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아래 혁신위)가 내놓은 2차 혁신안을 두고 당내가 시끄럽다. 계파 갈등 해소라는 애초 취지와 달리, 이해 관계와 평가 등이 엇갈려 실제 도입 과정에서 도리어 더 큰 분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계파 갈등이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정당 혁신이라는 큰 밑그림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갈등을 잠재울 만한 단편적인 제도 개선에 그칠 게 아니라, 강한 정당을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혁신 방안을 내놨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혁신위가 지난 8일 발표한 2차 혁신안의 골자는 기존 최고위원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최고위원이 계파 대리인으로서 역할하면서 권력 다툼이 생기기 때문에 위원회 자체를 없애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혁신위는 대신 지역·세대·계층 부문의 대표를 뽑아 내년 총선 직후부터 새 지도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주류-비주류 내홍의 실마리였던 사무총장도 중앙위원회 인준 직후 없애기로 했다. 총무본부장과 조직본부장직을 신설해 당무 집행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막 임기를 시작한 최재성 신임 사무총장은 한 달 만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또한 공천에 영향을 행사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를 100% 외부 인사로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위원은 위원장 추천을 통해 당 대표가 임명한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문제의 근원은 당내 계파 기득권이다, 풀리지 않는 매듭은 잘라내는 게 맞다"면서 분란의 뿌리를 아예 뽑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가장 완벽한 혁신 방안" vs. "해경 해체와 비슷한 발상"
당내에서는 2차 혁신안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번에 내놓은 제도 개선 방안이 혁신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느냐는 의문이다. 사무총장직 폐지는 열린우리당 초기에도 시도된 적 있지만,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제기돼 몇 개월 후 제도를 부활시킨 바 있다. 최고위 폐지 대안으로 제시된 권역별 최고위원제 역시 앞서 원혜영 의원이 이끌던 정치혁신실천위원회에서 제안됐지만 지역주의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특히 최고위·사무총장직 폐지가 계파 갈등 해소책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적절한 방안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조직 없애고 바꾼다고 해서 갈등이 없어질지 의문이라는 질타도 만만치 않다.
혁신위원인 우원식 의원은 "계파 갈등 해소를 위한 가장 완벽한 혁신 방안"이라고 2차 혁신안을 평가했다. 이날 라디오 인터뷰 등에 출연한 그는 최고위 폐지와 관련해 "(현행은) 선출 과정이 계파에 굉장히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의성보다는 계파 선명성이 더 강하다"며 "대의성이 더 강한 지도부로 만들어야겠다는 게 이번 변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우 위원은 또 사무총장직 폐지를 두고 "과도한 권한 집중은 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전부터 있었다"며 "(사무총장 역할을) 총무본부와 조직본부로 분산시켜 권한을 부분적으로 나누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이끌었던 원혜영 의원도 "혁신위원회가 최고위원제·사무총장제 폐지 등이 담긴 '당의 삼권분립 및 조직현대화 방안'을 채택·확정한 것을 환영한다"라며 "당 중앙위원회가 혁신안을 수용하고 과감한 당 혁신을 실천해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당원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2차 혁신안 내용을 우려하는 쪽에서는 혁신위가 편의적으로 갈등 해결 방안을 내놨다고 본다. 최고위와 사무총장직을 없앤다고 해서 계파 갈등이 사라질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다. 실제로 소위 당내 비주류 진영에서는 최고위를 폐지하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 임명 권한을 문재인 대표에게 주면 자칫 '친노(친노무현) 몰아주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권역별 대표 선출과 총무·조직본부장 인선을 놓고 또 다시 친노-비노 싸움이 재연될 수도 있다"라며 "권력 다툼이 있다고 해서 아예 조직을 없애는 건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해경을 해체한 것과 비슷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도 "계파는 당의 구성 방식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계파 간 불협화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근본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위, 더 과감하게 정당 개혁 추진해야"
이번 혁신안을 두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주장도 제기됐다. 새정치연합의 한 주요 관계자는 "최근 들어 사무총장직 두고 갈등이 불거지니까 시의성에 맞게 사무총장직 폐지를 전면에 내세운 게 아니겠나"라며 "안철수 의원이 대선 후보일 때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정치 혁신안으로 제시한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혁신위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렸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계파 갈등 해소 방안에만 그칠 게 아니라, 강한 정당으로 가기 위한 정당 혁신 방안을 구상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파 싸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은 존중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인지는 의문"이라며 "이번 혁신안이 정당의 본질과 맞는지, 현실에서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사무총장직 폐지의 대상이 된 최재성 사무총장 역시 혁신안을 찬성한다면서도 에둘러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어떤 혁신도 희생은 필요하다, 혁신위의 사무총장폐지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혁신위는 (혁신) 방향과 내용 측면에서 더욱 분발해야 한다, 더 강하고 정교하고 공감할 수 있는 혁신을 진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사무총장은 "혁신이 그 의미를 가지려면 성공하는 혁신이어야 한다"라며 "혁신이 주장에 그쳐선 안 된다, 국민과 함께하면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외부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이 총선·대선 승리를 위한 강한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혁신위가 더욱 과감하게 정당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정당은 하나의 팀이므로, 강한 정당이 되려면 대표의 리더십이 강해야 한다"라며 "그런 점에서 혁신위의 최고위원제 폐지 방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왕이면 단일 지도 체제 도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내년 총선과 관련해 "공천은 당 대표의 중요한 인사권이다, 대표가 제대로 공천하고 평가받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혁신위가 계파 갈등을 의식해 대표의 공천 권한을 축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