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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라는 낱말을 한국말 사전에서 찾아볼 한국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으나, 애써 한국말 사전을 찾아본들 뒤죽박죽으로 오락가락하거나 겹말풀이만 흐릅니다.

먼저, 한국말사전에서 '숲'을 찾아보면 '수풀'을 줄인 낱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수풀'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것"으로 풀이하는데 '삼림'과 비슷한 낱말이라고 다룹니다. 다시 '삼림(森林)'을 찾아보면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으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숲'을 풀이하며 적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라는 대목이 아리송해서 '무성(茂盛)하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니, "풀이나 나무 따위가 자라서 우거져 있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다"라는 말풀이는 겹말입니다. 한국말 '우거지다'를 한자말로 '무성하다'로 가리키는 셈이니 "무성하게 우거지다"처럼 쓸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말 '우거지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풀, 나무 따위가 자라서 무성해지다"로 풀이해요. 빙글빙글 도는 돌림 풀이입니다.

더 헤아려 보면, '삼림'은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이라 하는데, '우거지다·무성하다'는 나무가 많이 있거나 빽빽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많이 우거진"처럼 쓸 까닭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숲'이라는 곳은 "나무가 우거진 곳"인데, '삼림'이라는 한자말을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으로 풀이한다면, 이 말풀이는 알맞지 않습니다. '삼림= 숲'쯤으로만 풀이해야 올바르리라 느낍니다. 한국말로는 '숲·수풀'이요, 한자말로는 '森林'이며, 영어로는 'wood·forest'입니다.

'숲'에서 배운 이야기

 겉그림
겉그림 ⓒ 자연과생태
(올빼미는) 혼자서 생활하며, 낮에는 주로 나뭇가지에 가만히 앉아 있다. 쉬고 있을 때 작은 새들이 다가와 공격 태세를 취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빛이 있는 쪽으로 날아간다... 달래는 산야에서 무리지어 나거나 한두 포기씩 자란다. 뿌리, 줄기, 꽃 등이 매우 작아 의식하고 유심히 찾지 않는 이상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산새들은 애벌레가 많이 나오는 시기인 4∼6월에 짝짓기를 한다... 참새 한 쌍이 연간 잡아먹는 벌레는 8만 여 마리에 이른다. (18, 32, 62, 219쪽)

주원섭님이 쓴 '숲 일기'인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자연과생태,2015)를 읽으면서 숲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숲을 이야기하거나, 숲을 다루거나, 숲을 배우거나, 숲을 가꾸기 앞서 '숲'이 어떤 곳을 가리키는지 얼마나 제대로 아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숲'이라고 할 적에는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한두 그루나 몇 그루가 있다고 해서 숲이라 하지 않습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푸른 그늘이 넓게 펼쳐지거나 이어지는 터가 돼야 비로소 숲이라 합니다.

숲에서는 나무 그늘 사이로 햇빛이나 햇살이 살짝살짝 비칩니다. 그리고, 숲이라는 곳에는 나무만 있지 않습니다. 나무 둘레로 풀이 우거집니다. 숲에는 온갖 풀이 골고루 자라고, 여기에 버섯도 함께 자라며, 숲벌레와 숲짐승과 숲새가 나란히 있습니다. 숲에 깃들면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바람 따라 살랑이는 노래가 흐릅니다. 숲벌레와 숲새가 들려주는 노래가 어우러집니다. 숲짐승이 숲을 오가면서 먹이를 찾는 동안 내는 소리가 섞입니다.

숲에는 나무와 풀과 벌레와 짐승과 새만 있지 않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면 샘물이 솟거나 냇물이 흐릅니다. 숲은 판판하거나 너른 땅에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멧자락을 따라 숲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숲은 냇물뿐 아니라 골짜기와 골짝물을 고이 품습니다.

