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도 코사니에 머문 지 열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면소재지보다 작은 이 마을에 무슨 볼일이 그리 많아 월세방까지 얻어 놓았단 말인가. 매일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서다가 오후가 되면 몇몇 식당과 생필품 가게들이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상가를 하루 일과처럼 기웃거리고 있었다. 상가라고는 하지만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수 있는 술집은 고사하고 술파는 가게조차 없는 마을이다.
밤이 깊어지면 두터운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가 이른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산책길을 나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숨 막힐 정도로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일상의 반복에서 하루하루 새로운 사건들과 만났다.
히말라야 만년설 난다데비를 옆에 끼고 올드 코사니로 향하는 산책길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미소를 주고받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나마스테'의 인사말꼬리에는 환한 미소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올드 코사니 산책 닷새째로 접어 들 무렵에는 매일같이 미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른 아침 소젖을 짜거나 땔감을 준비하는 여인들, 웃을 때면 앞니에 틈새가 보이는 군용 부식트럭 운전기사, 환하게 웃어주는 등굣길 아이들. 그리고 낯선 이방인의 냄새를 익혀가는 올드 코사니의 개들. 대부분 인도 개들이 그렇듯이 이곳 올드 코사니 개들 역시 목줄은 물론이고 묶여 있지 않다. 특히 내가 이름 지은 '멍멍이'는 올드 코사니 지킴이처럼 늘 똑같은 언덕 위에 턱하니 앉아 있다.
멍멍이가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을 때면 마치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수행자를 연상케 한다. 전생에 나와 뭔 인연이라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나자 마자 나를 따라 나섰다. 산책길을 나설 때마다 멍멍이와 더불어 오늘은 새로운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곤 하는데 오늘은 검은 피부의 인디언을 만났다.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길을 나선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마스테,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나마스테, 한국사람 입니다."인도 사람들 대개가 그렇듯이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쪽인가 남쪽인가를 정확하게 물어본다. 나는 종종 농담 삼아 북쪽에서 왔다고 대답하곤 하는데 그들은 놀라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쪽 코리아, 북쪽코리아는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델리 대학의 교직원이라고 하는데 델리 대학에서 '남쪽 코리아' 학생들을 종종 만나고 있다 한다.
"짜이 한 잔 하시겠습니까?""좋습니다."우연찮게 그를 만난 곳은 구멍가게 앞이었다. 올드 코사니 산책길에는 사탕, 과자, 음료수 등을 팔고 있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두 군데나 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가게 문을 여는데 두 군데 모두 인도의 전통 차, 짜이를 팔고 있다.
그가 앉아 있는 구멍가게는 바로 전날 내게 또랑또랑한 영어 발음으로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서 무엇 때문에 인도에 왔는지, 온 지 얼마나 되는지, 가족은 몇 있나 되는지' 심지어는 '나이가 몇 살이냐'며 기초영어 회화 시험 보듯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퍼붓던 여자 아이네 집이었다. 구멍가게 앞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긴 머리를 털고 있던 녀석이 반기며 집안에 대고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부른다.
달콤한 짜이를 마시면서 우리는 가게방 집 아이와 나눴던 대화처럼 기본적인 영어 회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신상 파악을 했다. 그는 꼬사니에 온 지 이틀째 됐으며 휴가차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가 나의 인도 여행길을 물어왔다.
"앞으로 어디로 여행을 떠날 예정입니까?" "정확한 목적지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힌두교인입니까?"
"아닙니다. 크리스천입니다. 델리에는 크리스천들이 꽤 있습니다." "남인도 쪽에 크리스천,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옛 교회 건물도 많고요...""맞습니다. 남인도에는 오래된 교회 건물들이 많고 크리스천들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께랄라 주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아! 께랄라! 서벵갈 주와 함께 공산당 정부가 있었지 않았나요?""맞습니다."나는 종교의 나라, 인도에 공산당 지방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증오의 대상이기도 한 '빨갱이', 공산당 정부가 인도에서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인 께랄라 주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여 기회가 되면 서벵갈 주와 함께 께랄라 주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기독교의 비율이 20%에 육박하는 께랄라 주는 인도에서 교육수준이며 소득이 높은 곳이다.
