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을 함께 먹은 나씨의 몇 년 후 꿈은 가까운 시골로 가 자기들 먹을 것이나 심어 가꾸며 사는 것이다.
나씨를 알고 지낸 것은 5년 정도. 그간 걸핏하면 이야기 끝에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나이 좀 더 먹으면 시골로 가 농사지으며 살지 뭐" 하곤 했다. 며칠 전에도 어김없이 비슷한 말을 했다.
전형적인 농부의 딸로 나고 자라 그 누구보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때문에 시골에서의 생활이 한 도시인이 여생을 여유 있게 보낼 만큼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나씨가 꿈꾸는 전원생활에 관심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염려가 앞서지만 말이다.
'원래 대부분 나이 들어서는 시골에서 사는 것을 원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내 주변에는 나씨 말고도 "언젠가는 시골로 가 농사나 짓고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좀 많다.
도시적인 삶보다 자연적인 삶을 더 좋아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노년의 삶도 공기가 좋은 시골에서 큰 것 바라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땀 흘려 일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지라 시골로 가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그 사람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곤 한다.
"형광등 하나 못 갈면서 무슨 오두막을 짓냐고, 엉!"
"월든이고 버몬트고 다 필요 없어. 갈 테면 혼자 가라니까!"이제 돼지꿈은 내 꿈이 아니다. 신물 나는 이 도시를 떠나 저 멀리 산골에 들어가 오두막 짓고 사는 게 내 꿈이다. 내가 가진 명예, 지위, 돈, 그 모든 넌더리나는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자연인이 될 것이다. - <시골이 좋다고? 개뿔!>에서.<시골이 좋다고? 개뿔!>(낮은산 펴냄ㅣ김충희 만화)은 막연한 꿈이든, 구체적인 꿈이든 언젠가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시골에서 전혀 살아본 적이 없는 데다가 낫이나 호미도 제대로 쥐어본 적 없음에도 시골에서 살리라는 나씨처럼 시골을 전혀 모르는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시골 행을 결심, 시골에서의 만만찮은 생활 그 날것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삼류만화가로 철딱서니도 없고 세상 물정에 눈과 귀가 어두운 이상주의자 남편. 시골 행을 극구 반대하는 아내를 갖은 이유와 각서로 꼬드겨 가족이 모두 시골로 가는데 성공한다.
'비가 오자 지붕 여기저기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가족은 밤새 고생을 하고, 딸은 뱀허물을 주워 목에 두르고 노는 등 날로 게걸스럽게 놀고….'그러나 이 가족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어설프기만 하다. 도무지 이상적이지 못하다. 어린 딸이 벌레나 뱀허물 등을 가지고 노는 통에 아내는 거의 매일 경악한다. 더욱 대책 없는 것은 남편이 거의 매일 새로운 일을 엉뚱하게 벌인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텃밭에 쓸 퇴비를 만든다고 온몸을 드러내고 볼일을 봐야하는 화장실을 만들어놓고 그곳에서만 볼일을 보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그런가하면 소위 감성적인 농법이란 것으로 농사를 짓겠다며 작물대신 잡초만 무성하게 키우며 행복에 빠지기도 한다. 또 아이들에게 친환경적인 놀이터를 만들어 준다고 몇날 며칠 주인이 있는 산을 다짜고짜 들쑤시다가 몸살을 앓기도 한다.
와중에 처음부터 시골 행을 반대했던 아내는 도무지 살 수 없다며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천진무구한 이 남편은 딸과 서서 오줌 싸기 내기를 하는 등, 대책 없는 행동들은 수그러들지 않는데….
"자연과 좀 더 가깝다고 사람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자연과 얼마나 다른지 날마다 깨닫는다.""바야흐로 보리타작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얻은 것이 고작 두 되인가. 뿌린 건 한 말인데!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나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삶에는 덧셈뿐만 아니라 뺄셈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땐 뿌린 만큼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 <시골이 좋다고? 개뿔!>에서.이 가족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곳은 대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내 주변 사람인 나씨처럼 소일 삼아 농사나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토박이들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만화는 한 삼류만화가를 통해 시골에서의 자연적인 삶과 이웃 간의 나눔 그 여유 등을 보여주는 동시에, 도시의 소음과 다툼을 벗어나고 싶어 시골로 갔으면서도 걸핏하면 모여 술판을 벌리는가 하면 얄팍한 교양을 앞세워 자연을 보호하는 일을 한답시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실천 없는 말만 앞세우는 등의 세태까지 담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삶과 연결되는 메시지까지 드문드문 전하고 있어서 시골 행을 꿈꾸지 않는 사람도 가볍고 유쾌하게 읽으면서 삶을 되돌아 볼 수도 있는 그런 만화다.
덧붙이는 글 | <시골이 좋다고? 개뿔!> (김충희) | 낮은산 | 2015-05-18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