딱따구리는 대개 단 한 번 구멍을 뚫어 벌레가 있는 곳을 찾는다. 예상이 적중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 나무에서 기다린다... 하늘을 메우고 있던 키 큰 나무가 쓰러지면 이전보다 많은 햇빛이 숲 바닥까지 닿아, 키 작은 식물에 비치는 일조량이 늘어난다. 또한 쓰러진 나무는 썩으면서 분해자와 생산자의 영양분이 되어 다른 생물이 탄생하는 데도 일조한다... 누군가가 지난겨울 혹한의 추위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철쭉나무의 가지를 스카프로 묶어 놓았다. 아마 철쭉나무가 안쓰러워 응급 처치를 해 놓은 것이겠지. (37, 47, 65쪽)

오늘날에는 '자연(自然)'이라는 낱말을 널리 씁니다. 자연을 지키자고 말하기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자고도 말하며, 사람은 자연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자연'이라는 낱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옛날 시골 사람은 한자로 된 말을 쓸 일이 없었으니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삶을 지은 사람은 '시골말'이나 '흙말'을 썼습니다. 시골에서 사니 시골말이요, 흙을 가꾸면서 살기에 흙말입니다. 시골 사람이 바라보던 '자연'이란 바로 '숲'이리라 느낍니다. 숲이 있어서 뭇목숨이 깨어나고 사람이 이 땅에서 삶을 지을 수 있다고 여겼으리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예부터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 쓰던 시골말이나 흙말은 '숲말'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예전에는 어느 시골이나 '나무가 우거진 터전'이었을 테며, 이 마을도 숲이요 저 마을도 숲이었을 테고, 마을과 마을 사이는 너른 숲이었을 테니까요.

오늘날에는 어디나 도시로 바뀌었습니다만, 개화기 언저리와 한국 전쟁 무렵까지 이 나라를 놓고 '금수강산'이라고 했습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을 가리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이 나라를 짓밟고 한국전쟁이 불거지며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되기 앞서까지, 이 땅은 숲이 아름답고 드넓게 펼쳐진 곳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어디를 가도 숲이 아름다웠기에 이를 두고 '금수강산'이라고 했겠지요.

담쟁이덩굴은 감미료가 없던 옛날에는 설탕 대신 쓰이기도 했고, 한때는 각종 병의 특효약으로 알려지면서 남획되기도 했다... 밤나무는 세월이 오래 흘러도 뿌리에 처음 싹이 텄던 밤톨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밤톨은 새싹이 자라 열매를 맺을 때까지 영양분을 공급한다... 도시에서 유독 매미 우는 소리가 크고 시끄럽게 여겨지는 것은 도시의 소음 때문일 것이다... 참나무류를 포함해 열매를 맺는 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꽃을 많이 피우고, 열매도 잔뜩 맺는다... 까막딱따구리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낮밤의 길이가 달라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아는 것이다. (65, 127, 170, 179, 256쪽)

숲을 비평하다

 나무가 곱게 우거진 숲길을 걸으면, 온몸이 숲내음으로 감돕니다.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
나무가 곱게 우거진 숲길을 걸으면, 온몸이 숲내음으로 감돕니다. 노래가 저절로 흐릅니다. ⓒ 최종규

숲 일기인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는 숲에서 배운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숲이 가르치는 이야기를 날마다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철 따라 달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글쓴이 주원섭님은 '나무가 잘 자란 길'을 걸을 적에는 흐뭇하거나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 자라던 나무를 뭉텅뭉텅 벤 길'을 걸어야 할 적에는 마음이 아프거나 시리다고 말합니다.

