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어봐도 부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할 뿐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어요. 애가 엉뚱한 일을 많이 한다고 휴가를 내보내주지 않아서 되도록 자주 면회를 갔는데, 날이 갈수록 상태가 점점 더 나빠졌어요. 그래도 자식을 군에 보낸 입장에서 속 시원히 따져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7월 10일, 전역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아무개(22)씨의 부모는 왜 부대에서 아들의 정신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망직후 군 당국은 이씨의 부모와 10여 차례 전화와 면담을 통해 이씨의 상태에 대해 의논했다고 설명했지만, 아버지 이씨는 "아들의 상태가 그 지경인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치료를 했을 것 아니냐, 부대에서는 이 문제로 단 한 번도 우리를 부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군대 생활

단란했던 한 때 군 입대 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한 이씨(가운데)
단란했던 한 때군 입대 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한 이씨(가운데) ⓒ 이씨 유가족 제공

이씨의 근무기록을 살펴보면  상병 진급 후인 2013년 8월 경계근무 소홀로 1차 징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모두 5차례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2013년 9월 후임병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 보름 동안 영창을 다녀오기도 했다.

2014년 2월 19일,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검문소 경비 근무를 서던 이씨에게 소대장이 군기불량을 지적하자 그는 "계급장 떼고 맞짱 뜨자"며 덤벼들었다. 이틀 뒤, 이번에는 생활관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것을 질책하는 부소대장에게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헌병은 상관면전모욕 혐의로 이씨를 조사했지만,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우발적 사안으로 판단하고 내사를 종결했다. 2월 21일부터 한 달 동안 이씨는 국군대구병원 정신과에 입원하게 된다.

입원 기간 작성된 간호기록지에는 부대에서 이씨 혼자 삭여왔을 맘고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제가 선임병들에게 맞고 욕 들었던 것을 간부들한테 얘기했더니 제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무시했습니다. 자대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다'라고 느꼈습니다."

"가기 싫습니다. 부조리에 대해 말해도 안 되고, 두세 번씩이나 말했는데… 저는 자대 가면 거의 죽을 겁니다."

이씨는 군의관 면담 과정에서 선임병들이 자신을 '인간 샌드백'이라 부르며 때렸다고 털어 놓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퇴원 당시 군의관은 '자해 및 타해의 우려가 있으므로 근접 관찰할 것. 증상 악화 시 재방문할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3월 20일, 부대로 돌아온 이씨는 원래 소속중대인 2중대에서 4중대로 보직이 변경된다. 소대장에 대한 면전모욕으로 보직이 조정된 것.

다른 중대로 가서도 이씨는 벽에 여러 차례 머리를 박거나 야외 테라스에 매달려 있다가 뛰어 내리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소대장은 이씨의 그린캠프 입소를 건의했다.

새로운 중대에 배치된 지 2주 만인 4월 7일, 이씨는 대전에 있는 군수사령부 그린캠프에 입소했다. 그린캠프는 부대 내 관심병사를 위해 진행하는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이다.

이씨의 아버지는 그린캠프에 입소해 있던 아들을 면회했던 당시를 잊지 못한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계속 손발을 비벼댔어요. 애는 자기가 저지른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행동까지 모두 자기가 잘못한 걸로 알고 있었어요. 면회를 하는 내내 '네가 한 일과 남이 한 일을 좀 구분해봐라'고 했는데, 애가 그걸 하지 못했어요."

그린캠프 전문상담관은 이씨의 상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주변 사람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으로 의사소통을 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여짐"이라고 평가했다.

정신이상 증세 보였지만, 치료 대신 영창행

4월 28일, 그린캠프에서 퇴소한 이씨는 부대로 복귀했다. 비록 여러 차례의 징계 때문에 병장을 달지는 못했지만 전역이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5월 8일, 부대에서는 뒤늦게 이씨를 15일간 영창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앞서 2월에 있었던 상관모욕 행위에 대해 헌병이 내사종결하면서 정신과 진료 후 소속부대에서 징계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조치 때문이었다.

입창 명령을 받은 이씨가 영창에 들어가게 된 5월 16일은 마침 입대동기들이 전역하는 날이었다. 전역을 불과 10여 일 남겨 놓고 있었던 이씨는 자신을 데리러 올 헌병들이 도착하기 전 부대 담을 넘었다.

부대 앞산을 배회하다 2시간 반 만에 붙잡힌 그는 긴급 구속됐다. 앞서의 상관면전모욕 건에다 군무이탈 혐의까지 추가되었다. 영창 생활 중 이씨는 수건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등 자해를 시도했다. 잠을 거의 자지 않으면서 철창을 흔들고, 헌병의 곤봉을 뺏으려 덤벼든다거나 조서를 찢어버리는 등의 이상 행동도 보였다.

군 검찰이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6월 5일 이씨는 부대로 복귀한다. 하지만 부대로 돌아오면서도 이씨는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 내리려는 돌발행동을 했다. 이씨를 데리러 간 행정보급관이 휴가증을 보여주면서 '조금만 참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달랬지만, 막무가내였다.

이씨는 부대에 돌아온 당일 바로 6박7일 휴가를 나가 11일 복귀한 후 12일 제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이발하고 휴가출발 신고준비를 하라"는 중대장의 코 부위를 자신의 머리로 들이 박아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 휴가와 제대를 앞두고 저지른 이씨의 행동은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부대로 부터 전화를 받은 이씨의 부모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애가 정상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어요. '정신병자'가 저지른 일이니 제발 한 번만 눈감아 달라고요."

중대장은 군 형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이씨는 상관상해 혐의로 다시 영창으로 보내졌다. 한 달 남짓 독방에 수감되어 있던 이씨는 지난해 7월 10일 오후 군사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전역했다.

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얼마 전 제대한 한 살 위의 형이 이씨를 데리러 갔다. 석방된 대구에서 집이 있는 의정부까지 올라오는 동안 이씨는 혼자말로 중얼거리거나, 자꾸 차문을 열고 뛰어 내리려 했다.

온 가족이 함께 한 저녁, 그게 마지막이었다

 죽기 전 페이스북에 로그인...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죽기 전 페이스북에 로그인...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 오마이뉴스

이씨가 집에 도착한 것은 당일 오후 9시께. 이씨와 형, 아버지와 어머니 등 모처럼 4식구가 모여 삼겹살을 구워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아이의 눈에 초점이 없었어요. 뭐를 물어 봐도 표정도 없이 그냥 '예'라고 할 뿐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 치료를 받으면 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 날밤은 오랜만에 마루에서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자자고 이불까지 펴놓았는데···."

가족들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이씨가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이 이씨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후 10시 40분 이씨의 방에 들어간 형이 비명을 질렀다. "아빠, OO가 없어요" 소스라치게 놀란 가족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이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하는 생각에 이씨의 아버지가 활짝 열린 창문 밖을 내려 봤을 때, 18층 아래 주차장에는 이미 경찰차의 경광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지금도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어떻게 여기서 뛰어 내릴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해요. 왜 좀 더 견뎌주지 못했는지 아들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천 명 중의 하나, 만 명 중의 하나라도 우리 애 같은 병사가 있으면 잘 보듬고 보살펴줘야 하는 것이 지휘관의 임무 아닌가요. 멀쩡한 애를 데려갔으면 그대로 잘 부모품에 돌려보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잘못된 바람인가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이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로그인을 했지만,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 편집ㅣ최은경 기자




#군대 폭력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