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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6월 2일 현재,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3차 감염자도 2명으로 확인됐다. 확진자만 25명이요, 격리자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통령은 여전히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으로 관계 산하 공무원들을 질타하고 나섰다.

질병통제본부에 대한 불신은 늘어만 가고 있으며, 국민들의 불안은 실시간으로 폭증하고 있다. 역시나 각 매체들의 경마식 보도도 쌓여 간다. 이 메르스의 공포가 어디까지 전염될지, 또 실제로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낳을지 예측 불가능한 상태다.

그렇게 언제나, 현실은 영화를 넘어선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두고 이미 우리가 확인 가능한 몇 편의 텍스들이 소름 끼치는 기시감을 주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메르스 확산' 사태에 회자되는 세 편의 영화, 이유 있다 

 '메르스 사태'를 두고 회자되고 있는 세 편의 작품, <감기> <컨테이젼> <세계의 끝>.
'메르스 사태'를 두고 회자되고 있는 세 편의 작품, <감기> <컨테이젼> <세계의 끝>. ⓒ 아이러브시네마, 워너브러더스코리아,JTBC

먼저, 한국영화 <감기>. 2003년 사스(SARS)와 2009년 신종플루의 공포를 염두에 두고 만든 이 재난 스릴러는 경기도 분당을 주 무대로 한다.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밀입국 노동자가 사망하고,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동일한 환자들이 분당 모든 병원에서 출몰한다는 내용.

이에 당황한 대통령과 정부는 2차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 재난 사태를 발령하고, 급기야 분당 전역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영화 자체는 주인공을 비롯해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고투와 액션에 집중하지만, 이 땅의 관객들이 새삼 주목하는 건 영화 속 정부 관계자들과 고위층의 안일하고 무능한 대처다(반면 차인표가 연기한 강직한 대통령은 예외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감기>가 누리꾼과 SNS 사용자들로부터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로 재조명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명의 바이러스 감염자로도 속수무책의 상황을 연출하는 이 나라의 시스템을 '재난'과 같이 다루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런 불안과 공포를 목도하는 중이다.

<감기>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분석을 보고 싶다면, 당장 <컨테이젼>을 확인하시길.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라는 헤드카피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작품 역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으며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낳는 현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사망하자 부검 결과를 질병본부센터에 넘기는 평범한 가장을 필두로, 질병본부센터의 대표자, 긴급구조본부의 의사, 최초 감염 경로를 조사하는 박사,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파고드는 저널리스트 등이 <컨테이젼>의 등장인물들이다.

영화는 개개인의 대응을 따라잡으며, 무차별적인 바이러스의 확산 앞에서 각 위치의 인간들이 보여줄 수 있는 대처의 양상과 정보의 확산이 가져다주는 공포까지를 무척이나 건조하면서도 신랄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부실한 초기 대응이 불러온 영화 같은 불안과 공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대학교 병원에 메르스 의심증상 관련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대학교 병원에 메르스 의심증상 관련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 연합뉴스

<풍문으로 들었소> 안판석 감독의 전작 <세계의 끝>은 <컨테이젼>의 한국드라마 판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급속한 기후변화가 불러온 괴바이러스가 대한민국에 상륙하고 무적의 전염병이 전국을 휩쓰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바이러스 최초 보균자의 대척점에서 전염을 막기 위해 애쓰는 질병관리본부 조사관들과 그 안팎의 관계를 극사실적으로 그린다.

배영익 작가의 <전염병: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널리 알려진 안판석 감독 특유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전염병으로 은유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바이러스 앞에 불신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 개개인들의 이면과 함께 그 공포를 통제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시스템을 냉철하게 파고든다.

이러한 작품들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어렵지 않다. 정부 관계 부처의 초기 대응부터 메르스 사태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리라. <감기>의 상상력은 한 도시를 폐쇄하는 명징한 국가 재난 사태로까지 나아갔지만, 정부 당국이 냉철함과 이성으로 무장한 채 이번 메르스 사태를 진화해 나갈 수 있을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일침은 특히 경청할 만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첫 번째 환자의 국내 유입을 확인한 것이 지난달 20일. 이후부터 '메르스 사태'를 주목 중인 그는 2일 오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런 글을 남겼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MERS는 급속한 확산을 보이고 있습니다"며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정부의 안이하고 무지한 대처 때문이고, 둘째는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이한 시민의식 때문이며, 셋째는 여러 환자들이 한 공간을 공유하여 진료를 받는 의료환경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특히 질병관리본부의 초기대응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부의 초기대응의 허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MERS가 의심된다는 의사의 보고를 지속적으로 무시했을뿐더러 'MERS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당신이 책임져라'는 망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MERS진단키트는 지금까지도 질병관리본부에서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MERS로 확진이 된 이후에도 접촉자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여 많은 2차 감염자를 양산했을뿐더러 격리대상자를 출국시켜 국제적 망신을 샀습니다.

