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28사단 집단폭행·사망사건은 폭력으로 얼룩진 군대 폭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윤 일병들의 고통에 관한 보고서다. [편집자말] |
군대에서 겪은 폭행과 가혹행위의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는 정아무개(22)씨는 지난 4월초부터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다. 1미터 80cm가 넘는 큰 키에 선한 눈매를 가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정씨와의 대화는 자주 끊기기 일쑤였다. 기자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예', '아니오' 같은 단답형 답변을 하는 통에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기자는 지난 두 달 동안 모두 6차례 정씨를 만나 그가 겪었던 지옥 같은 군대 생활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산산이 흩어진 파편 같은 고통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정씨에게나 기자에게나 고역이었다. "걔들은 나를 '이름보'(상관에게 고자질했다는 의미로)라고 불렀어요. 10월부터는 거의 밤마다 때리고 욕을 했습니다. 하루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주말은 더 괴로웠어요."'너만 편한 곳에서 일하냐' 폭행이 시작됐다
공군에 입대한 정씨는 지난해 5월 신병훈련을 마치고 광주에 있는 제1전투비행단에 배치받았다. 그에게 고통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 무렵, 건강상의 이유로 행정병으로 보직이 변경된 후 B급 관심병사로 분류되면서부터다.
"(공소장에는) 10월부터 폭행이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 전부터 맞았어요. '너만 편한 곳에서 근무하느냐' '너 때문에 부대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하면서 때렸어요. 올해 1월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석 달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맞았습니다."폭행이 시작되었던 때는 '윤 일병 사건'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군 당국이 병영 악·폐습 근절을 다짐하고 있을 때다. 더구나 그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가해자들은 정씨와 같은 날 입대했던 동기 3명이었다. 이 부대는 같은 계급의 병사들끼리 생활관을 함께 쓰는 동기 생활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 동기끼리 서로 믿고 의지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이곳에서 폭행과 가혹행위가 벌어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가해자 A 일병은 별다른 이유 없이 정씨를 침상에 넘어뜨린 후, 정씨의 배나 등위에 올라탄 상태에서 신체 여러 부위를 간질이다가 때리는 행위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또 좁은 관물함에 정씨를 밀어 넣고 왼손으로는 정씨의 양다리를 든 상태에서, 오른 주먹으로 성기와 허벅지, 엉덩이 등을 때렸다.
지난해 12월 초순에는 정씨의 턱부위를 잡고 강제로 입을 벌린 뒤, 1.5 리터 짜리 콜라 2/3 가량을 입속으로 부어 억지로 마시게 했다. 자신이 마시던 콜라가 남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떤 날은 "때리는 것 대신에 입에 넣어준다" "빨리 처먹어"라며 자신이 의무대에서 처방받은 가글액(인후통 치료제)을 정씨의 입속으로 짜 넣고 삼키게 했다.
"때리다가 지쳤는지 '너 이거 마실래 아니면 또 맞을래'라고 물어봤어요. 내가 억지로 가글액을 넘기는 걸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A 일병은 고통을 호소하는 정씨를 침대 위로 엎드리게 한 후 "연기하냐, 죽을래, 병신아"라면서 푸시업과 복근 운동을 30분가량 시키고, 정씨가 이를 하지 못하면 "장난치냐, 죽을래"라며 손바닥으로 정씨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언어폭력도 도를 넘었다. A 일병은 정씨 집이 경기도 의정부시라는 이유로 동기들이 있는 자리에서 "의정부 북한 빨갱이 XX들, 의정부는 개촌동네, 전쟁나면 10분 안에 사라지는 곳"이라고 공공연히 모욕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씨가 종교행사에 참석하려하자 "가점 받으러 가냐, X도 이 병신XX, 뭐 먹으러 가냐, 이 식충 쓰레기 XX"라고 여러 차례 수모를 줬다.
정씨는 A 일병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후임병들까지 데려와 구경을 시켰다고 말했다.
"'부대생활 똑바로 해라' '너희들도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하면서 나를 때렸어요. 내가 맞는 것을 보면서 낄낄대는 후임병들을 보면서 너무 창피하고 비참해서 죽고 싶었습니다."실제 정씨의 진료기록에는 "탈출하기 위해 사고를 쳐 영창이라고 가고 싶다. 자살하고 싶었지만 부대 안에는 2층 이상 건물이 없다"고 고민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렇게 정씨의 몸과 마음은 멍들어 갔다. 정씨의 아버지가 어렴풋하게나마 아들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눈치를 챘던 것은 지난해 8월경이다.
"입대하고 나서 6월에 첫 휴가를 나온 것이 늠름한 아들을 본 마지막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7월부터도 애 상태가 좀 이상했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집에 오는 길을 못 찾아서 헤매거나, 중학교 1학년짜리 여동생하고 장난감을 놓고 싸우기도 했어요. 설마 부대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합의서 제출, 내 의사와는 상관없다"
견디다 못한 정씨는 지난 1월 초 대대 주임원사에게 면담을 신청해 피해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주임원사 면담 후인 1월 12일 밤에도 A 일병은 정씨를 폭행했다.
1월 13일에야 부대는 이틀 동안 대대장 주관으로 상황조사를 벌였고, 14일에 헌병 수사가 시작되어 A 일병을 구속했다. 폭행과 모욕에 가담했던 다른 2명은 정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정씨는 합의서 제출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었다고 주장했다.
"주임원사가 한 달 넘게 매일 나를 불러 '가해자도 내 새끼다' '빨간 줄만 안 갔으면 좋겠다'면서 합의해 줄 것을 요구했어요. 하루는 세면장에 있는데 대대장이 들어와서 '네가 용서해 줄 수 없겠느냐'고 했어요. 저는 거의 명령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정씨의 주장을 종합하면 상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합의를 종용받는 상황에서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정씨의 아버지는 뒤늦게 재판 과정에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주임원사는 형사처벌과 군 징계 사이의 차이점 등을 물어온 정씨의 의문 해소를 위해 면담한 것일 뿐 합의를 종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 정씨는 법적 성인으로, 부모는 법정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에게 고지할 의무는 없으며 이에 따라 피의자 구속여부 등의 통지 절차는 별도로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정씨는 폭행과 가혹행위의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 PTSD는 전쟁이나 고문,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 이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진료기록은 지난 4월 민간병원에서 PTSD를 진단받기 이전부터 정씨가 이 질환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런 정황은 군 당국의 설명에도 이미 나와 있다.
부대의 설명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1월 8일 밤 주임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음날 면담을 실시했다. 하지만 주임원사 면담 당시 정씨가 의사표현을 못해 '주말을 통해 (피해 사실을) 글로 작성해서 제출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피해사실조차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정씨가 자발적으로 가해자들을 위한 합의서를 제출했다는 부대 측의 설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 2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