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편] "'리더십' 없는 청와대... 제2의 메르스 사태 또 온다"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앞에서 '세계 초일류'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전체 환자의 절반 가까운 81명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했다. 격리 대상자에 정작 환자 보호자나 일반 방문자, 심지어 응급실 이송 요원까지 빠뜨리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메르스 사태로 부분폐쇄된 삼성서울병원발 공포는 대한민국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삼성서울병원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진료를 거부당하는 '낙인'이 찍혔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병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왜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을 통제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노 전 회장도 삼성서울병원 내의 방역에 정부가 관여하여 지휘하지 않고 삼성서울병원에 자체적으로 맡긴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요청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일까?
노 전 회장은 "자원부족과 책임 문제에 시달리고 있던 정부는 삼성병원이 알아서 해결해주길 바랐을 것이고, 삼성병원 역시 메르스와 관련해 위험병원으로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라며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노 전 회장은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의 확진 사실이 늦게 발표된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명확하게 해명해야 한다"면서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노 전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정부의 미진한 대응책... 감염학회 전문가 조언 부적절"-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의 진앙지가 됐다. 원인이 뭔가? "첫 번째는 정부가 정보를 늦게 준 것이다. 2박3일 동안 체구가 큰 사람(14번 환자)이 다른 환자들이 잠을 못 잘 정도로 컹컹 기침을 하면서 많은 양의 바이러스를 뿜어냈다. 여기까진 병원에 책임을 묻기 힘들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감시 대상에서 벗어난 환자들이 나왔다. 특히 구급차 이송요원, 의료진 등이 해당됐다. 그 부분은 삼성서울병원이 책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서울병원이 안이하게 생각해서 모니터링 격리대상 범위를 너무 좁게 잡은 것 같다.
두 번째는 더 중요한, 정보 제공 문제다. 일찌감치 해당 장소에 있었던 분들에게 전부 알려서 그분들을 빨리 정부의 통제 아래 두도록 했어야 했다. 또 그 기간 동안 병원에 있었던 분들에게도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안 됐던 것 같다. 병원을 보호하기 위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었나 싶다."
- 삼성서울병원 내의 방역에 정부가 관여하여 지휘하지 않고 삼성서울병원에 자체적으로 맡긴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요청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일까? "둘 다라고 본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데 삼성병원이 거절했을 개연성은 적고, 반대로 삼성병원이 정부에 '제발 여기 와서 적극적 조치를 취해달라'는데, 정부가 '알아서 하시오' 했을 가능성도 적다.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정부는 자원부족과 책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삼성병원이 알아서 해결해준다면 정말 좋았을 거다. 삼성병원 역시 메르스와 관련해 위험병원으로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
-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 확진사실을 뒤늦게 발표했다. 그것 역시 삼성서울병원의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볼 수 있나? "확진은 반드시 2차 검사까지 마친 뒤 결과가 양성으로 나와야 한다. 제가 35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6월 3일이다. 2일 이송됐고 확진 판정은 1일인가에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환자가 3일 (정부의 확진 환자 현황) 발표에서 빠졌다. 정부가 아직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 서울시가 그 내용을 공개한 뒤 보건복지부에서 반박 브리핑을 통해 '35번 환자의 재검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재검이라기보다는 3차 검사를 얘기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이 굉장히 수상쩍다. 정부가 명확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본다."
- 방역은 감염전문의의 소관이 아니라고 지적했는데. "사스, 신종플루 이후 정부가 급성전염병의 위험성을 절실하게 깨닫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세웠다. 그 파트너가 감염내과였고,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나 방역은 감염내과 소관이라기보다 원칙적으로 공중보건학과 예방의학의 소관이다. 감염내과는 감염된 사람을 치료하고, 병원 내 감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관리하는 분야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염병을 막는 것과 좀 다르다.
이번 정부의 대응책이 미진했던 부분 중 하나가 전문가의 조언이 부적절하지 않았나 싶은 의구심이 든다. 그 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정보공개다. 초기에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에서 메르스 관련 정보공개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는데, 매우 부적절했다고 본다."
- 병원감염관리학회에서 정보공개를 반대한 이유는 뭘까? "그분들조차 상황을 낙관하지 않았나 싶다. 대다수가 대학병원에 몸을 담고 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는데, 교수님들도 매우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삼성서울병원 명단(병원명)을 조기에 공개했다면 파장이 컸을 거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부담을 정부가 다 떠안아야 하는데,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다 떠안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의료계가 좁으니 여러 대학병원이 '지금은 삼성서울병원이지만 나중에는 우리에게도 불이익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전문가들이 원칙을 어긴 것이다."
- 감염학회가 병원명 공개를 반대한 것은 감염학회 이사장을 지낸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원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실제 있었는지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삼성서울병원은 기업이 만든 병원이기 때문에 기업의 문화와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송재훈 원장이 감염내과 전문의라 믿었다는 정부 관료의 말대로 송 원장 스스로 자신했을 수도 있고, 안이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 1번 환자를 확진한 곳이 삼성서울병원이다. 두 번째 환자 발생했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만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거다."