MERS가 확산 일로에 있고 MERS관련 공포가 증대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지정진료병원을 밝히지 않아 MERS 의심 환자들이 우왕자왕하고 있으며 진단장비나 격리시설을 갖추지 않은 일반 병의원을 찾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가 2차, 3차 감염을 부추기는 꼴입니다. 또한 MERS 진단키트를 대학병원에 제공하지 않아 대형병원에서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뒤늦은 보건복지부의 사과와 대응... 우리에겐 전문가가 필요하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2일 오전 8시,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주재 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국가적 보건 역량을 총동원"하기로 했다며, 오후 2시 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확산방지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 보건복지부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 본부장을 차관에서 장관으로 격상 ▲ 50세 이상 만성질환자의 시설격리와 밀접접촉자에 대한 자가 격리와 모니터링 ▲ 의료기관내 고위험 폐렴 환자의 전수 조사 ▲ 메르스 자가진단 가능 대학병원에 대해 진단 시약 제공 등의 감염 관리 강화와 확산 방지 ▲ 국공립 병원 외 민간의료기관까지 포괄한 입원병원 현황 및 입퇴원 현황에 대한 실시간 보고체계 마련 등이 주 내용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첫 번째 감염자가 확진된 지 열흘이 더 지났다. 다수 매체를 통해 질병관리본부가 최초 감염자의 검사 요청을 묵살했다거나, 메르스 확진 판정자가 중국으로 출국 전 보건당국에 문의했다거나, 최초 감염자가 정부가 지정한 메르스 위험국가 7개국이 바레인에서 입국해 관리에 소홀했다거나 하는 소식이 전파되고 있다.  

과연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보건당국의 대책이 미온하지는 않은지, 그나마도 늦장 대책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특히 지난달 31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와 관련한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 수사를 의뢰해 엄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확진자가 나왔던 지난달 22일 메르스 관련 홍보자료를 통해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침 또는 콧물 등 환자의 호흡기 분비물(비말)이나 공기 전파,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공기전파론 괴담'의 유포에 다름 아닌 보건복지부가 일조한 셈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1일 배포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대응 조치 강화'란 제목의 보도자료 중 '중동호흡기증후군 자주하는 질문'에도 분명히 이러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7. 사람 사이에 전파가 일어나나요?
- 현재 가족, 의료진 등 확진 환자와의 밀접한 접촉이 있었던 경우에서 제한적으로 사람 간 전파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정확한 감염원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나, 비말, 공기 전파 또는 직접접촉을 통해 사람 간 감염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달 31일 "메르스 전파력에 대한 판단과 최초 환자에 대한 접촉자 그룹의 일부 누락 등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와 불안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자, 1일 박근혜 대통령은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며 관계 당국자들을 질타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더불어 어김없이 "아울러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괴담이나 잘못된 정보는 신속히 바로잡"으라고 주문했다.

2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방지 대책에도 역시나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무분별한 괴담이나 루머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을 우선으로 꼽았다. 불안에 떠는 국민들에게 '괴담' 운운하며 겁박하는 정부를 우리가 믿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불신이 정부와 보건 당국의 안일한 대처였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오기는 할까.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14일부터 18일까지로 예정된 방미 일정을 강행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착한 국민들은 보건복지부의 발표 마냥 "손 씻기, 기침 예절 지키기,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감염예방수칙"이나 잘 지키며 공포와 불안에 떠는 수밖에 없을지 모를 일이다.

혹자들이 이번 메르스 사태를 두고 세월호 참사 정국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가 의료 위기 상황 역시 재난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일침이 유효한 이유다. 불안과 공포를 잠재워줄 전문가가, 우리에겐 지극히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제학과 출신의 경제학자이고, 보건복지부 차관은 법대 출신에 사회복지를 전공한 분입니다. 이런 비전문가들이 국가 의료 위기 상황 때마다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은 닥친 후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대응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무런 전문성을 갖지 못한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보건당국에 보건전문가가 없는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습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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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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