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불지 않았다. 산 능선을 따라 나무들이 잘려나가 쌓여 있었고, 폭 20m 넓이로 땅은 파헤쳐져 있었다. 작업자들은 보이지 않았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 '공사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경남 의령 진산인 자굴산(해발 897m)과 붙어 있는 한우산(해발 836m)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의령군과 유니슨(주)(의령풍력)이 지난 5월부터 풍력발전단지를 짓는 공사에 들어갔는데,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우산 능선 3.5km를 따라 750KW 풍력발전기 25기를 건설해 총 18.75MW의 전력(연간 3만 3860MWh)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경상남도 도시계획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조건부 승인하고, 의령군이 지난 3월 토석 채취 허가를 내주었다.
주민들은 한우산풍력발전반대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주민들은 공사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갔으며, 최근 며칠 사이 공사가 중단되었다.
주민들은 산사태 위험과 저주파, 소음 피해를 제일 걱정하고 있다. 주민들은 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한 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산사태 위험 등에 대해 공정한 시뮬레이션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태풍 매미 때 5명이나 죽었는데... 또 왜?지난 1일, 주민들은 농번기인데도 풍력발전기 15번 공사 현장을 지켰다.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들이고, 80세, 83세, 84세 할머니도 있었다.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산사태 위험을 제일 걱정했다. 주민들은 2003년 태풍 '매미' 때 산사태로 5명이 죽는 일을 겪었다. 주민들은 당시에 했던 임도 개설 공사를 산사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태풍 '매미' 때 남편을 잃은 박민자(72) 할머니도 현장에 함께 했다. 박 할머니는 울먹이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 할머니는 "그때 영감 나이가 64살이었다. 나도 물에 떠내려 가다가 겨우 살아났다"며 "그때 악몽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지금 또 이런 걸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꼭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했다. 한 주민은 "이전에는 임도에 공사용 차량은 이용할 수 없었는데, 박근혜정부 들어서서 규정을 바꾸었다. 대통령 지시면 무조건 다 바꾸느냐"고 말했다.
또 주민들은 산사태 위험과 소음 피해 등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을 해야 하는데 업체가 낸 자료만 믿고 허가를 내주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주민은 "우리가 자료 공개를 요구해도 의령군청 등에서는 일부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80살 할머니는 "우리는 바라는 거 없다. 그냥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것 뿐이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산을 파헤치는 것은 미친 짓"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환경단체와 농민단체 회원들이 찾아왔다. 이날 찾아온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은 "자연 그대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렇게 산을 파헤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전창배 의령농민회장은 "지금 농번기에 모내기를 해야 한다. 의령군은 '행복도시, 부자 의령'을 내걸고 있는데 풍력발전단지 조성하는 게 행복이고 부자가 되는 것이냐"며 "이전에 전쟁 나면 총칼 맞아 바로 죽었지만 이것은 사람을 시름시름 말라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창진환경연합 배종혁 전 의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사를 막아야 한다"고, 임희자 정책실장은 "주민들이 함께 한다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정해관 전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 정책실장은 "산꼭대기까지 산림이 울창하고 소나무 등이 곧게 자라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분다면 나무들이 이렇게 자랄 수 없다"며 "허가 과정 등에 대해 당 차원에서 알아보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한우산 풍력발전기는 실적 쌓기용" 주장에 군청 "사장 말실수"
주민들은 풍력발전은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우산풍력발전반대대책위는 "유니슨(주)에서 풍력발전기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한 실적 올리기 사업이고, 이는 간담회 때 회사 측이 인정했던 사실"이라 주장했다.
유니슨(주)은 2009년 풍력발전기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 기업으로, 2012년 일본 도시바가 최대 주주로 되었다. 주민들은 "유니슨(주)은 풍력발전사업에는 관심이 없고 풍력발전기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한 사례가 필요해 한우산에 풍력발전기 공사를 벌이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책위에 보낸 답변서에서 의령군은 "간담회 때 유니슨(주) 사장이 일부 말 실수를 했으나 한우산 지역이 풍력발전단지사업 장소로 가장 적합한 곳이며, 기존 임도를 이용하여 최소비용으로 설치가 가능하고, 해상풍력이나 태백․대관령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의령군은 "유니슨(주)이 개발하는 육상풍력이 6년간 규제에 발이 묶여 (경제적으로) 어려워 하소연의 뜻으로 발언한 것 같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수출장려정책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중소기업 지원 활성화 차원에서 발언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소음 등 우려에 대해 의령군은 "소음은 시뮬레이션 결과 조용한 것으로 나타났고, 주야간에 소음측정 최대치를 적용하더라도 기준에 충족하며, 전자파에 대해서는 마을 구간은 지중화 하여 전자파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우산에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의령군청 담당자는 "여름은 비수기다. 적정 가동일수가 153일이면 된다. 계절풍이 불면 바람이 많이 분다"고 밝혔다. 그는 "유니슨(주)이 전력을 생산해 한국전력공사에 판매하고, 군에는 법인세를 내 발전량의 일부를 군이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유니슨(주) 측은 "적법한 절차를 밟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은 무조건적인 공사 중단만 요구하고 있다"며 "적법하게 허가를 받아서 진행하는 공사에 대해 반대하면 업무방해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