 마지막으로 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으로 간다. 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하지만 바로 합승택시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외국인의 출연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탕웨이가 등 파인 드레스 입고 우리 동네에 혼자 도착하면 이런 기분이겠지. '무이낙'을 외치자 마침 출발하려던 합승택시 한 대가 멈춘다. 여기서 무이낙까지는 80km를 더 간다.

우즈베키스탄 북서쪽에 위치한 무이낙. 정확하게는 우주베키스탄 내 자치공화국인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의 한 도시다.

한때 이곳은 활기차고 넉넉한 아랄해의 포구였다. 아랄해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담수호로, 남한의 3분의 2크기(면적 6만 8000㎢)의 크기를 자랑했다. 천산의 눈 녹은 물이 나린강을 지나 아무다리야가 되고 시르다리야와 만나 이곳까지 흘러왔다.

크고 활기찬 포구였다
▲ 전성기의 무이낙 크고 활기찬 포구였다
ⓒ http://www.karakalp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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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에는 마을전체가 어업과 관광, 통조림 포장 등에 종사했다. 하루 160톤의 철갑상어나 잉어가 잡혔고 통조림 공장은 24시간 돌아갔다. 구소련 사람들의 유명한 휴양지기도 했다. 여름철 비행기는 하루에 한 번 러시아 본토에서 이곳으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자, 화려한 과거 이야기를 했으면 이제 반전이 나올 차례다. 반전은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초 소련은 거대한 운하를 건설했다. 이 관개수로는 목화와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당시 목화는 '하얀 금(金)'으로 불렸다. 문제는 이 수로가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줄기의 방향을 돌렸다는 거다. 물이 들어가지 않자 아랄해의 수량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호수 면적이 종전의 10% 정도로 줄었다.

1989년도과 2008년의 아랄해. 위성사진
▲ 아랄해의 변화 1989년도과 2008년의 아랄해. 위성사진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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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랄해에는 '지구의 가장 충격적인 환경 재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염도가 높아져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은 물이 되어버렸다. 겨울은 추워졌고 여름은 무더워졌다. 사막에 남은 염분이 모래바람이 되어 주변 농지를 황폐화시켰다. 주변 지역에 암과 호흡기 질병, 위염, 담석증 등이 많아졌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물이 마르면서 이곳 사람들의 삶도 함께 말라갔다. 배들은 버려지고, 통조림 공장도 문을 닫고, 청년들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바다가 말라 사막이 된 도시 무이낙, 그 곳이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었다.

구소련지역의 대부분의 지역엔 마을 입구마다 이런 건축물이 서있었다.
▲ 무이낙 구소련지역의 대부분의 지역엔 마을 입구마다 이런 건축물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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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유일의 호텔, 단 한명의 외국인

해가 지는 평원을 지나 무이낙에 도착했다. 생각 외로 마을 규모가 컸다. 마을 입구에서 호텔까지는 2km 정도 걸렸다. 지금은 텅 비었지만 한때 번성했던 마을이었다는 게 느껴졌다.

호텔 아이벡은 마을 서쪽 끝에 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2층짜리 하얀 건물이지만 1층에 불이 딱 하나 켜져 있었다. 택시는 나를 내려놓고 경적을 울려 주인장을 불러냈다.

느낌이 싸하다. 영화나 미국 드라마 앞머리에 항상 이런 장면이 나온다. 큰 트렁크를 들고 인적 없는 호텔에 혼자 도착한 조연. 이 조연이 잔인한 흔적만 남기고 미스터리하게 사라지고 나면 그때부터 주인공이 수사에 착수한다. 주인공은 당연히 잘 생겼을 텐데, 조연은 만나볼 기회조차 없다. 괜히 억울해진다.

아이벡 호텔. 여기 혼자 묵으면 많이 무섭다.
▲ 무이낙 단 하나의 호텔 아이벡 호텔. 여기 혼자 묵으면 많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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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리자 뚱뚱한 주인장이 나왔다. 손님이 왔는데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기색이다. '그래도 속으로는 내 존재를 기뻐하겠지?' 생각했지만 영 귀찮은 표정이다. 방값은 1박에 8달러.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나 이 큰 호텔에 다른 손님은 없다고 한다. 이 마을에 숙박시설은 이 호텔 하나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외국인은 반드시 호텔에서 묵어야한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 외국인은 나 하나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막막해진다.

일단 씻어야한다고 말하자 그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샤워실이 바깥에 있긴 한데 지금은 물이 없단다. 화장실은 1층에 하나. 그들 가족과 같이 써야하는 상황이다. 다 쓰고 난 후엔 옆에 있는 물을 퍼서 내려야했다. 저녁을 달라고 하자 좀 더 복잡한 표정이 됐다. 주변에 식당은 있냐고 물으니까 없단다. "한 시간만 기다려줘." 그가 말했다. 한 시간 후에 그는 감자조림과 빵을 가지고 왔다. 짜고 맛이 없었다.  

