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요, 한국전쟁 발발 65돌이다. 1945년 해방둥이인 나는 해방 당시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조숙했던 탓인지 다행히 여섯 살(만 5세) 때 겪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 가운데 어떤 장면은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나는 이 기억으로 2004년부터 세 차례 70여 일 동안 미국 메릴랜드 주 칼라지 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한국전쟁의 생생한 장면을 찾아 2천여 컷 가량을 스캔해 올 수 있었다.
내 고향은 경북 구미로, 그 유명한 낙동강 옆 다부동전투지와 인접한 곳이다. 그 무렵 정부에서는 전황을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아, 우리 고향 사람 대부분은 설마 인민군이 여기까지 내려오겠느냐고 피난도 가지 않고 태평스럽게 살았다. 그렇게 방심한 사이 인민군은 이미 구미 아래 약목, 다부동 건너편까지 진주했다. 그제야 우리 집을 비롯한 동네사람들은 가재도구를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피난 길을 떠났지만 낙동강을 건널 수 없어, 냇가나 산기슭 아무데나 움막을 짓고 살았다.
피난 중, 낮이면 이따금 하늘을 덮듯이 미공군 폭격기들이 몰려와서 마치 염소들이 똥을 누듯이 폭탄을 마구 떨어트렸다. 그리고 밤이면 전지를 든 군인(주로 인민군)들이나 보안대원들이 피난 움막으로 와서 얼굴을 일일이 비추며 군인(국군)이나 경찰, 그리고 가족들을 잡아갔다.
석 달 후 피난지에서 돌아오자 마을마다, 그리고 산이나 들 곳곳에는 소총 탄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우리 악동들은 그 탄피를 주워 전쟁 후 몇 해 동안 탄피 따먹기 놀이를 하며 지냈다. 인민군들이 물러가자 구미 금오산 정상과 어귀, 그리고 구미역 빈터에는 미군 퀀셋 막사가 들어섰다. 그러자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뾰족구두를 신은 누이들이 고향 마을에 몰려왔다. 코가 엄청 큰 미군들이 지프차 옆에 으레 그런 누이를 태우고 지나가면 우리 악동들은 손을 내밀고 그 지프차를 따라가며 외쳤다.
"헤이, 기브 미 초콜레트!"그러면 미군들은 "헬로우, 보이즈!" 하면서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던져주곤 했다. 그걸 우리 악동들은 붕어처럼 받아 먹으며 좋아서 히득거렸다.
아마도 그 시절의 이런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모두 70대 이상이거나 대부분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그제나 이제나 남북의 대치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네가 군에 갈 나이에는 남북이 통일이 되었을 거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손자가 군에 갔다 온 지 벌써 40년이 넘었고, 이즈음은 나의 손자뻘이 군에 가서 휴전선 철조망을 지키고 있다.
국토 분단 70년, 한국전쟁 발발 65년이 지난 지금도 휴전선 일대는 긴장감이 돌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 … 이런 말로 국론이 분열되고, 남북 동포들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모두 상처를 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헤어진 이산가족들은 아직도 대다수 서로 상봉치 못한 채 스멀스멀 세상을 떠나고 있다.
2005년 7월 22일, 나는 백두산에 가는 도중 쏟아진 빗줄기를 잠시 피하기 위해 들어간 한 건물 처마 밑에서 북녘 오영재 시인을 만나 첫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날은 베개봉 호텔 현관에서 만나 그제야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표정에는 어딘가 깊은 우수에 젖어 있었다. 아마도 남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당신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아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남 장성에서 나고 강진에서 자랐다.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북녘 오영재 시인
늙지 마시라늙지 마시라, 어머니여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도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이 가슴이 아픈데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우리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머리 한 오리 없이내 백발이 된다 해도 어린 날의 그 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그 다음엔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어통일 향해 가는 길에 가시밭에 피 흘려도내 걸음 멈추지 않으리니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내 어머니를 만나는 그 날까지라도오마니!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 오영재 지음. '40년 만에 남녘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하지만 오영재 시인 모자는 끝내 상봉치 못한 채 어머니도, 아들도 이제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남북 정치지도자들의 직무유기... 묻고 따져야 한다정치란 무엇인가? 바로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백성들이 편안히 잠잘 수 있게 돌보아 주며, 백성들의 근심 걱정을 들어주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분단 70년 동안 뭘 하였는가?
정치지도자라면 그 무엇보다 조국 분단 문제를 해결하고, 휴전상태를 끝내고 마땅히 평화로운 남북관계로 이끌어 가는 게 최우선 과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으며 한 백성으로 남북 정치지도자에게 그 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일천만 백성들이 혈육을 만나지 못해 울부짖는데도, 이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그대들은 최선을 다했는가? 아니 이를 외면하고, 때로는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당신들의 정권연장의 도구로 삼거나 하지 않았는가?
분단 70년, 한국전쟁 발발 65년이 지난 지금도 분단 문제가 한 발자국 진전이 없다면, 이는 그동안 남북 정치지도자들의 직무유기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백성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이제는 백성들이 깨어나 그들의 직무유기를 묻고 따지며, 이 문명 세상에 말도 안 되는 혈육간 생이별과 동족상잔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
한국전쟁 65돌을 맞는 오늘, 남북 정치지도자들은 그동안 직무유기에 대하여 팔천만 겨레 앞에 무릎을 꿇고, 깊이 사죄를 하는 것이 바른 태도일 것이다.
전후 70년 동안 분단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북 백성들은 너무 억울하다. 이 21세기 문명 세상에 혈육을 지척에 두고 만나지도 못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어느 누가 백성들의 이런 원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