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은 국내 만화계에서 이미 중심적 권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 공식적 실태조사들은, 만화계 전반의 한 해 사업적 흐름을 개괄하며 웹툰을 그 일부로 포함하는데 그쳐왔다. 따라서 '웹툰 자체'에 대한 정보는, 작가나 웹툰 플랫폼 관계자에게 전해 듣거나 정부 유관기관의 단편적 보도자료로 가늠하는 수준이었다. 이 아쉬웠던 상황 속에서, 웹툰계를 조망하는데 반가운 참고자료가 하나 발간됐다.
바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진, 세종대 융합콘텐츠연구소가 조사해 지난 6월 초 발간한 <웹툰 산업 현황 및 실태조사>다. 최초로 웹툰 자체의 구체적 실태를 전문적이고 폭넓게 조사한 162쪽 분량 자료다. 아쉬운 건 웹툰을 정작 '문화'나 '작가 노동 실태'가 아닌, '산업적 관점' 위주로만 접근한 점이다. 전반적 메시지는 웹툰 시장 형성과정·현황·이슈 파악을 명료화 해, 시장규모를 더 팽창시키기 위한 정책 제안이다. 즉 관료주의 효율성 논리를 뒷받침 하기 위한 '돈' 이야기다.
웹툰 시장 규모 1719억, 작가 4661명... 그러나 "미생(未生)"
웹툰의 초기형태는 90년대 후반 PC 대중화 이후, 개인홈페이지에 공개된 만화들이었다. 이어서 2003년부터 다음이 웹툰 서비스를 제공해 강풀의 <순정만화>가 가치를 인정받는 등 시장이 형성됐다. 이후 다른 포털들도 후발주자로 서비스에 뛰어들어, 포털 중심의 웹툰 수익 모델 기본흐름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흐름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포털이 작가에 원고료를 지급해 양질의 작품을 확보하면, 충성도 높은 독자들이 생긴다. 광고주들은 페이지뷰(PV)와 순방문자(UV) 수치를 따져 포털에 돈을 지불한다. 여기에 작가 매니지먼트나 판권 관리 등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에이전시 회사들이 달라붙고, 특정 회사의 '브랜드 웹툰'이 제작되거나 '간접광고(PPL)'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적 변주가 일어나 시장이 더욱 팽창한다.
물론 국내 포털 환경이 오늘날 네이버, 다음, 네이트 순의 3자 구도로 굳어지며, 경쟁에 밀린 플랫폼들은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문을 닫았다. 그 과정에서 웹툰 작가들과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레진코믹스' 같은 유료 플랫폼이 2013년에 안착하는 등, 새 수익 모델이 형성 됐고 작가 수익 분배에 재기여해 활력소가 된 것도 사실이다. 2014년 웹툰 플랫폼은(포털·웹툰 전문·신문사·통신사·모바일/SNS 전용·해외) 28개에 이르렀다.
또한 웹툰이 번역 돼 해외로 수출되거나, 국내에선 영화나 드라마 등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문화적 재생산도 이루고 있다. 보고서는 대표적 사례로 윤태호 작가의 <미생>과 최종훈 작가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꼽는다. 계약직 사원 '장그래(임시완 역)'와 그 직장 동료들의 애환을 담은 <미생>은 지난해 10월 tvN에서 드라마화 돼 최고 시청률 10.3%, 유료 전환된 원작도 누적 11억뷰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시장 규모는 어떨까? 2014년 총 4440편의 작품이 연재됐고, 4661명의 작가가 원고료를 지급받았다. 약 1719억 원 규모로, 작가(보조작가 포함) 1083억원, 플랫폼 589억 원, 에이전시 약 47억 원이 분배됐다. 개인홈페이지에 소박하게 올라오던 초기웹툰 시절을 기억하는 누리꾼들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낄만 한 성장이다. 그러나 역사가 짧은 만큼 그 시장은 아직 완생(完生)이 아닌 미생(未生) 상태다. 보고서도 아쉬움으로 지적하듯, 웹툰이 전체 산업 시장에 끼치는 '생산유발효과'나 '부가가치 유발효과' 지수는 전통적 만화 시장보다는 낮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고서가 제안하는 정책은 의미심장하다. 정확한 시장규모 산출을 위해 플랫폼들이 최대한 투명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해외 수출에 있어서 매끄러운 현지 번역의 강조는 부차적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존 웹툰 이용이 포털-웹툰의 광고-무료구독 위주였다면 이제는 유료 플랫폼 이용 등이 증가하므로 '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말을 쉽게 풀면, 이제 웹툰도 팔아먹을 수 있는 '상품'으로 보자는 거다. 직접 돈을 지출할 독자들에겐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고서는 이용자들의 유료 전환시 지불 의사가 최대 3000원임을 확인하고, 한 번 유료 경험을 가지면 지불 의사가 5000원까지 늘어나는 점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돈을 더 지출해 시장 규모가 양적으로 늘어난들, 과연 웹툰 시장이 '완생(完生)'이 될지는 일단 한 켠의 문제로 남겨두자. 우선은 웹툰 이용 비중의 88.5%를 차지하는 포털-웹툰 구조에서도, 적절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신진 작가들도 여전히 "미생(未生)"이긴 마찬가지
살짝 발만 담갔다 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부실한 비중이지만, 중요한 보고 하나가 눈길을 끈다. 바로 웹툰 작가 개개인들의 상황이다. 이는 그간 풍문으로만 알려졌는데 반해, 대략적으로라도 공식적 윤곽이 잡힌 셈이다. 플랫폼 별 작가 수익은 다르지만, 평균은 위 표와 같다. '브랜드 웹툰', '유료화 수익', '판권료' 등 부가 수익을 제외한, 주 수익은 매월 지급되는 '원고료'다. 플랫폼들은 작가를 '신인', '중급', 'SA급'으로 나누어 보상을 차등화한다. 여기엔 작가의 인지도, 조회수, 별점 등의 요소들을 고려한 자체 평가 시스템이 적용된다.