"인도의 크리스천들과 코뮤니스트의 관계는 어떠합니까?""우리 크리스천들은 코뮤니스트들과도 잘 통합니다." "당신도 코뮤니스트인가요?""그렇습니다. 나도 코뮤니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나는 반쪽 코뮤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아, 북쪽 코리아!"내가 반쪽 코뮤니스트라고 하자 그는 곧바로 이해했다. 나는 그에게 떠듬거려가며 때로는 번역기를 두드려 한국인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의 '레드 콤플렉스'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한국의 남북은 한 형제입니다. 그러니 나의 반쪽은 코뮤니스트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에서 기독교인이 당신처럼 자신을 코뮤니스트라 소개한다면 이단으로 찍힙니다. 심지어 한국의 어떤 크리스천들은 공산당을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아주 나쁜 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그건 아주 나쁜 생각입니다. 자신들만의 사상이나 종교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주 정신병적인 것입니다.""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나는 인도 말을 모릅니다. 하지만 좋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마스테'입니다. 종교와 사상을 초월해 '당신의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는 이 말을 아주 좋아 합니다.""나마스테는 매우 좋은 말입니다."
크리스천 코뮤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히말라야 난다데비에 걸친 구름들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인도에 온 지 한 달 하고 사흘이 넘어서는 오늘 아침은 영어가 좀 됐다. 인천공항에서 인도청년을 만나 처음 영어를 시작한 이후 가장 길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언어의 벽에 부딪히면 손전화기에 깔려 있는 번역기를 두드리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짧은 영어 소통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인도를 돌면서 나는 아주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암리차르 황금사원에서는 아무런 입장료도 받지 않고 검문검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황금사원 식당에서 시크교도들이 하루 종일 계속해서 무료 배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밥을 먹는데 종교가 다른 자. 가난한 자 부유한자 모두가 한자리에서 먹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인도의 힘을 보았습니다.""예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시크교도 역시 대단한 종교입니다."시크교가 인도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힘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더니 기독교인인 그 또한 두말없이 수긍했다. 하지만 내 영어의 한계는 분명했다. 더 이상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싶었다.
'본래 종교의 기본 교리는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푸는 데 있다. 사랑에 있다. 자비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약자의 편에 서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성직자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타락한 종교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조차 신도수를 늘려 교단을 확장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천당과 지옥을 내세워 자신들의 교회와 사원에 베풀라 겁박하고 있다. 인도는 어떠한가?타락한 종교는 추악한 자본가와 닮아 있다. 추악한 자본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 빵을 던져 준다. 빵을 던져 주는 이유는 자신들의 자본을 살찌게 하는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다. 하여 가난한 자들의 고혈을 빨아 제 몸집을 늘리는 추악한 자본과 신을 내세워 신도들의 주머니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털어가는 타락한 종교는 한 몸이나 다름없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델리 대학교의 교직원이라는 크리스천 코뮤니스트와 헤어져 다시 산책길을 나섰다. 코사니에서 느릿느릿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차밭에서 참새 혓바닥만한 향긋한 찻잎을 입에 넣고 씹어가며 민박집을 향해 되돌아 설 무렵 등굣길 아이들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빙글빙글 웃기만 하는 녀석들이 오늘은 말을 걸어온다.
"어느 나라에서 왔습니까?""한국, 한국 알아?""모릅니다."한국, 코리아를 처음 들어본 녀석들 중에 한 녀석이 내 이름을 묻는다. '송'이라고 했더니 '송?'하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맞다. '싱어 송' 할 때 그 '송'이다"라고 말해줬더니 녀석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맑은 눈빛으로 까르르 웃어댄다. 그날 이후 녀석들은 멀리서나 가까이에서나 나를 만날 때마다 '송!'이라고 불렀다.