전성기의 아랄해 그림이 걸려있다
▲ 아이벡 호텔 내부 전성기의 아랄해 그림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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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좋게 무이낙까지 오긴 했는데 의기소침해졌다. '이틀을 못 씻었는데 또 못 씻다니.' 내 마음 속 여린 감수성이 어느새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는 급히 이성을 동원해 감성을 달랬다. '잘 생각해보자. 응? 여기는 물이 말라붙어 사막이 된 곳이야. 물을 펑펑 쓰면서 샤워할 생각을 하는 게 잘못된 거야, 그렇지 않니?' 구차하게 상상 속 존재와 대화하면서 애써 마음을 다잡아봤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막막함이다. '또 이상한 곳에 혼자 와버렸구나' 결국 빨간머리 앤처럼 과장된 포즈로 침대에 뛰어들어 울다가 잤다.

실크로드, 무덤을 따라 여행하기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하러 갔다. 호텔 마당에 녹슨 양철로 만들어진 간이 건물이 하나 있다. 들어가 보니 머리 위에 수도꼭지가 하나 달려있다. 물을 틀어보니 찬물이 졸졸졸 나온다. 샤워를 마치고 구조를 살펴보니 수도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다. 간이건물 위에 낡은 물탱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물이 나왔다. 알고 봤더니 매일 호텔주인이 물을 떠서 물탱크를 채우는 구조다. 그래서 어제 물이 없다고 한 거였다.

매일 주인이 물을 떠서 위의 물탱크에 채워넣는다
▲ 샤워실 매일 주인이 물을 떠서 위의 물탱크에 채워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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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낙의 물 사정은 생각보다 안 좋았다. 수도는 아침, 저녁에 한 번씩만 짧게 나온다.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쓰긴 하지만 수질이 나빠서 빨래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식수는 마을에 2개 있는 정수시설에서 받아온다고 한다. SFEC라는 프랑스 정수 회사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호텔 뒤에 모래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을 넘으면 바로 바다가 나올 거 같다. 예전에는 바로 이곳까지 물이 넘실댔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는 지금  200km 너머로 후퇴했다. 지금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배들의 무덤이다. 모래 위에 못 쓰는 배들이 버려져있다.
한때 바다였던 이곳에 배들이 버려져있다
▲ 배들의 무덤 한때 바다였던 이곳에 배들이 버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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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떠있는 배들을 찾아가는 길은 꼭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기분이다. 언덕을 내려가는 것부터 깊은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해초를 헤치며 물속에 가라 앉아있는 난파된 배들을 찾는 기분이다. 꼭 물속에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하지만 현실은 해초가 아닌 사막에서 자라는 싹싸울 나무다. 숨이 막히는 것도 더워서 막히는 거다.
싹싸울 나무는 사막과 건조기후에서 잘자라는 나무다. 사막화 피해를 막아줄 방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 싹싸울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배들 싹싸울 나무는 사막과 건조기후에서 잘자라는 나무다. 사막화 피해를 막아줄 방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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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돌아다녀도 인기척은 없다. 그러더니 신기루처럼 녹슨 배들 사이로 소들이 나타났다. 물고기가 있어야할 곳에서 천천히 나타나는 소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이곳의 현실을 보여주는 광경이기도 했다. 한때 어민이었던 이곳 사람들은 지금 목축을 하거나 소규모 농업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막화와 염화 때문에 그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좀 이상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 배 너머로 소가 나타났다 좀 이상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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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곳은 깊은 바다속이었을텐데 지금은 사람이나 소가 걷고 있다
▲ 소가 지나간다 한때 이곳은 깊은 바다속이었을텐데 지금은 사람이나 소가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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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돈을 벌어 보내고 있다. 이곳 마을에는 여성과 노인들, 그리고 운전기사들이 몇 남아있었다. 관광업이 미세하게 남아 있긴 하다. 바로 이곳 '배들의 무덤', 버려진 배들을 보러 오는 관광이다. 역설적이게도 환경재앙에 대한 끔찍한 교훈이 지금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관광수입원이다. 그나마 찾아오는 외국인들은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 배들의 무덤을 둘러보고 황급히 떠나곤 했다. 

사실 실크로드는 무덤을 따라 가는 길이기도 했다. 한때 번성했던 것들, 사라져버린 것들, 흔적만 남은 것들을 매만지며 걷는 여행이다. 실제로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죽음을 지났다. 거대한 황제의 무덤부터 사막의 아이 무덤, 무슬림의 공동묘지, 전설 속 왕비의 무덤, 심지어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들도 숱하게 봤다.

하지만 이곳에 죽어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배다. 한때 바다였던 사막에 배들이 죽어있다. 바다는 멀리 물러나 돌아올 길이 없다. 쓸쓸했던 연애의 마지막엔 늘 가슴 속에 마른 바람이 불었다. 배들 사이엔 그런 한숨이 가득했다.

배무룩... 어쩐지 자꾸 배들을 의인화시켜 생각하게 되었다.
▲ 시무룩한 배 배무룩... 어쩐지 자꾸 배들을 의인화시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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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떠난 마음이 돌아오지 않듯이 바다 또한 돌아오지 않는다
▲ 배들의 무덤 한 번 떠난 마음이 돌아오지 않듯이 바다 또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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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지점이 현재 위치 무이낙입니다
▲ 실크로드 여정 초록색 지점이 현재 위치 무이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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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 #아랄해, #카라칼팍스탄, #무이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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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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