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버섯이 분명했다. 산길 옆 참나무 그루터기에 나보란 듯이 붙어 있었다. 분명 이 길을 오가는 숱한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틀 내내 심한 배탈로 고생을 하다가 어젯밤은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부럼씨의 아내 래카 라인의 강압에 못 이겨 먹은 발효음식 덕분이었다. 그 보답으로 바나나를 한 꾸러미 사들고 부럼씨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목에서 영지버섯을 만났던 것이다.
영지버섯을 들고 산속 외딴곳에 자리한 부럼씨네 집으로 들어서자 가텀씨와 함께 낯선 얼굴들 몇몇이 뜰 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텀씨가 내게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했다. 락시미 아쉬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독일여성 레샤. 소탈한 지성미가 넘쳐 보이는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교장 선생님. 턱수염이 허연 중년의 사내, 라미쉬 쿠마르씨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는데 철학자처럼 중후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생태의학을 공부했다는 부럼선생의 사촌 동생, 밧샹씨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코사니의 생태운동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가텀씨는 나를 한국에서 온 수행자라고 소개 한다. 나는 '수행자가 아닌 그냥 여행자'라 말해 놓고 이들에게 다짜고짜 영지버섯부터 보여줬다.
"
여기서는 이 버섯을 먹지 않나요?""예. 먹지 않는 버섯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요리해 먹습니까?""힘을 강하게 키워주는 버섯입니다, 물을 넣고 끓여 꿀을 타서 차로 마시면 감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이런 버섯이 여기에 많습니까?""예 종종 볼 수 있습니다."'노프라블럼' 하나로 인도여행
영지버섯을 통해 시험문제 풀 듯 영어 몇 마디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나자 이들은 긴 문장의 영어로 물어왔다. 가텀씨가 나를 수행자라 소개한 것을 믿고 명상에 관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영어 단어 몇 개로 적당히 얼버무리다가 '노프라블럼'으로 마감했다.
이들은 나름 인도의 지식인들이었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단지 이들이 알고 있는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것과 삼성 모바일, 태권도 정도였다. 영어 실력이 형편없는 내가 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천년 고찰' 정도였다.
모바일에서 인터넷을 띄워 고색 찬연한 한국의 사찰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모바일이 불통 상태였다. 인도에서 인터넷이나 전화 통화를 하려면 한 달에 한 번씩 심 카드를 충전해야 한다. 300루피 가까이 주고 코사니에 있는 모바일 가게에서 심 카드를 충전했는데 사흘째 불통이었다.
눈빛 맑은 그들은 힌디어는 물론이고 영어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때론 동문서답으로 답하는 어리숙한 내게 큰 웃음으로 반겼다. 환하게 웃는 이들을 보며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유창한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뿐만아니라 이들과 몸으로 통하는 것도 있었다. 부럼선생의 사촌 동생, 밧샹씨가 내게 물었다.
"나는 한국의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당신도 할 줄 압니까?""물론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웁니다. 군대에서는 기본으로 배웁니다.""당신은 군인이었습니까?""건강한 한국 남자들은 모두 군인이 되어야 합니다.""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 했겠네요.""나는 어려서부터 10년 넘게 태권도를 수련했고 가르치기 까지 했습니다. 당신의 태권도 실력을 보고 싶군요."날렵한 몸매의 그가 마당으로 나서 발차기를 선보였다. 1년 정도 수련했다는 그의 발차기 동작은 파괴력이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엉거주춤 했다. 그가 내게 몇 가지 태권도 동작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앞 차기, 옆 차기, 뒤돌아 차기 등 몇 가지 태권도 시범을 나름 날렵하게 보여주자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박수 소리에 기고만장한 나는 내친김에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간단한 태권도 기술을 알려줬다. 대련할 때 흔히 쓰는, 상대가 돌려 차기로 공격해 올 때 순간적으로 맞받아 뒤돌아 차는 기술이다. 그가 나의 상대가 되어 돌려차기로 공격했고 내 발은 순식간에 그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깜짝 놀란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내게 '마스터'라는 호칭을 붙였다. 나는 점점 기고만장했다.
"파괴적인 운동은 그리 좋은 운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상대의 힘을 이용해 방어하는 중국의 쿵푸, 태극권을 좋아 합니다."영어로 소통할 때 늘 그랬듯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했다. 하지만 정확한 영어로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들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대충 내 말 뜻을 이해하는 듯 했다. 중국 무술 쿵푸를 얘기하다가 영화배우 '블루스 리'와 '이연걸'까지 언급했다.
사실 나는 코사니의 지식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과 깊이 있는 '지식 놀음'을 하고 싶었다. 인도의 정치와 철학과 명상, 생태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고사하고 이들이 답하는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나였다.
