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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6년 12월 21일 오전 고려대 본관앞에 출교조치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지지학생들의 천막농성장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 2006년 12월 21일 오전 고려대 본관앞에 출교조치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지지학생들의 천막농성장이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2006년 4월 20일,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나는 친구의 머리를 하얗게 삭발해주어야 했다. 당시 뉴스를 보고, 내 주변 사람들은 그 친구를 비롯한 7명의 친구들이 "패륜아"라고 말했다. 함께 대학생활을 하던 친구들이 '패륜아'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고려대학교는 병설보건대를 '통폐합'했다. 병설보건대는 고려대학교와 같은 재단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운영상으로는 분리되어 있었다. 보건 분야에 특화된 전문대였던 병설보건대는, 고려대학교 안에 소속된 하나의 단과대로 흡수 통합됐다. 생명대, 의과대 등 관련 단과대와 함께 묶어서 대학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병설보건대 재학생들이었다. 고려대 측은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교육의 질과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학생들을 달랬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기존 보건대 재학생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수업 폐강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등록금만 본교 수준으로 인상되었다. 심지어 학교 측은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보건대 재학생들의 투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006년 '교수 감금 사태'는 정말 '감금'이었나

결국 2006년 4월 6일, 통폐합에 분노한 보건대 학생들과 본교 학생들이 함께 본관으로 향했다. 본관을 항의 방문한 학생들은 처장단 회의 중이던 보직 교수님들에게 자신들의 요구가 적힌 종이를 접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직 교수들은 학생들의 대화 요구를 수차례 외면하였고, 이 요구안을 받지 않았다. 지나쳐 나가버리려는 교수들을 학생들이 가로막자 항의 방문은 "감금 행위"라고 규정됐다.

심지어, 보건대 학생들에게 "너희는 우리학교 학생 아니니 우리학교 학생만 남고 나가라"는 말까지 하는 등 시위 참가 학생들을 자극했다. 분노한 학생들은 보직 교수님들이 요구안을 받아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들의 대치는 결국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학생들이 해산하면서 끝났다.

학교 당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학생처는 당시 상황 대해 "감금 일지"라는 터무니없는 과장글을 썼고 이를 인터넷에 유포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 내용을 사실상 그대로 받아써서 보도했다. 순식간에 학교 측의 비민주적 태도에 항의하던, 시위에 참가한 내 친구들이 모두 '패륜아'로 둔갑했다.

 지난 2006년 12월 21일 오전 이필상 총장 취임식이 열리는 고려대 인촌기념관앞에서 출교조치를 당한 학생들과 지지학생들이 학교측의 '천막 철거 및 대지명도' 소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침묵시위를 위해 행사장 진입을 시도하자 교직원들이 가로막고 나섰다.
지난 2006년 12월 21일 오전 이필상 총장 취임식이 열리는 고려대 인촌기념관앞에서 출교조치를 당한 학생들과 지지학생들이 학교측의 '천막 철거 및 대지명도' 소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침묵시위를 위해 행사장 진입을 시도하자 교직원들이 가로막고 나섰다. ⓒ 권우성

내 친구들은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지난 2005년 이건희 삼성 회장 명예 철학 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 등을 주도했다. 학교의 정책들에 반대 목소리를 적극 내온 것 등이 징계의 진짜 이유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 나중에 학교측도 이런 학생들의 정치 성향과 '전력'을 징계 결정 당시 고려했다고 진술한 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여론몰이가 시작됐고, 학교 당국은 결국 '출교'라는 극단적 징계를 내렸다. 입학 사실까지 말소한다는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징계 앞에서, 내 친구들은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과 함께 본관 앞 천막 농성을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 당시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있던 내게, 친구가 '바리깡'을 내밀었다. 자기 머리를 밀어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듣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이것이 자유, 정의, 진리를 말한다는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 이후로 이제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내 친구들에게 출교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사회적 관심과 연대, 법원 판결에 힘입어 학교로 복학할 수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진실도 얼마간 드러났다. 법원에서 출교 무효 판결이 난 뒤 고려대 당국은 다시 한 번 퇴학 징계를 내렸다. 퇴학 무효 판결에서 법원은 학교 측이 제시한 시위 사실 외의 패륜 행위가 실재했는지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왜곡된 진실과 부당 징계로 내 친구들이 입은 상처와 피해는 사라지지도, 아물지도 않았다. 고려대는 자신들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커녕, 여전히 징계가 교육적이었다고 강변한다. 나는 지금 비록 대학과는 다른,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지만 어쨌든 '교육'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징계도 어떤 잘못이 있었나를 정확히 밝히려는 것이 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 어떤 징계도 징계 받는 사람에게 스스로 이야기할 기회를 충분히 준다. 당연하지만, 징계가 부당했다고 밝혀지면 그 징계를 다른 징계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려대의 징계는 정말 교육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항의를 하는 학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정치적 앙갚음이었다. 그래서 고려대학교는 당시에 감금일지라는 것을 학교 홈페이지 팝업으로 선전하고, 교육기관이라면 응당 들어야 했을 소중한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패륜아로 매장했던 것이다.

