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이에서 출근길에 개 두 마리가 끄는 리어카에 태극기를 달고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10여 차례 봤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만나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교동 사무소를 방문하는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길가에 양철로 울타리를 친 창고위에서 주어온 폐지와 고철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박선옥(79)씨의 얼굴은 건강해 보였다. 나이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 건강비결을 물었다.
"젊었을 적에 배를 50년 정도 탔지. 당시 하루에 막걸리 3말 담배 한 갑을 피웠어. 내가 피운 담배를 계산해보니 2만 몇천 갑 정도 돼요. 요새는 가끔 맥주를 마시지만 담배는 못 끊겠어."50년 동안 배를 타며 부산, 삼천포, 중국까지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은 다 돌아다녀 봤단다. 노 젓는 배, 돛단배, 고막채취선, 저인망, 행망, 고대구리 등 웬만한 배는 다 탔다고 자랑했다.
"전두환 시절에는 배가 일곱 척 있었어요.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산이나 해도를 보는 데 성냥개비 하나가 7마일이었어요."뱃일을 그만두고 폐지 줍는 일을 20년 동안 하면서 "힘이 들어 개를 훈련시켜 앞에서 끌게 했다"라는 박씨에게 "물지 않아요?" 하고 물으니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와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리어커 옆으로 다가가자 진돗개가 으르렁거리며 사나운 모습으로 이빨을 내밀었다.
박씨가 리어커를 움직이자 5년 됐다는 하얀 진돗개인 백구와 넉달 됐다는 까만 깜돌이가 앞에서 힘을 주어 끌기 시작했다. 그동안 몇 번 개를 바꿨다는 그에게 "서로 싸우지 않느냐?"고 묻자 "안 싸워"라고 대답했다. 고물 정리에 여념이 없는 박씨에게 대화를 하자며 "잠깐 내려오시라"고 요청한 후 집안 형편을 들었다.
"집에 할머니가 있어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운동 삼아 해요. 내가 놀 줄 몰라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중풍으로 8년째 누워있는 할머니를 두고 어떻게 놀러 다닐꺼여?"폐지 얘기로 이야기를 바꾸자 목에 힘이 들어간 박씨가 열변을 토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폐지 100㎏을 모으면 8000원을 줘요. 나 혼자 옮기기가 힘들어 고물상에 요청해 기계로 직접 가져가면 6000원을 받습니다. 1톤에 6만 원. 그게 뭐 돈이여? 힘들죠. 힘은 들어도 운동이 돼 병원에 안 다닙니다."그는 한 달에 부지런히 하면 많을 때 50만 원 정도를 번다. 고철은 1㎏에 150원이다. "그게 뭐 돈이 되겠어요?"라는 말이 수긍이 갔다.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힘든 것은 별로 없다"고 대답한 그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옷을 입으면 되니까 견딜만한데 여름에는 더워 겨울이 더 좋다"고 대답했다.
"창고는 아는 지인이 공짜로 사용하라고 해서 돈 나가는 건 없다"는 그는 "자식들이 그만두라"고 하지만 "나이들수록 잘 먹고 움직여 운동해야 건강하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쓸만한 물건을 함부로 버린다"며 혀를 찬 박씨는 "85세까지만 해야지" 했다가 "죽을 때까지"로 수정하며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은 다 죽고 없지만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라고 대답한 그는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며 웃었다.
부인을 사랑하며 건강도 챙기고 환경정화에 일조하는 박씨를 길거리에서 오랫동안 만날 수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