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그 호박전 '백주부 레시피'라고 엄마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 많았던 건데, 언니도 알고 있었네? 그잖아도 한번 해볼까 하던 참인데…." "백주부? 그게 누군데? 요리 잘하는 아줌만가? TV에 나와 유명해진 그런 일반인 아줌마. 글쎄. 난 요즘 텔레비전을 거의 안 봐 잘 모르겠고, 전에 선재 스님 사찰요리책에 있어서 몇 번 해봤는데 괜찮더라. 뭣보다 어린 아가들과 노인들 먹기 좋을 것 같아." "백주부 몰라요? 그 유명한 백주부를? 소유진 남편이잖아. 요즘 얼마나 잘 나가는 셰프인데! 그 사람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로 유명한데…." 5월 중순인가 어느 날, 아는 동생(30대 후반)과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됐다, 요즘 한창 뜨고 있다는 '백주부' 백종원씨를.
애호박을 동글동글 썰어 밀가루 묻히고 달걀 물 입혀 프라이팬에 부치는 식으로 흔히 해먹는 호박전을, 반은 강판에 갈고 반은 채 썬 후 밀가루나 찹쌀가루 한 숟가락 섞어 부쳐 먹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동생이 이처럼 반응해서 백주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백주부의 존재를 알게 된 뒤, 우리 가족이 변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아들이 한 사람의 냉장고를 공개, 두 명의 셰프가 냉장고 속 재료들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경합을 벌이는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여줬는데, 공교롭게 소유진씨네 냉장고가 공개됐다. 그리고 이틀쯤 지난 후, 딸이 밥상머리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 보여준다"며 보여준 것이 백주부가 나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란 프로그램이었다.
백종원씨 등 몇 명이 각각 자신만의 방송을 진행, 시청률이나 시청자들 반응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그런 방송이었다. 백주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남편과 딸은 방송을 보는 내내 백주부에 대한 감탄과 칭찬을 하고 또 했다. "<집밥 백선생>이란 방송에도 나오는데 재미있다"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은 보여주지 말고 백주부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대체 저 사람 요리가 어떻길래, 저렇게 좋아 죽겠다는 거야?' 궁금했다.
내가 처음 본 백종원씨 모습과 그의 요리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그날 백종원씨가 선보인 것은 화이트소스(크림소스)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그 소스를 이용한 스파게티와 브로콜리 스프였다. 사실 밀가루와 우유 버터로 만든다는 화이트소스는 30년도 훨씬 지난 중학교 가사 시간에 배웠었다. 그러나 24년 차 주부로 사는 동안 한 번도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파스타를 거의 먹지 않았기에, 파스타 소스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쉽고 흔한 재료들로 만드는 것인데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백주부는 "지금 만들고 있는 양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만들어 두면 많은 음식에 응용할 수 있다"와 같은 말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우연히 며칠 전에 딸이 말했던 <집밥 백선생>을 보게 됐다. 그날의 주요리는 카레. 김구라 등 4명의 제자가 이미 카레를 만든 후 시식을 하고, 백선생이 자신만의 카레를 만들어 보이는 부분부터 보게 됐다. 백선생이 자신만의 카레 방법을 알려주는데, 얼마 전부터 "카레 해 먹자, 해 먹자"하면서 이래저래 미뤄오던 터라 더욱 솔깃하게 와 닿았다.
백선생은 대부분의 사람이 카레나 짜장을 만들 때처럼 감자를 깍둑썰기로 하지 않고, 채 썰어 썼다. 게다가 고기도 아마도 불고기용 정도로 얇게 잘라놓은 고기를 대충 잘라 썼다. 백선생이 강조한 것은 양파를 다른 채소들과 볶아 익힌 후 카레 가루를 넣어 끓이는 것이 아닌, 채 썬 양파를 갈색이 돌 때까지 미리 볶아 양파 특유의 풍미와 감칠맛을 이용하는 것.