교육을 포기한 고려대, 법원은 출교자 눈물 닦아줄까

 고려대가 지난 2006년 4월 이른바 '교수 감금 사태'로 출교 조치했다가 2년 동안 천막농성을 벌인 뒤 법원 판결로 복학해서 일부는 졸업까지 한 학생 7명(졸업생 3명)에게 최근 징계위원회를 열어 무기정학을 결정했다.
고려대가 지난 2006년 4월 이른바 '교수 감금 사태'로 출교 조치했다가 2년 동안 천막농성을 벌인 뒤 법원 판결로 복학해서 일부는 졸업까지 한 학생 7명(졸업생 3명)에게 최근 징계위원회를 열어 무기정학을 결정했다. ⓒ 권우성

다른 대학교들에까지 학교에 목소리 내는 학생들이 있다면 험한 꼴을 당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게다. 실제로, 고려대학교 출교사태 직후에 한국외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무기정학과 같은 초강수 징계가 이어졌다. 결코 교육으로 볼 수 없는 이런 '학생 찍어내기'는 교육기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행히, 법원에 의해 출교 징계가 무효화되고 출교생들이 학교로 돌아가게 된 뒤부터는 각 대학 당국들이 학생들에게 초강수 징계를 내리는 일은 줄어든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출교생들은 고려대학교의 부당한 탄압으로 푸른 잎을 달고 성장해야 할 청춘의 줄기에 깊고 굵은 상처를 입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한 출발로서, 출교생들은 2010년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고려대 측이 징계를 출교에서 퇴학으로, 퇴학에서 무기정학으로 바꾸는 꼼수를 거듭했고, 그 모든 시도가 법원 판결로 무위로 돌아간 뒤의 일이었다.

출교생들은 다행히 고등 법원에서 부분 승소했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대법원이 이를 파기 환송했다. 고등법원은 고려대 측이 무기정학 징계를 다시 내릴 때, 이미 졸업한 학생들까지 징계대상으로 삼아 학적부를 수정한 것을 특히 문제 삼았다. 이는 형식상으로도 어긋나고, 대학 당국의 징계권 남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3명의 학생이 500만 원씩 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이 판결조차 매정하고 완고하게 파기해버렸다. 대법원은 "사회상식"을 언급하며, 학교 측이 과잉징계를 한 것은 고의성이 없는 '실수'이며 출교생들의 시위는 징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출교와 퇴학 등을 무효화한 사법부의 지난 판결들과도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8일 다시 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열린다. 이 소송이 그저 출교생들만의 고통을 배상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애초 이들을 징계한 고려대학교의 의도로나, 5000개 가까운 출교 철회 서명과 여러 단체의 지지 성명 등 그간 출교생들에게 이어진 지지와 연대로나, 또 지금껏 출교 관련 판결이 포털 뉴스 순위권에 검색되는 것으로나 알 수 있다.

이미 이번 재판에서도, 진보적 개혁적 국회의원들과 교수님들, 사회운동가들과 여러 주요 사회 단체(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회 등), 고려대 단과대 학생회와 고려대 민주동우회 등이 출교생들을 위한 공동 성명서 겸 탄원서를 작성해주었다. 또, 나를 비롯해 당시 출교 사태를 직접 겪은 고려대 출신 교사들과 변호사들도 힘을 모아 각각 별도의 공동 탄원서를 썼다.

우리 사회가 출교생들의 손해배상 판결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승소하기를 바라는 것은, 출교생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디딤돌로 다시는 각 대학이 자신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찍어내기 위한 반교육적 징계를 하지 못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재판에선 부디 법원이 교육과 사회 정의의 가치를 잊지 않고, 전 출교생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현 시민기자는 경기도 광덕고등학교의 교사입니다.



#고려대#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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