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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 퇴치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보건소 홍슬기 주무관.
메르스 퇴치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보건소 홍슬기 주무관. ⓒ 유성호

"메르스자가격리 대상자입니다.
영등포구청 홍슬기 주무관님 그동안 정말 감사합니다!
14일 동안 자가격리 하면서 항상 바쁘신데도 웃으면서 상담해 주시고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 22일 서울시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코너.

한 달 넘게 전국을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환자들과 이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이다.

그러나 그들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보건소 사람들이다. 의심증상이 보이는 환자들이 가장 먼저 보건소를 찾아 상담하는 만큼, 이후 적절한 대처 여부가 그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사태 초기에 폭풍을 겪어낸 서울시 영등포보건소 보건지원과 감염병관리팀 홍슬기 주무관(31)을 '만나고픈 서울 사람' 코너의 첫 번째 손님으로 초대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에 올라온 홍슬기 주무관 칭찬글.
서울시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에 올라온 홍슬기 주무관 칭찬글. ⓒ 서울시청

지난 22일 서울시 홈페이지 '칭찬합니다' 코너에는 한 자가격리자가 홍 주무관을 칭찬하는 글이 올라왔다. 격리 기간 중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이를 보는 홍 주무관은 뿌듯함과 함께 힘들었던 지난날이 슬라이드처럼 스쳐가는 기분이었다.

"뭐, 제가 할 일을 한 건데요. 직장인인 이 분이 격리된 후 부딪쳤던 회사와의 소통 문제를 같이 고민해주고 걱정해준 게 큰 힘이 되셨나봐요. 저와 전화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절박한 심정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6번째 환자 그리고 박원순 시장 폭탄 회견

영등포구는 현재 메르스 사태에서 한 발 비껴난 듯 잠잠하지만 사실 비교적 초기에 홍역을 겪은 지역이다.

영등포보건소가 처음 메르스와 맞닥뜨린 것은 6번 환자가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을 통보받은 지난달 28일. 신속한 조치로 병원 내 의료인 등 2차 감염을 막아냈지만, 이후 그와 접촉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가격리 및 능동감시 대상자들을 관리하는 업무는 고스란히 영등포보건소에 떨어졌다.

"명확한 의심증상이 없고, 확진자와 밀접접촉 같은 연관성이 없으면 검사할 수 없는데 병원 근처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검사를 해달라고 고집하는 분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언론에선 별다른 설명 없이 의심되면 무조건 보건소로 가라고만 하거든요."

원래 에이즈와 한센병이 담당이던 홍 주무관은 이때부터 팀 동료와 함께 격리자 80~90명을 전화로 관리해야 했다.

지난 4일 박원순 시장이 긴급기자회견을 한 이후 일은 좀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기존의 격리자들 외 문제의 강남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들 가운데 영등포구 거주자들의 명단을 넘겨받은 것이다. 이들이 무조건 자가격리시키는 '특별조치' 대상자들이었던 만큼 관리해야 할 사람이 많아졌다.

힘든 건 대상자들을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총회에 참석한 게 확실한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지만, '입구에만 갔다' '명단에는 있지만 실제 가지 않았다' '내가 안 가고 대리출석 시켰다'며 격리조치에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통령과 시장을 향한 욕설도 다 들어줘야 했다.

오후 12시까지 연일 '중노동'에 쓰러진 임신부 동료

 영등포보건소 보건지원과 감영병관리팀 홍슬기 주무관이 검체 보관함을 보여주고 있다. 홍 주무관은 "20명이 넘는 메르스 의심환자로부터 검체를 채취했다"며 "의심환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영등포보건소 보건지원과 감영병관리팀 홍슬기 주무관이 검체 보관함을 보여주고 있다. 홍 주무관은 "20명이 넘는 메르스 의심환자로부터 검체를 채취했다"며 "의심환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 유성호

직원들을 더욱 힘들게 했던 부분은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시가 지자체(서울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보건소로 내려오는 방역체계 때문에, 서울시가 별도의 보고를 요구했고 보건소는 같은 보고를 질병본부와 서울시 모두에 해야 했던 것이다. 문서작업에 치여 정작 중요한 격리자 관리를 못할 지경이었다고 홍 주무관은 하소연했다.

결국 매일 오전 6시 반에 출근해 오후 12시까지 일해야 했다. 결국 옆자리 임신부 동료가 '중노동'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격리를 시키다보니 부작용도 많았다. 기저질환이 있는 격리자의 경우는 병원을 가야 하는데 일반병원에서 받아주려 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당시는 시에서도 미처 지정병원을 마련하지 못해 환자를 수용할 병원이 없었던 것이다. 고육책으로 개인적으로 아는 의사에게 부탁해 입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홍 주무관은 "이 환자는 나중에 결국 메르스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는데, 만약 당시 제때 병원을 못 구해 잘못되기라고 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웠겠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거 사와라, 저거 사와라" 힘빠지게 하는 '진상 격리자들'

 홍슬기 주무관이 관내 메르스 접촉자 및 상담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홍슬기 주무관이 관내 메르스 접촉자 및 상담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 유성호

남이야 어떻든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진상' 격리자들도 직원들을 괴롭혔다.

고열 아닌데도 열이 높다며 검사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약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직원에게 "내가 원래 즐겨먹던 연어샐러드를 사와라", "스팸 사와라", "언제 갖다줄 거냐"고 요구하는가 하면 "(너희가 날 가뒀으니까 너희가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요리하고 세팅해서 가져다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격리자도 있었다고 한다. 의료인인 격리자는 "내 병은 내가 잘 아는 병원으로 가야한다"며 만류하는 직원들을 무시하고 119구급차를 불러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의심 증상이 발생한 사람의 검체를 채취하러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고. 홍 주무관은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더 그랬겠지만, 보호복을 입었어도 어디까지 보호되는지 나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메르스라는 병을 잘 알고 젊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지만, 혹시 내가 감염돼 그로 인해 주위로 퍼지게 되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홍 주무관은 "처음엔 보고 체계 문제로 혼란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며 차츰 체계가 잡히고 일이 잘 처리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해지더라"며 "보고체계와 대처매뉴얼을 잘 정비해서 향후에는 초기부터 일사분란하게 대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보건소에 가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보건소가 하는 일을 처음 알았다고 하는 격리자들이 많다"며 "보건소가 생활이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메르스#보건소#자가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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