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시죠?"그녀가 힐끗 돌아봤다. 프랑스 길거리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한국말을 얼른 알아들었으니 한국인이 틀림없겠다. 유럽을 며칠 돌아다니다 보니 중국인과 한국인과 일본인은 확연히 구별된다. 서양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겠지만 같은 동양인이 보기에는 서로 다르게 생겼다. 그전에 뭔가 이국적인 다른 느낌이 온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한국인으로 판명된 그녀가 사무적인 한국말로 짧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이전에도 나같이 촌스러운 한국인 관광객으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아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아, 네.""그런 것 같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에요. 그런데,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가 어디 있나요. 덥고 목이 말라서. 아무리 둘러봐도 가게가 보이지 않고 프랑스 말도 못 하니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그렇고. 프랑스에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쓰면 싫어한다고 해서. 그러던 참에 반갑게도 한국인이 눈에 띄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얼굴을 보니 역시 한국인의 인상과 표정이다. 무뚝뚝하다. 골격도 중국인은 좀 더 넓게, 일본인은 좀 더 좁게 생겼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나 됐을까. 아마도 미술을 공부하고 싶은 꿈을 이루려고 만학도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가난한 유학생이 아닐까. 아니면 유럽을 이리저리 자유분방하게 떠도는 한국인 집시.
프티 프랑스의 풍경을 그리는 한국인 길거리 화가그녀는 프티 프랑스 골목 한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로 프티 프랑스의 동화같은 길거리 풍경화를 그리는 길거리 화가로 보인다. 학비나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겠지. 머나먼 이국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리며 살게됐는지 궁금했다.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녀의 안색이 피곤해보여 참았다.
"저기 카페가 있는 광장을 돌아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나 있어요."그녀의 다소 까칠한 태도 때문에 원하는 답을 들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다. 그녀 역시 몸 안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는 어디에서 살든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귀찮더라도 프랑스인이나 독일인이 아닌 같은 한국인을 외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고마워요. 그림이 참 좋네요."나는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좋아보여 무심코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그러자 그녀는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사진은 찍지 마세요. 찍은 사진은 어서 지워주세요."당혹스러웠다. 그저 그림이 좋아보여서 찍은 것인데, 그림 실력을 인정해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무엇보다 한국에 돌아가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의 프티 프랑스 어느 골목에 가면 한국인 화가가 있다, 멋진 그림을 그리고 살고 있다고 조국의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반응이 아쉬웠다.
프랑스 같은 독일, 독일 같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2014년 5월, 대산농촌재단의 농촌공동체 해외연수단에 운 좋게 참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섬 아닌 섬, 한국의 땅과 하늘을 벗어나는 사건이었다. 계획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농촌지역을 열흘 동안 돌아다니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 미처 프랑스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정표에서 스트라스부르그라는 지명을 얼핏 보기는 했으나 그곳이 프랑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스트라스부르그로 발음되니까 독일의 어디라고만 생각했지 프랑스 땅이라고는 차마.
살펴보니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얼마든지 그렇게 착각할 만하다.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역이자 분쟁지역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그동안 땅의 주인이 독일과 프랑스로 몇 번이나 뒤바뀌었다.
아닌 게 아니라 9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이다가 1681년까지 독일 땅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접수하면서 프랑스 땅이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18세기에는 다시 독일로 점유권이 넘어갔다. 1차대전이 끝나면서 또 프랑스의 땅이 되었다. 아직도 '알자시앵'이라는 독일어 방언이 남아서 통용되고 있을 정도로 독일이면서 프랑스인 땅이 스트라스부르그이다. 과연 '길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답다.
독일에서 라인강을 도강하면서 만나는 스트라스부르그의 풍광은 그 극적인 역사만큼이나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수백 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오래된 목조건물, 돌로 포장된 도로, 운치있는 운하와 다리. 과연 1988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하다. 마치 잠실이나 용인에 조성된 대규모 놀이공원같다.
스트라스부르그는 행정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다. 청소년기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무대인 알자스주의 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로 유렵평의회, 유럽연합(EU) 의회 등이 있어 '유럽의 수도'로 불린다. 지정학적으로 유럽통합의 상징이다.
도시의 랜드마크는 단연 프티 프랑스(Petite France) 지역이다. 고풍스런 건축물이 즐비하고 깊은 골목이 이어지는 고도를 걷다보면 마치 그림동화책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작은 프랑스'라는 뜻의 프티 프랑스는 이곳에 위치했던 병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국경 접경지대로 전쟁이 잦았던 이 지역에서 성병에 걸린 군인들이 치료받았다.
붉은 사암의 웅장한 고딕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 도시의 불편하고 아픈 역사를 치유하려는 듯하다. 도시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142m 높이로 솟은 15세기의 첨탑이 도시를 수호하는 솟대같다.
구텐베르크의 동상이 서 있는 쿠텐베르크 광장도 이채롭다. 광장에는 유원지처럼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다. 유럽 최초의 금속 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는 1434년 당시 신성로마제국령이었던 스트라스부르그로 이주했다. 이후 6년여 동안 이곳에서 금속 세공기술을 연마했다고 전해진다.
전기 트램·공유 자전거, '생타적 도시재생의 모델' 라인강변의 역사적 고도 스트라스부르그는 역사책에만 기록된 정체된 관광도시가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도시행정가들이 견학을 오는 친환경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로 움직이는 트램(tram), 자전거 중심의 교통체계를 중심으로 친환경 도시재생사업을 혁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구 26만의 프랑스 9대 도시인 스트라스부르그는 그동안 차량 증가에 따른 교통 정체, 환경 오염에 시달려 왔다. 시는 친환경적인 방법을 통한 도시재생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결정을 했다.
그래서 1990년부터 10년간 시민이 중심이 된 제1차 지역발전계획을 통해 도심의 생활 환경부터 개선했다. 이어서 'Strasbourg Eco 2020 프로젝트'로 대중교통·보행자 중심의 친환경도시를 조성했다. 특히 트램, 자전거, 카셰어링, 보행 사업 등을 통한 대중교통체계 개선을 위해 공공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스트라스부르그의 트램은 모두 전기로 움직인다. A에서 F까지 6개 노선, 총 69개 역을 보유하고 한달 30만 명이 이용하는 프랑스 최대규모다. 이른바 'Park & Ride' 네트워크로 자동차 수요를 억제한 점도 남다른 성과다. 이는 자동차 이용자가 트램 정거장이나 도심지에서 몇 분 걸리지 않은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전거 공유 시스템인 'Velhop'도 인상적이다. 스트라스부르그시는 지속가능하고 자연스러운 교통이동성을 위해 4400대에 이르는 Velhop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대전 등 한국의 일부 도시에서 벤치마킹한 모델이다.
이밖에 친환경 먹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근교 시민농장을 분양하는 등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렇듯 스트라스부르그의 미래비전은 한마디로 '그린시티', 녹색도시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그 '녹색'과는 정책의 진정성과 효과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유럽의 고도, 유럽의 수도로서 관광명소인 스트라스부르그의 녹색도시 행보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자 실천이다. 유럽의 생태도시, 유럽의 친환경수도로 도시를 재생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외부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아닌 내부 정주시민들의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 거듭 나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래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도 시민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