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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총리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관저에서 직선거리로 2km쯤 떨어진 베를린 한복판 '박물관섬' 구역에 거주한다. 메르켈의 집 바로 건너편에는 페르가몬 박물관이 있다. 귀중한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어 보안이 철저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박물관 지붕에 설치된 여러 비디오 카메라 중 한 대가 총리 집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고 한다. 강력한 줌 기능이 있어 거실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였다. 이 사실은 몇 년 동안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의 상황이 공론화되자 카메라는 즉시 변경되었다. 일반 시민이라면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피해자'가 총리였기 때문에 조치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독일의 인터넷 정책가이자 시민권 운동가인 말테 슈피츠가 저서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내 정보는 내 것이다"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책 표지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책 표지 ⓒ 책세상
저자는 1984년생의 젊은 정치인(독일 녹색당 당원)이다. 31살의 나이에 이미 세계적인 인사가 되어 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2007년 독일 정부는 전화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가 모든 사용자의 통신데이터를 최소 6개월 동안 무조건 저장하도록 하는 통신정보저장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나 정보 당국,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손쉽게 확보해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반발한 저자는 "정보 관리자는 당사자의 요청이 있을 시 그에 관해 저장된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라는 독일 연방데이터보호법 34조 규정에 따라 휴대전화 회사에 자신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저자는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통신회사는 갖은 핑계를 대며 정보 제공 요청을 거부했다. 2009년 저자는 "내 정보는 내 것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3월 2일 나온 판결에서 판사들은 무분별한 정보저장을 즉각 중지하고 기존에 수집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저자는 재판이 끝난 뒤 우여곡절 끝에 개인정보를 확보했다. 그렇게 얻은 데이터를 그래픽으로 전환해 그 결과를 2011년 2월 말 '모든 것을 발설하는 핸드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담아 <차이트 온라인>이라는 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반향이 크게 일었다. 그해 3월 말 미국 <뉴욕 타임스> 토요일판에는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모든 이동이 추척된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각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저자는 각종 강의와 발표와 강연에 초청되었다. 그가 테드 글로벌 회의에서 한 10여 분짜리 강연은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인터넷에서 130만 번 이상 조회되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6개월 동안의 삶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한 사람"이 된 것이다.

저자가 짚고 있는 개인 신상정보 데이터는 다양한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인터넷, 주민등록정보, 여행계약 내용, 의료기록, 얼굴 패턴 인식, 행동 패턴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가 관심 대상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들 신상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는지, 폐기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제대로 알기 힘들다. 책 전체에 걸쳐 저자가 정보의 자기결정권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다음은 교실?

정부나 기업이 축적하는 개인정보 데이터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데이터를 돈벌이에 활용하는 기업, 시민들을 감시하는 기본 자료로 데이터를 쓰는 경찰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구글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4년 1월 구글은 인공지능 온도조절기와 화재경보기를 생산하는 네스트라는 회사를 32억 달러에 인수했다. 저자는 이 기업인수를, 구글이 사람들이 사는 집과 관련한 사업까지 뛰어들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집안의 각종 가전제품과 인터넷을 연결해 무한한 사업영역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 과정에서 구글이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조작하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사의 일부 데이터를 국가기관과 공유하는 구글식 시스템이 두렵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구글은 매년 국가기관별 데이터 요청이나 삭제, 차단 내역을 정리해 '투명성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후반기에만 전 세계 국가기관에서 구글에 사용자 데이터 제공을 요청한 건수가 2만7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구글은 그중 65퍼센트에 해당하는 4만3000명 이상의 사용자 정보를 제공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구글 같은 기업들이 정보수집 면에서는 국가기관보다 훨씬 낫기 때문에 국가기관은 더 이상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기업의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112쪽)

자기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저자의 대안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다양한 상품을 공급하는 인터넷의 가능성을 이용하는 것이 하나다. 기업이 개인적·사회적 디지털 생활을 지배하고 통제하지 않도록 제한을 두어야 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독일이 포함된 유럽이든 우리나라든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위협하는 법규나 조치들이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한국 언론에 보도된 두 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 16일 <한겨레>는 "경찰, 학교폭력 가해·피해자 정보 DB화 추진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경찰청이 전국 1만1500여개 학교의 학교폭력 가해자·피해자 신상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을 지난 5월 입찰공고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청의 사업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학교별 폭력서클 구성원 정보, 재학중인 소년범 수도 축적된다고 한다. 경찰이 '가해학생'을 잠재적 범죄자군으로 분류해 수사에 활용하려는 '유혹'을 쉽게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계 내에 있는 학생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외부 국가기관인 경찰이 집적해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인권침해적이라는 문제도 있다.

정부가 올해 12월 18일까지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이 영·유아의 주요 활동공간에 폐쇄회로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개정안은 사회적 반향이 컸던 몇몇 어린이집 내 아동학대 사건에서 촉발된 뒤 비등한 여론에 떠밀려 성급하게 추진된 면이 크다. CCTV 의무 설치에 따른 인권침해적인 문제를 차분하게 살필 겨를이 많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학교 교실 천장에 CCTV가 달릴 날도 얼마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6위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신 강국이다. 많은 이가 정보통신의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매력'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매력'을 앞으로도 계속 맛볼 수 있을까.

벤저민 프랭클린은 "순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도 안전도 보장 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온라인상에 학교폭력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축적하는 일 따위가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여지고 추진되는 우리 현실을 보면 우울하다. 데이터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말테 슈피츠 지음, 김현정 옮김 / 책세상 / 2015. 5. 30. / 283쪽 / 1,5000원)
이 글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내 데이터를 가져다 뭐하게 - 디지털 시대의 자기결정권

브리기테 비어만 외 지음, 김현정 옮김, 책세상(2015)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정보통신#인터넷#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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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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