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으로 알려진 예술가들의 모습은 화려하다. 선을 몇 개만 그어도 억대를 호가하는 작품을 보면 예술가들의 경제적 상황은 여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는 엄청난 저작권료와 평생 먹고 살아도 모자람이 없는 소위 '음원 연금'이 있다. 대중적으로 부각된 예술가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런 예술가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다. 어쩌면 미래의 예술계를 이끌어나갈 인물일 수도 있는, 이제 막 예술계에 진입을 꿈꾸는 예술가들을 말한다. 그동안 특별히 주목받거나 조명되지 못했던 예술계의 '미생'들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화려하고 자유로울 것만 같다. 길거리 아무 데서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작업실은 독창적으로 꾸며져 있고,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며 자신만의 느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화려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 문제는 결국 돈이었다.
결국 돈이 문제지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김상우(25, 가명)씨는 현재 뮤지컬 관련 전공 대학에 재학 중이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평일 저녁시간에도 혹시라도 시간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공연준비를 하느라 학교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말에 시간이 남을 때 대본을 외우거나 노래를 준비하는 등 공연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겨우 짜낼 수 있다. 원래 지역예술가단체에 소속되어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활동도 했다고 한다. 당시 뮤지컬에 주연을 맡아서 약 15만 원을 받았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쏟은 돈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보수였다.
그래도 아직 초창기여서 그런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건이 터졌다. 지인과 회사를 차려서 공연을 기획하고 직접 공연도 뛰곤 했는데, 그 회사 명의를 김씨의 명의로 해놓았다고 한다. 회사를 차리면서 필요한 비용을 이것저것 쓰다 보니 빚이 생겼는데 그것을 공연수익으로 메우기엔 모자랐고, 지인은 빚을 남겨놓고 연락이 끊겼다.
그 금액은 약 130만 원 정도 되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김씨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매달 10만 원씩 갚아가는 중인데 아직 다 갚으려면 1년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예술가들 사이에서 사기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에요. 지인이 행사를 해달라고해서 행사를 해줬는데, 원래 주기로 했던 금액에 절반도 안 되는 금액만 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친한 사이니까 돈 달라고 하기도 애매해요."예술 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매우 적고, 그 외에 지출해야할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사기까지 당하니 여러 가지로 힘들 수밖에 없다. 그에게 꿈을 물어보자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을 것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최근에는 밤새 공연준비를 하고 찜질방에 갔는데 샴푸를 살 돈이 없어서 쓰레기통에 있는 샴푸를 썼다.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그들에게 돈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가장 큰 문제이자 골칫거리다.
예술가에게는 정규직이 없나요?
예술가들에게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면 돈과 관련한 문제가 해결 될 것처럼 보인다. 단적으로 저작권료나 정기공연으로 정기적인 수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급되는 공연비나 저작권료는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금액보다도 적다. 이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서 정기적인 수익을 창출해내기가 어렵다.
원맨밴드를 하며 이미 인디음악 쪽에서는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젊은 예술가 김미선(29, 가명)씨는 정기적인 수익이 없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그녀는 이제 막 팬층을 쌓아가고 각종 음원사이트에 자신의 노래를 올리며 공연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원사이트 구조상 사람들이 일정 횟수 이상(일정 금액 이상) 음원을 듣지 않으면 돈을 지급받을 수가 없고, 그 돈의 양도 생계를 유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소속사에서 연봉으로 돈을 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능력만큼 받아야지 그러면 되냐 라고 말할 거 같아요. 근데 우리는 그게 좋은데 (웃음) 우리는 그렇게 될 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연으로 들어오는 돈도 불규칙하고, 저작권으로 들어오는 돈도 쥐꼬리만 해요.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기만 하면 그래도 음악하고 살만할 텐데…."이제 막 밴드를 시작한 유지겸(25, 가명)씨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지만, 클럽에서 지급하는 돈은 고작 하루에 4만 원이다. 4명이서 하는 밴드인데 4등분하기도 애매하고, 한 명이 늦어서 택시를 타 2만 원을 내고 뒤풀이 비로 2만 원을 쓰고 나니 끝났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것은 반쯤 포기한 상태이다. 그들은 클럽공연이 정기적으로 있어도 워낙 적은 돈을 받기 때문에 정기적인 수익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음악은 역시 취미로 해야 한다며, 그들의 활동은 아직도 생산보다는 소비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젊은 예술가의 생존을 위하여예술가들의 삶은 사람들의 생각만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어쩌면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결국 생존과 연관되는 돈은 큰 골칫거리다. 특히 이제 막 예술을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돈은 그들이 예술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포기하거나, 예술을 부업으로 하는 것, 가난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것 정도의 선택지밖에 가질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결국 문화예술계 전반을 암담하게 만든다. 젊은 예술가들은 다음세대를 이끌어나갈 유망주들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이 유망주들이 돈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젊은 예술가들의 어려움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합적이다. 유명무실한 제도, 부조리한 교육, 곱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 어느 것 하나 젊은 예술가들에게 달가운 것 없는 현실이다.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통 받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다. 미술대학 내의 모순 때문에 힘든 젊은 예술가도 있고, 비전공자만이 겪는 어려움도 있다. '이름값'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와 큰 화제가 되었던 열정 페이의 문제도 있다. 누군들 시작하는 사람에게 시련이 없겠냐마는, <젊은 예술가의 눈물> 기획에서는 그 지독한 현실들을 미약하게나마 드러내보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오지헌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열리는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