도시에서는 전깃줄이 걸린다거나 '나무가 해를 가린다'고 해서 나무 줄기나 나뭇가지를 함부로 벱니다. 시골에서도 도시를 흉내내 나무를 함부로 베기 일쑤입니다. 한여름 더위를 그으려고 나무 그늘을 찾으면서도, 막상 나무그늘이 논이나 밭에 들어온다면서 나무를 모조리 베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나락이나 남새를 심으려면 해가 잘 들어야 할 테니, 논이나 밭 한복판에 나무를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해는 한 곳만 비추지 않습니다. 해는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질 때까지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아침에 그늘이 지면 저녁에는 해가 들고, 아침에 해가 들면 저녁에는 그늘이 집니다. 시골 들에서 나무를 모조리 없애면 해는 더 들 텐데, 해가 더 드는 만큼, 구름이 끼거나 비바람이 드는 날에는 들에 심은 나락이나 남새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둘레에 나무가 없으면 비바람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나락이나 남새도 비바람을 못 견디지만, 여느 시골 여느 살림집도 비바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돌로 울타리를 쌓기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 '바람막이숲'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부터 이 땅 어느 시골이든 '숲정이'를 고이 아끼거나 건사했습니다. 마을마다 숲정이가 있어야 비바람을 가릴 수 있으니까요. 집집마다 나무를 돌보고 마을마다 숲정이를 보듬은 한겨레입니다.

나무그늘이 드리우면 논밭에 해가 덜 든다고 할 수 있지만, 나무가 있을 적에는 땡볕이나 불볕이 찾아들어도 나무가 더위를 식혀 줍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가뭄이 들어도 샘물이 솟고 냇물이 흐릅니다.

나무는 보통 잎으로 호흡하지만, 전체 호흡량의 8퍼센트 가량은 뿌리가 담당한다... 쥐는 놀라운 번식력으로 다른 동물의 풍부한 먹잇감이 되고, 온갖 잡다한 것을 먹어치우면서 생태계의 하층구조를 굳건히 지키는 역할도 한다... 국수나무는 둥근 덤불 형태의 군집을 크게 형성한다. 국수나무 덤불은 숲을 우거지게 해서 바람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숲과 마을의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숲에서 헤맬 때 국수나무를 길라잡이로 해서 마을로 오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공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못해 맑은 숲을 대변하는 지표식물이기도 하다. (287, 304, 367쪽)

숲이 있기에 나무를 베어 집을 짓습니다. 숲이 있으니 나무를 베어 연필을 깎고 종이를 빚어 책을 묶습니다. 숲에서 나무를 얻어 땔감으로 삼고 연장을 다듬습니다. 나무마다 온갖 열매를 맺으니, 나무 열매는 고마운 밥이 됩니다.

숲이 있기에 문명과 문화가 태어납니다. 숲이 없으면 문명이나 문화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숲을 아끼지 않아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없애면, 어떤 문명이나 문화이든 무너지거나 사라지고야 맙니다.

주원섭님은 스스로 애써 바지런히 숲을 드나들면서 숲일기를 씁니다. 도시에서 살며 숲을 드나들기는 만만하지 않을 테지만, 스스로 푸른 마음이 되어 삶을 가꾸려 하기에, 도시에서도 씩씩하게 숲길을 찾아서 푸른 바람을 쐽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지내는 사람은 한결 넉넉하고 포근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니, 숲 일기를 써서 숲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는 곳은 우리 모두한테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 테니, 숲일기를 써서 숲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른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평을 쓰고, 운동 경기를 보고 나서 관전평을 쓰며, 책을 읽고 나서 비평을 씁니다. 경제나 주식을 비평한다든지, 정치나 사회를 비평한다든지, 예술이나 문화를 비평한다든지, 교육이나 역사를 비평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와 달리, 숲을 이야기하거나 나무를 이야기하거나 풀과 꽃과 들과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냇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 해 내내 운동경기 관전평을 쓰거나 정치 비평을 쓰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한 해를 통틀어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이랑 겨울에 따라 늘 달라지는 숲과 나무와 풀과 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숲 일기'와 '나무 일기'와 '꽃 일기'를 관찰 일기처럼 쓸 수 있다면, 이 나라 어른하고 아이가 모두 숲 일기나 나무 일기나 꽃일기를 쓸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누구나 날마다 나무를 마주하고 숲바람을 쐴 수 있다면, 참말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주원섭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5.6.5.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 곰취의 숲속일지

주원섭 글.사진, 자연과생태(2015)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주원섭#숲책#숲노래#숲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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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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