- 박원순 서울시장의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에 대한 양론이 있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을 했다며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시민들에게 괜한 공포심을 불어넣었다는 혹평도 뒤따른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치적 지지자와 비지지자 의견이 크게 갈린다. 제가 SNS에 올린 글에 그 양면을 다 썼다. 그런데 본인들이 읽고 싶은 것만 읽는다. 거기에 긍정·부정 두 가지가 있었는데, 지지자들은 부정적인 것만 보고 이해 못한다. 비지지자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은 35번 환자에게 동업자로서의 동병상련을 느낀다. 더군다나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는 더 강하게 느낀다. (박원순 시장 발표 내용 중) 의사의 의학적 판단으로는 팩트가 아닌 부분이 있었다. 일반인보다 많이 알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 메르스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사들은 초기에 알고 있었나? "대다수 의사들이 모르고 있었고, 1번 환자를 진단한 의사처럼, 일부 호흡기·감염내과 의사들은 알고 있었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이번에 진단된 환자가 정말 1번이냐', '그 전에는 메르스 사망자가 정말 없었을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범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의심을 품는다.) 1년에 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 그러니 알 수 없지 않나. 역학조사를 다 할 수 없으니. 물론 가능성이 큰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정부가 경각심을 갖기 전에는 의사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종편 출연 끊고 싶은데, 전문가들이 안 나온다"
- 메르스 관련 발언을 SNS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5월 말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1번 환자 확진 직후는 아니었고, 점차 메르스가 알려지면서 한 여자 치과 의사선생님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다른 분들과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저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그분께 답변을 하던 중에 이 분만이 아니라 많은 분이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해 글을 올렸고, 그게 많이 공유됐다."
- 당시에도 이렇게 메르스가 확산되고, 국민들이 공포에 떨 것이라고 예상했나? "글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예상을 못했다. 정부가 어느 정도 제대로 대응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보공개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심각하게 걱정이 됐다. 환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의사들이 메르스 환자를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 시기를 계속 놓치면서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올렸다. 이 정도 확산은 예상 못했다. 방역망이 뚫릴 거라는 예상은 했다."
- 동국대 의대 미생물학과 김익중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은 지금 현 시점에서 메르스 사태가 어떤 양상이라고 분석하나?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특히 우리는 지금 보건복지부가 환자를 발표하면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 발표하는 것은 2주 전 상황이다. 잠복기를 지나 바이러스를 내뿜고 확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주 전 상황을 보며 미래를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바이러스의 속성과 전파 양상을 보며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분(김익중 교수)이 말씀하시는 최악의 상황까지 오지는 않으리라 본다. 영화 <감기> 시나리오대로 가진 않을 거다. 환자가 다량의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때는 감염력이 높고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직접 혹은 간접 접촉에만 전염된다는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또 잠복기라면 무해하다. 그렇기에 전파력이 그리 크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의료 시스템은 전산화가 잘 돼있어, 환자의 경로 추적이 다 가능해졌다. 완벽하지 않지만 부분적 역학조사를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병원 중심으로 감염이 진행됐기 때문에 (지역사회로) 산발적으로 다 퍼져나가는 상황은 오지 않을 거다."
- 일각에서는 메르스 상황이 2~3달 정도 갈 거라고 하는데. "저는 더 갈 거라고 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지막 환자가 발생한 이후 더 이상 안 생기는 건데, 제 생각에는 감염자가 한두 명씩 나타나는 형태로 오래가지 않을까 싶다."
- 감염분야 비전문가로서 메르스 관련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부담이 크다. 처음 인터뷰하면서 말씀드렸지만, 이 상황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다. 지난 2주 동안 종편 채널에 주로 나가 목소리를 냈는데, 지금은 많이 줄이려고 한다. 하루4~5편에서 1편으로(웃음). 정말 (종편 출연을) 끊고 싶은데, (종편에서) 자꾸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끊질 못한다.(웃음)
전문가가 나와서 정확히 얘기해야 하는데, 그분들이 안 나온다. (방송)작가들도 섭외가 어렵다고 토로하더라. 의사가 나오지 않으니 다른 분들이 나와서 평가하시고,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데 사실과 다르게 말한다. 이를테면 바이러스가 60미터 날아가니 전파를 예측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향수를 뿌리면 (입자가) 60미터까지 날아가지만, 거기서 냄새를 맡지는 못하지 않나. 마찬가지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멀리 날아가도, 감염되지는 않는다."
- 메르스 관련 글을 SNS에 올리면서 질문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내가 SNS에 글을 올릴 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궁금증을 풀어주는 차원이다. 고맙다는 답장을 많이 보내주시는데, 특히 의사들이 많다. 진료에 바빠서 메르스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모니터 못하는 것이다. 그것도 사실 정부가 해줘야 하는데, 아니면 감염학회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또 의사들이 그런 얘기를 한 이유 중 하나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상황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황판을 만든 것도 불과 며칠 전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시시각각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이 지금도 없다."
- 이번 메르스 사태가 준 교훈이 있다면? "세월호가 가라앉음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굉장히 낙후된 시스템이 발견됐다.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안 됐다. 저는 왜 안 됐을까 생각하다보니, 결국 이게 정치적 이슈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번에도 보건의료의 많은 문제가 드러났는데, 이번 기회에 고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어느 날 갑자기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의사협회 여러 주장 중 의사들만을 위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극히 일부분이다. 특히 젊은 의사들이 내는 목소리는 정말 국민건강을 위해 내는 목소리고, 그중에서도 보건부 독립, 보건 제도 시스템에 대한 투자, 전문성 강화는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걸 이번에 아셨을 거다. 메르스 사태가 지나가더라도 이번 사태가 주는 경각심을 꼭 기억하셨다가 의사들이 내는 목소리가 거기에 부합하면 적극적으로 성원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