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잊히길 강요당하는 공간이 있다. 신체를 강금 당하며 성매매를 해야 했던 여성들이 화재로 인해 참담하고 억울하게 숨진 이곳이 그러하다.
2002년 1월 29일 화요일 오전 11시 50분. 군산시 개복동 7-13번지에 위치한 유흥업소 대가·아방궁에서 전기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희생자들은 1층 쪽방 한곳에서 모여 자다 출입구 쪽에서 불길이 치솟자 2층 창문으로 대피하려 했다. 평소 종업원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2층 출입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결국 이들 모두 2층 출입문 앞 계단에서 유독가스에 질식했다.
이 참사로 모두 15명이 숨졌다. 특히 이 사고는 2000년 9월 이 사고현장에서 1km 떨어진 대명동 여종업원 5명이 숨진 화재사건에 이어 발생한 유사 참사여서 충격이 더욱 컸다. 더구나 희생자들은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취업각서와 현금보관각서까지 쓴 것으로 나타나 참담한 인권유린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성산업을 근절하고 사회의 건강한 성의식 제고를 위해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의 보호와 자립지원을 목적으로 2004년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전국의 반 성매매여성인권운동 활동가들은 '민들레 순례단'을 조직하여 2006년부터 매년 9월 화재참사 지역을 순례하고 추모행사를 진행중이다. 이들은 개복동 참사현장을 추모과 치유를 위한 여성인권교육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것을 요구하며, 2013년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군산 개복동 여성인권센터(가칭) 건립 추진위원회(아래 건립추진위)'를 발족했다.
2013년 2월 해당 건축물은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되었다. 건물이 사라진다고 아픈 역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이 공간은 빈 공터가 되어 건축 폐기물만이 쌓여 있지만 참사의 기억은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아픈 기억을 덮고 쉬쉬하려는 그 표현들도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곪은 상처는 드러내야 한다.
오히려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다짐하고 다시는 이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정비해야 바람직하다. 억울한 그녀들의 애환, 고통, 삶의 진실 등을 이해하고 그들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의 트라우마도 추모를 통해 치유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유린이 더 이상 재발되지 않도록 각인해야 한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의 성매매는 여전히 존재하고 폭력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에서 발견된 그녀들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산다는 것이 힘들어.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답답하다. 좁은 공간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하루였다. 모든 것이 짜증스럽다. 몸으로도 지쳐버렸다. 오늘 따라 집이 그립다. 부모가 보고 싶다. 눈물이 나오려고 그런다." 겨우 21살 24살 가량의 여성들이 잠긴 문 앞에서 억울하게 사라져갔다. 그 아픈 불쌍한 죽음을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반복되지 않도록 각인해야 한다.
지난해 건립추진위는 기금을 모아 추모 조형물('개복동 2002 기억. 나비자리'/김두성 작가)을 제작했다. 현재 조형물은 빈 공터로 남아있는 그곳에 설치하지 못한 채 작가의 작업실에 1년여 머물다 군산 산돌학교 산돌갤러리에서 전시중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개복동 참사에 대해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널 때가 아니다. 지금도 성산업은 성황중이고 성폭력으로 여성인권은 유린당하고 있다. 철거된 빈공간이 우리를 향해 '왜 이곳이 잊히길 강요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 참고자료: 군산 대명동·개복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참사 백서.
- 이 글은 새전북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