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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과 인문적 사유

프랑스의 물리학자이고 수학자이면서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의 유명한 철학적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입니다. 이 명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분명한 사실은 '생각' 즉 '사유'가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이유와 근거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생각을 통해서 존재하고, 또 생각을 통해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들 중에서도 존재와 삶에 대한 문예적ㆍ철학적 탐구와 표현에 중점을 둔 생각을 '인문적 사유(人文的 思惟)'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문적 사유 안에 깃들어 있거나 인문적 사유를 통해 지향하는 가치와 정신, 그것을 우리는 '인문 정신(人文 精神)'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 뿌리인 인문적 사유 안에는 훼손되지 않은 인간 본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는 '성찰'과 '비판 의식', 그리고 '보다 나은 인간적 삶에 대한 지향'이라는 사고의 힘과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성찰이란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맑은 눈으로 마주 서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찰'의 심화ㆍ발전된 사유라고 할 수 있는 '비판 의식'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러한 성찰과 비판의 힘이 '보다 나은 인간적 삶과 세상을 위하여'라는 핵심적 인문 정신의 주된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도 어느 한 사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자신이 보았던 그대로 "임금님이 벌거벗었네"라고 외쳤습니다. 한 아이의 이 외침으로 사람들이 가만가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쑥덕댈 수 있었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맞아, 임금님은 벌거숭이야!"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함으로써 거짓이 드러납니다. 가려지고 숨겨졌던 진정한 모습, 즉 진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이 아이로 인해 사람들은 허위로 보냈을 수 있는 자신의 소중한 한 순간(또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을 되찾아 그 상황에서의 진실된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다 같이 '임금님이 벌거숭이'라고 말함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삶이 진정한 주체적 삶이 되는 것이지요.

진실을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한 노력과 실천, 이것이 바로 인문적 사유입니다.

인간을 존중하는 근본부터 바로 세워야 할 때

현실에서 인문 정신이 구현되고 있는 한 예로 교수들의 사자성어 선정 및 발표를 들 수 있습니다. 교수회에서는 해마다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를 정해 교수신문에 발표합니다. 선정된 사자성어에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언명(말이나 글로써 뜻을 분명히 나타냄)이라는 점에서 실천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인문적 사유가 학문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인 지난 2014년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습니다. 중국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고사 성어인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으로, 거짓과 기만에 의해 옳고 그름이 바뀌어 진실하지 못한 일이나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뒤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호해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라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죄를 씌워 죽였다고 합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라며 "온갖 거짓이 진실인 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현실이 어찌 2014년에만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 현상을 성찰하고 비판한 교수들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지향하기 위해 2015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정본청원(正本凊源)'을 선정하여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근본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인 이 사자성어는 우리 사회에서 무너져가고 있는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희망에서 추천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교육을 비롯해서 많은 부분의 근본이 흔들리거나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는 탄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좀처럼 그렇다는 느낌이나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의 아이와 같은 눈과 입이 가장 필요한 때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존중하는 근본부터 바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식어가는 인간적 온기를 되살리고, 멀어져가는 양심, 배려, 정의, 평등 같은 말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권력이나 돈보다 인간적 가치들이 더 소중하게 존중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절실하게 선행되어야 하는 일은 사람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인문 정신의 힘이 대중 속으로 들어와 살려지고 실현되는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의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해 청소년들이 인문적 소양을 충분히 키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문적 사유#성찰#비판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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