눈여겨 볼 부분은 전체 작가 30% 정도를 차지하는 신인들의 120~200만 원 수준의 고료다. 문체부가 보고서 내용을 입맛대로 요약해, 배포한 3쪽 짜리 보도자료의 "유명작가 회당 500~600만원 원고료 받기도"라는 대서특필 너머의 실상이 대단하진 않은 셈이다. 또한, 웹툰 작가의 수익원의 다양성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신인 작가들에겐 먼 이야기다. 무엇보다 작품 하나가 탄생하는 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객관적 조건만 따져봐도 그렇다. 고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준비하고, 사전에 다양한 문헌들을 참고하고 조사에 나서는 등 '밑천'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주1회 연재 조차도 마감기한을 맞추려 많은 체력 소모가 따르는데,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보조 작가(어시스턴트나 문하생) 고용 비용을 신인 작가는 충당이 어렵다. 금액적으로도 신인들은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므로, 그 보상이 절대 많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 경력을 인정받고 등급이 재평가 될 때마다 수익은 증대되겠지만, 현재 그 노동의 질이 적절히 평가받고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하지만 보고서는 그저 120~200만 원을 받으며, 거기엔 자체 평가 시스템이 적용됐다는 이야기 정도에 그친다. 물론, 보고서가 웹툰의 질적 차원이나 신인 작가들의 현실에 대해 아무 언급도 안 하는 건 아니다.
가령 준비가 미흡한 신생 플랫폼들이 과열경쟁으로, 콘텐츠의 질적 저하와 갑작스런 운영 중단으로 신인 작가들이 연재할 플랫폼을 잃게 될 우려를 전한다. 이를 위해 신인 작가들을 관리할 수 있는 '중장기적 작가관리 시스템'과 '자율 심의 제도'를 도입 및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구체적 내용은 불분명해, 오히려 두 가지 우려가 생긴다.
첫째로, 그럼 거대 플랫폼들의 과열경쟁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인지 해명이 없다. 신자유주의의 '선택과 집중' 논리로 대기업 규모의 플랫폼들은 풀어주고, 신생 플랫폼들은 자율 심의제로 규제 아닌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둘째로, 작가들을 관리한다는 발상이 자칫 정권의 입맛에 맞는 어용 작가 양성으로 보일 수도 있다.
웹툰? 노동과 정치 차원의 접근도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실태조사는 그 내용의 전문성과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그 유관기관의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오해 아닌 오해의 여지도 남긴다. 웹툰 <미생>과 탤런트 임시완 자체는 수익적으로 '완생'이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전히 신인 작가들과 웹툰 시장 자체는 '미생'으로 남아있다. 여기서 이미 고민 됐어야할 점은, 첫째로 작가들의 노동이 질적으로 적절히 평가받고 분배받고 있느냐다.
이 점을 잡아낸 언론사들은 거의 없다. 실제로 보고서를 직접 검토하지 않고, 문체부가 대서특필한 <웹툰 시장이 국내 만화시장 재도약 견인>이라는 보도자료 제목과 내용을 딱봐도 그대로 받아쓴 티가 나는 기사들이 상당하다. 이를 날카롭게 잡아낸 건, <미디어스>가 지난 6월 12일 발행한 만화평론가 성상민씨의 분석 정도다.(관련 기사:
우리가 보는 그 '웹툰', 작가들은 얼마나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