"당신은 인도의 어느 곳을 여행할 예정입니까?""나도 잘 모릅니다. 내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입니다. 다만 코뮤니스트 정부가 있었던 남인도 서벵갈주와 켈랄라주, 그리고 인도의 철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시바가 운영하는 나브단야의 씨앗 농장에 가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공산당 정부와 나브단야의 씨앗 농장 등을 열거하자 이들은 영어 대신 무지막지한 태권도를 선 보였던 나를 달리 보는 눈치였다. 철학자 풍모를 지닌 라미쉬 쿠마르씨가 장난 기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영어 때문에 그곳을 깊이 알기는 쉽지 않겠군요." "노프라블럼!" 노프라블럼을 외치자 모두가 웃었다. 영어가 서툰 인도 사람들은 난처한 문제가 생기거나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노프라블럼'으로 마무리 한다. 나도 어느새 그 '노프라블럼'을 난발하고 있었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5개월 넘는 인도여행을 결심했습니까?""내가 가장 잘 구사하는 언어는 마음과 웃음입니다. 마음과 웃음은 다 통합니다.""좋은 생각입니다."'언어 소통이 안되는 만큼 가슴이 예민하게 열리기 마련이다. 그 예민한 가슴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기도 한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오해는 대체로 웃음으로 마무리 된다. 가슴이 예민하게 열리면 눈빛이나 손짓 몸짓 등으로 그 사람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그에게 덧붙여 주고 싶었지만 영어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어쩌면 이들은 내 무지한 영어실력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비웃음 섞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설령 이들이 나를 비웃었다 한들 내가 이들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 언어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또한 지금 내 마음 상태가 평화로우면 족하지 아니한가.
언어는 상대의 주장을 들어주기 보다는 자기주장을 펼 때 더 많이 사용된다. 논쟁 속에서는 꼭 필요한 말만 하지 않는다. 논쟁을 하다보면 감정이 뒤섞이게 되고 급기야 언어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다. 내공이 부족한 나는 그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무수한 말들을 난발하며 살아왔다.
내가 만약 영어가 유창했다면 한국에서처럼 그들과 더불어 정치와 철학과 명상을 논했을 것이다. 기고만장하게 태권도 시범을 보여줬듯이 온갖 지식들을 동원해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자기과시의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무지한 영어 실력 덕분에 부질없는 논쟁 대신 가슴과 웃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과 '웃음'이라는 시답잖은 말로 건방을 떤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지버섯에 눈이 멀어...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부럼씨 집에서 나왔다. 늦은 오후,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들 보이지 않는다. 몇몇 아이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 두 아이가 어디론가 길을 나선다.
"어디에 가니?"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말한다. 무작정 따라갔다. 숲 속 한가운데 너른 풀밭 운동장이 보인다. 아이들이 뭔가 재미있는 놀이에 푹 빠져 있다. 아이들은 두 패로 나눠 한 쪽은 '얼음땡' 놀이 같은 것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으로 상대방을 맞히는 '피구'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 가만 보니 공이 아니라 헝겊을 공처럼 만들었다. 한 아이가 그 헝겊 공을 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다른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일제히 도망을 다닌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주변 숲을 울리고 하늘 높이 울려 퍼져 나간다. 나 역시 이리저리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멀찌감치 앉아 해맑은 웃음에 취해 본다. 어느새 서산에서 해가 기울고 있다.
어둡기 전에 민박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대충 눈짐작으로 길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섰다. 낯선 산길에서 영지버섯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주변을 기웃거리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영지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락시미 아쉬람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내려서다 보면 코사니 상가가 나오는데 그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낯선 산길이었지만 산 아래로 내려서면 코사니 상가가 나올 것이라 짐작하면서 무작정 산 아래로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법의 숲처럼 울울창창한 참나무 숲이 나왔다.
참나무 숲을 벗어나면 저 아래 어디쯤에 코사니 상가가 나오겠지 싶었는데 난데없이 폐허나 다름없는 흉가집이 나온다. 상가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울창한 참나무 숲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고 있는 풀밭은 보이지 않고 저녁 빛은 점점 울창한 참 나무숲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코사니 상가에서 락시미르 아쉬람을 가기 위해서는 비탈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무작정 산 아래로 아래로 내려서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좀처럼 코사니 상가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헤맸을까. 락시미 아쉬람에서 코사니 상가 마을까지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벌써 30여분을 헤맨 것 같다. 영지버섯에 눈이 멀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숲은 점점 빛에서 멀어지고 있다. 모바일조차 불통 상태라서 가텀씨나 부럼씨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다. 인터넷만 가능해도 방향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갑자기 코사니 주변 숲에서 표범이 출몰한다는 가텀씨와 부럼씨의 말이 떠올랐다. 표범 때문에 코사니 사람들은 밤늦게 산길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냥 숲을 헤매다 보면 코사니 마을의 개를 물어 가기도 한다는 표범이 어둠과 함께 불시에 덮쳐 올지도 모른다.