아이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목에서 멍멍이를 만났다. 녀석은 늘 그랬듯이 멀리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적 않고 앉아 있던 녀석이 사진을 찍어대는 내게 포즈를 취하듯 여러 표정을 선보인다.
여느 때처럼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스스 일어선다. 녀석의 몸짓은 언제나 느릿느릿 굼뜨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델리에서 온 크리스천과 짜이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보통 때보다 30여분이나 늦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오길 기다렸을까. 설마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럴 수 있다.' 잠시 혼란스런 머릿속을 지워버리고 녀석과 함께 길을 걷는다.
오늘은 녀석과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 어루만져 주고 싶어졌다.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병든 강아지를 만지다가 그 손으로 눈을 비벼 눈병으로 고생한 일이 있다. 하지만 눈을 비비지 않고 숙소에 돌아가 손을 씻으면 상관없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턱밑을 만져주자 가만히 있다. 그런데 녀석의 눈꺼풀 부분에 진드기가 붙어 있다. 진드기를 떼어주겠다는 내 의중을 간파했는지 녀석이 아무런 반항 없이 몸을 떠맡긴다.
진드기가 떨어져 나온 눈꺼풀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녀석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다시 느릿느릿 걷는다. 80대 노인네 걸음이다. 멍멍이는 나이 많은 개 였지만 젊은 개들처럼 털색이 반들거린다. 상가 주변에서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추레한 개들과 다르다. 평소에는 흐느적거리다가 어떤 일이 발생하면 재빠르게 움직인다. 며칠 전 언덕 위에서 원숭이들이 길가로 다가오려 하자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비켜서며 방어 혹은 공격 자세를 취했다. 마치 흐느적거리는 태극권 고수가 어느 한 순간 힘을 쏟는 동작과 같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원숭이 녀석들이 우리가 걷고 있던 길 앞으로 나서려 하자 잽싼 동작으로 녀석들을 길 옆으로 몰아낸다. 원숭이는 황급히 나무 위로 올라가고 멍멍이는 더 이상 원숭이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방금 전에 뭔 일이 있었나?'라는 무표정으로 가던 길을 아무런 집착 없이 걷는다. 예의 그 흐느적흐느적 힘없는 걸음으로.
멍멍이는 여느 때처럼 내가 묵고 있는 민박집 근처까지 따라왔다. 이쯤 때면 나는 민박집으로 들어가고 녀석은 올드 코사니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늘은 녀석이 계속해서 뉴 코사니로 향해 걷고 있었다. 뉴 코사니 쪽에 사는 개들의 영역이 따로 있다. 뉴 코사니 개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올드 코사니의 개들이 다가오면 컹컹 짖어대며 경고장을 날린다.
하지만 누군가, 사람과 함께 다가오는 그 어떤 개이든 표독스럽게 달려들지 않는다. 몇 차례 짖다가 멈춘다. 멍멍이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멍멍이 곁에는 뉴 코사니로 향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노부부가 멍멍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멍멍이가 노부부를 선택해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멍멍이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있었다. 자신이 따라 가는 사람은 자신을 묶어 놓거나 학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밥을 얻어먹겠다고 따라나서는 것이 아니다. 나는 멍멍이에게 과자 부스러기 하나 줘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며칠 동안 나를 따랐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안전하게 안내해 주는 사람을 따라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 후로도 나는 몇 차례 낯선 사람들을 따라 뉴 코사니로 향하는 멍멍이를 목격할 수 있었다.
나와 녀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특별한 전생의 인연 따위에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녀석이 나를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녀석은 자유로운 길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가 주변의 개들처럼 주워 먹을 것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구박을 당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그런지 몸은 늙어 있지만 당당해 보인다.
녀석은 자유롭다. 적어도 뭇 사람들처럼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천당에 가겠다고 종교의 노예가 되질 않는다. 밥을 얻어먹겠다고 자본의 노예가 되질 않는다. '나는 저 목줄도 없이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끈 풀린 개, 멍멍이만큼이나 자유로운가.' 노부부를 따라 뉴 코사니로 접어드는 멍멍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