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관한 이야기다. 그동안 씨앗을 심거나, 편백나무 화분을 들고 오며 식물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딸이었다. 이번 생명과학 수업은 도마뱀에 관한 수업이었다고 한다. 평소 움직이는 벌레를 무서워하는 딸아이는 잘 기를 수 있을까 의심이 됐지만, 지난 15일 월요일 도마뱀을 들고 왔다.
딸아이는 같이 생명과학 수업을 받는 다른 친구가 징그러워 기르지 못하겠다고 해 자신이 기르겠다며 수업 시간에 받은 도마뱀과 함께 친구의 도마뱀까지 받아 들고 왔다. 도마뱀에게 이미 이름까지 지어줬다. 친구 도마뱀은 신디, 본인의 도마뱀은 샌드란다. 나는 속으로 자기도 징그러워하면서 괜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걱정됐지만 딸아이 앞에서 차마 내색할 수 없었다.
저녁을 먹으며 딸아이에게 도마뱀은 뭘 먹는지,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물어보며 생명과학수업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잘 기억하고 있었고 관심도 많아 '잘 기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도마뱀을 키우려면 도마뱀을 담을 수 있는 통과 모래, 살아있는 먹이, 물을 넣어줘야 한다고 한다.
"정말 키울 수 있어?"
첫날은 그냥 지나갔지만,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그냥 작은 통에 모래와 함께 담아온 도마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고 밤새 뛰쳐나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따뜻하면서도 어두운 바닥과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도마뱀의 특성이라고 한다. 도마뱀은 거실 매트 아래서 발견되됐다. 조용하던 아침 시간은 엄마와 딸아이가 지른 고함 소리로 아파트가 뒤흔들렸다.
다행히 아빠가 있어 도망친 도마뱀을 도로 통 속에 넣어 둘 수 있었다. 아빠는 한 차례 더 아이에게 "정말 키울 수 있겠냐"고 물으며 딸아이의 다짐을 받았다. 식탁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루도 안 돼 친구의 도마뱀까지 키울 수 없다고 말하면 친구에게 내가 뭐가 되냐"면서 한 마디도 못하게 만들었다.
딸은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엄마에게 도마뱀은 귀뚜라미와 밀웜을 먹는다며 도마뱀을 위해 먹이를 구하러 가야한다고 조른다. 아직 키울지 말지 우리 부부는 고민하고 있었지만, 딸아이는 막무가내다. "그래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면서 넘어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준비하던 나는 딸아이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신디와 샌드가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말에 딸아이의 오빠는 베란다로 나가는 것을 봤다고 저녁 때가 다 돼서야 이야기했다.
아!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과 나는 베란다에 있는 화분과 짐 사이를 들어 올리며 작은 도마뱀 두 마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됐다. 결국 발견했으나 만지는 것이 두려웠던 아이들과 나는 급기야 아빠한테 전화해 빨리 집으로 오라고 호출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도마뱀 두 마리와 우리 가족의 숨바꼭질은 거의 1시간가량 진행됐다. 베란다의 짐을 하나 둘 들어내자 피할 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 도마뱀을 포착했다. 아빠가 드디어 두 마리 모두를 찾았다.
신디와 샌드가 모두 잡히자 아빠는 화가 난 것처럼 "이렇게 도마뱀을 무서워해서 어떻게 키우려고 하느냐"며 직접 도마뱀 통에 넣으라고 호통을 쳤다. '도마뱀을 잡아 통에 넣지 못하면 당장 다른 데로 보내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딸아이는 울며 불며 두려운 도전을 했고 엉엉 울면서도 도마뱀 보내는 것은 절대 안된다며 괴로운 속내를 드러냈다.
사태가 진정되고 아빠도 딸아이가 도마뱀과 접촉하는 것을 보고 그럼 키우자는 쪽으로 결론났다. 엄마 입장에서 다른 곳으로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엉엉 울면서도 도마뱀만은 다른 데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끝까지 아빠를 설득하는 모습이 우리 두 부부를 흔들리게 했다. 그 길로 딸아이와 아빠는 애완 용품 가게에 들러 살아있는 귀뚜라미 20마리를 사가지고 왔다. 일주일에 2번 정도 밥을 줘야 하는데 살아 있는 먹이만 먹는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도마뱀을 애완용으로 키우면서 도마뱀의 밥으로 살아있는 귀뚜라미 먹이 또한 사와야 한다. 이 동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엄마는 두렵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수원e뉴스와 꼬마천사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아트인사이드 홈페이지에도 중복 게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