"특별한 재료들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도 이렇게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솔직히 작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신선했다. 그래서 백선생이 요리를 하면서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이와 같은 평범한 말도 특별하게 들렸다. 심지어는 카레를 해먹자 고기를 사왔다가 다른 음식에 넣기도 하면서 카레 만들어 먹는 것을 3월부터 미뤄오고 있던 내 사정을 알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그렇지. 고기 안 넣는다고 카레가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저처럼 감자나 당근을 채 썰어 할 생각을 못 하고 그간 깍둑썰기만 고집했을까? 저렇게 하면 빨리 익으니 빨리 해먹을 수도 있을 것인데. 꼭 깍둑썰기 하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근데 의심 한번 없이 누군가 정해놓은 깍둑썰기만…. 카레에 스테이크 한 장? 대박! 손님 접대 요리로도 폼 나겠다.' 백선생의 카레는 20여 년간 고집해온 내 카레 만드는 방법을 돌아보게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6월 25일 저녁, 백선생이 방송에서 알려준 대로 카레를 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맛있다, 맛있다!"를 거듭하며 싹싹 긁어먹었다. 이후 '백주부의 고급진 레시피'란 네이버 밴드에도 가입했고, 나보다 열렬한 팬인 아이들이 틀어주는 백종원 출연 방송들마다 열심히 보고 있다.
주부인 나, 백주부로부터 받은 '충격'
나는 24년 차 주부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예고 한마디 없이 와도 선뜻 밥 한 끼는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손질이 많이 가는 흔히 말하는 일품요리들은 물론 어지간한 밑반찬들은 거의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음식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다. 이렇건만 요즘 TV를 통해, 가입해있는 '백주부의 고급진 레시피' 밴드를 뒤져가며 백주부 그의 요리들을 눈여겨본다.
카레처럼 기발하고 신선한 무언가, 따라해 보면 남다르게 맛있는 백주부만의 비법들을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백주부 혹은 백주부 레시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내가 어렸던 1980년대에도 요리 프로그램은 늘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정해진 규칙들이 있다. 특정 요리에는 특정 부위의 고기를 쓸 것. 계량스푼이나 눈금이 있는 컵으로 제시하는 용량을 반드시 써야 할 것. 볼 방송이 마땅치 않아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던 엄마는 거의 매번 이야기하곤 했다.
"저렇게 비싼 고기하고 양념들 넣어 요리해서 맛있지 않은 음식이 어디 있어? 그런 재료들로 음식 만들라면 요리 자격증 하나 없는 나도 얼마든지 맛있게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언제 그렇게 일일이 이것은 얼마큼 넣고 몇 분 끓이고 그렇게 쟤 가면서 요리해. 소금이고 참기름이고 그냥 감으로 넣으면 되고, 끓이면 되지. 어떻게 우리가 싸고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하나도 안 나오느냐?" 24년 차 주부로 살아온 지난날, 어렸을 때 걸핏하면 듣곤 했던 친정엄마의 이 말을 100% 실감, 동감하곤 했다. TV를 통해 백주부 요리를 본 사람들은 다들 알고 느낄 것이다. 그의 요리는 '이렇게 해야 어떻다'와 같은 지나친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용량 이런 것 따지지 않고 누구나 쉽게, 그리고 따라 해 보고 싶을 정도로 편하게 요리를 하고 그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카레를 하며 말했던 것처럼 집에 있는 재료들을 써서 해먹을 수 있는 어떤 응용까지 해보게 하는 그런 용기를 준다는 것을! 남편도 해보고 싶다니 말이다.
"솔직히 근사하거나 특별한 요리들은 아니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해먹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음식들을 설명을 쉽게 해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 유명한 셰프들 중에 한국 요리 못 하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제가 생각하는 요리사는 '한국 음식만큼은 기본적으로 할 줄 알면서 다른 나라 요리들을 잘해야 한다'거든. 그래서 그분 요리를 눈여겨보죠.유명한 셰프들 중에 음식보다 담는 그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싶을 정도로 그릇이나 치장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도 보이던데 그게 아니라서 좋고. 무엇보다 시야가 참 넓은 것 같아요. 혼자 많은 노력을 하고, 도전과 실패를 많이 하면서 얻어진 자신만의 무엇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것들을 훨씬 폭넓게 응용하고 그러면서 남들보다 기발하게 음식을 만들어 내는 그런 것도 자주 느껴지거든요." - 내 아들백주부, 백종원은 일류 셰프의 길을 향해 열심히 걷고 있는 아들이 가장 눈여겨보고 있다는 셰프다(물론 그는 그 스스로 셰프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백주부 백종원이라 그의 요리들을 최대한 눈여겨보고, 따라하고, 검증도 해보면서, 아들에게 좋다 나쁘다 혹은 기발한 힌트도 열심히 주려면 더욱 많이 그를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