서둘러야 한다. 공포감과 함께 등줄기로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린다. 길 없는 길에서 복병처럼 숨어 있는 가시나무들이 무릎과 장딴지를 할퀴어 댄다. 빛이 흐려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있다. 등이 휘어지도록 짐을 잔뜩 싣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조랑말처럼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것이 있다.
나를 짓누르는 것은 무엇일까. '어둠이 덮쳐오면 표범이 나온다는 산 속에서 보내야 한다. 이렇게 산 속을 헤매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본래 없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스스로를 다 잡아 가며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춰섰다. 바지를 걷어 올려 따끔거리는 장딴지를 본다. 피가 흥건하게 배어 있다. 불현듯 나는 지금 길 없는 길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내가 왜 길을 찾아야 하지?"난데없이 떠오른 물음 앞에 주저앉아 길게 심호흡을 한다. 알 수 없는 그 어떤 기운이 나의 급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있다. 어떤 길이든 길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길 없는 길도 내가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길이 된다.
서두른다고 없던 길이 불쑥 튀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서두른다고 어둠이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전으로 깊게 호흡을 해가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산을 내려가다 보면 그 끝자락 어딘가에 마을이나 길이 보일 것이었다. 그렇게 어둠을 코앞에 두고 10여 분을 더 걷었을 무렵 숲 사이로 다랭이 차밭과 논밭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심장 박동만큼이나 걸음이 빨라졌다. 다랭이 논밭 근처로 다가서자 큰 개울 옆에 움막이 보였다. 움막은 농기구를 보관하거나 일하다가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잠시 쉬어가는 농막이라 할 수 있었다. 개울을 건너자 마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하지만 코사니 마을은 아니었다. 마을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방향을 가늠해 본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가 보이지 않는다. 코사니 마을 근처라면 멀리 난다데비가 보여야 한다. 코사니는 높다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코사니 반대편 산자락으로 내려온 것이 분명했다.
흐릿해지는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서자 땔감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소녀 둘이 낯선 이방인을 향해 호기심 가득한 곁눈질로 본다. 나는 그 맑고 커다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인사한다.
"나마스테!""나마스테!"열 예닐곱쯤 돼 보이는 두 소녀는 동시에 인사를 받으며 깔깔깔 웃는다. 그제서야 나는 봉두난발로 땀에 절어 있는 내 모습을 인식했다.
"나는 저 산을 타고 내려와 길을 잃었어, 여기가 어디지?""......"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저 까르르 웃음으로 화답한다. 웃음소리가 너무나 맑다. 내가 다시 "코사니! 코사니!" 코사니를 연거푸 말하자 그제서야 알아듣고 손가락으로 저만치 산 언덕길을 가리킨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 능선 반대편이 바로 코사니였던 것이다. 나는 익숙한 사람의 길을 버리고 짐승들의 길로 접어들어 저 높다란 산자락을 타고 코사니와 정반대의 길로 내려왔던 것이다.
말없이 웃음으로 길을 안내 해준 소녀들은 마을 깊숙이 사라진다. 소녀들이 사라진 마을 길에 침침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생기발랄한 소녀들이 건네준 웃음 덕분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는 비탈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꼬불꼬불한 비탈길을 타고 산 하나를 넘어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코사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비탈길 아래에서 불빛 하나가 다가온다. 분명 코사니로 향하는 자동차였다.
구원을 요청하듯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가 멈춰 섰다. 차 안에는 노인과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가 타고 있다. 코사니 까지 태워 달라고 했더니 운전기사가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꺄웃거리며 타라는 시늉을 한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젊은 부부와 열 살 쯤 돼 보이는 소년의 틈 사이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나 때문에 불편할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소년이 그 맑고 큰 눈으로 빙그레 웃는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
코사니 상가에 도착하자 운전기사는 돈을 내미는 내게 손사래를 친다. 너무 고마워서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10루피만 달라고 한다. 그날, 밤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면서 다음과 같이 메모를 했다.
'길없는 길을 찾는 것은 묵언의 수행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의 낯선 길, 참나무 숲에서 길을 잃었다. 길을 찾아 길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왜 길을 찾아야 하지?"라는 난데없는 물음 앞에 멈춰 서게 된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 그 길 앞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말없는 웃음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맑은 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