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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성 장애1급 김정훈씨. 그림 그려서 개인전을 연다.
자폐성 장애1급 김정훈씨. 그림 그려서 개인전을 연다. ⓒ 이상원

"이 아이는 자폐입니다. 이건 난치병도 아니고 불치병입니다. 이 아이는 평생 보호를 받아야 됩니다. 평생 말을 못 할 수도 있고, 평생 똥오줌을 못 가릴 수 있습니다. 평생 사회하고 섞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평생을 부모가 끼고 있어야 합니다."

21년 전, 원광대학교 소아정신과 의사는 정훈 엄마 송영숙씨에게 말했다. 그녀는 엄마의 직감으로 병원에 왔다. 진단 받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바로 연세대학교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아이가 좀 늦될 뿐이에요"라고 했다. 그러나 아기는 혼자 놀았다. "정훈아!" 불러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6개월 후, 그녀는 다시 연세대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말했다.

"자폐 맞습니다." 

처음에 송영숙씨는 그저 멍했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야 '정훈(24개월)이랑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 지은(다섯 살)이가 있었다. 살아야 했다. 발달장애치료센터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송영숙씨는 자연치유한다고 애 둘을 데리고 산과 들로 쏘다녔다. 논에 빠진 아이들, 까맣게 탄 다리에 거머리가 붙기도 했다.

그때는 몸이 불편한 사람한테만 장애인이라는 말을 썼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면, '바보'라는 말을 툭툭 내던졌다. 유치원에서는 '따블'의 교육비를 요구했다. 비장애인 아이의 학부모들은 "왜 저런 애가 우리 아이하고 같이 있냐"고 성토했다. 쫓겨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여러 곳의 보육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훈이가 아홉 살 될 때까지 그랬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은 꿈을 꿔요. (웃음) '자고 일어나면 우리 애가 정상이 될 거야. 정상이 될 거야' 하면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으니까 한없이 기다려요. 내년에는 상태가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서. 그래서 대개 학교를 1, 2년씩 늦게 보내죠.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들어가면 적응을 더 잘할 것 같으니까요."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아이가 있는 학교 복도에...

정훈이네 집은 군산시 나운 2동. 송영숙씨는 일부러 정훈이를 시 외곽에 있는 초등학교로 보냈다. 학부모이면서 학교 '소사'처럼 지냈다. 학교 청소하고, 아픈 애들 있으면 병원 데려가고, 토한 애들 있으면 씻겨주고.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항상 복도에 서 있다가 정훈이가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면 교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아이 손을 붙잡고 산책했다. 

그때는 '교사가 아이들한테 헌신할 수도 있지만 한없이 편하게 지내는 곳이 특수학교'라는 말이 있었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 중에는 체념한 사람이 많았다. 특수학교에는 희망이 아예 없다고. 그래서 송영숙씨는 정훈이를 어떻게든 일반학교 아이들과 섞이게 하고 싶었다. 특수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시골 초등학교 3학년 때 학부모들 반발이 심했어요. 시내에 있는 중앙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그때부터 봄날이었죠. 교장선생님,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아이들 모두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대단했어요. 정훈이가 앉아있지를 못 하는데 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달래고 붙잡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정훈이는 친구들이랑 소풍도 가고, 체육대회도 했어요."

열 살까지 말을 못 했던 정훈은 중앙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엄!마!"라고 말했다. 아기들 말문이 터지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말이 는 건 아니었다. 하나하나씩 말하던 단어가 문장이 된 건 언어치료센터에서 했던 숱한 연습 덕분. "과자 주세요"를 못 할 때는 무조건 울면서 뒹굴었다. 자기 요구를 똑바로 말하게 되면서, 정훈의 거칠던 행동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정훈의 반 친구 어머니들은 항상 "우리 애들이 정훈이를 통해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라고 말했다. 6학년 때 반 친구들은 "정훈이도 우리랑 같은 중학교로 보내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나 정훈이는 수업 시간에 돌아다녔다. 수업의 흐름을 깼다. 송영숙씨는 아들이 3년 동안 받은 엄청난 사랑을 되돌려줄 방법을 고민했다. 막다른 길밖에 없었다.

"중학교 가면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때잖아요. 정훈이네 친구들도 당연히 그래야죠. 그 친구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정훈이는 특수한 아이구나'를 인정해야 했어요. 자고 일어나면 정상이 될 거라는 꿈에서도 깼죠. 그래서 중학교를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명화학교로 보냈어요. 정훈이는 중2 때부터 스트레스성 간질이 오고, 자해를 시작했고요."

 정훈씨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많이 울고 자해를 했다.  밤에도 잠을 못 자며 괴로워했다.
정훈씨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많이 울고 자해를 했다. 밤에도 잠을 못 자며 괴로워했다. ⓒ 이상원

정훈이는 명화학교에서 '특수 중의 특수' 아이였다. 통제가 안 됐다. 아이는 학교가 떠나갈 듯 울었다. 울면서 자기를 때리니까 온몸이 성한 데도 없었다. 입고 있는 옷을 처절하게 찢었다. 정훈이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바깥으로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밤에도 잠을 거의 못 잤다. 괴롭게 울면서 이불도 발기발기 찢어놓았다.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도 그랬다.

헬렌 켈러는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고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정훈은 명화학교 전공과(전문대와 비슷) 1학년 때 조영호 선생님을 만나면서 껍질을 깨고 나왔다. "너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선생님 덕분에 정훈은 바뀌었다. 학교에서 울며 자해하는 횟수가 팍 줄었다. 기적도 일어났다. 한 개 접으면 15원 주는 박스를 2~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접었다. 

"정훈이가 박스 접기를 가장 잘했어요. 조영호 선생님이 저보고 현장에 한 번 와 보래요. 아이들이 녹이 슨 컨테이너 안에서 선풍기만 켜놓고 일하더라고요. 다른 애들이 열 개 접을 때 우리 정훈이는 수십 개 접어요. 스티커도 완벽하게 붙이고요. 거기 사장님이 우리 애를 스카우트 하려고 맘먹은 날에 정훈이가 (웃음) 한 번 털었어요. 진하게 울었죠, 뭐." 

 군산 '목양원'의 미술심리치료사 이상원 선생님은 정훈이 그리는 그림은 색감이 좋다고 했다. 그림 그리면서 행복해하는 정훈을 발견했다.
군산 '목양원'의 미술심리치료사 이상원 선생님은 정훈이 그리는 그림은 색감이 좋다고 했다. 그림 그리면서 행복해하는 정훈을 발견했다. ⓒ 김정훈

전공과 2년을 마친 정훈은 '사람이 됐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안 줬다. 집에만 있지 않아도 되는 거다. 명화학교를 졸업한 정훈은 사회복지시설 '구세군 군산 목양원'의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 그곳에는 미술심리치료사 이상원 선생님이 있었다. 장애인들과 그림 전시회를 연 적 있는 선생님은 정훈이 그림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송영숙씨에게 전화를 했다.

"정훈이는 색감이 좋아요. 소질이 있습니다. 그림 그리면서 굉장히 행복해 하고요."

자폐는 정서장애다. 그걸 풀어보라고, 송영숙씨는 어린 정훈을 데리고 미술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8년이라는 긴 세월. 정훈은 두 번에 한 번 꼴로, 활동이 불가능할 만큼 울어 제꼈다. 그런데 목양원 이상원 선생님이 추천해준 '홍익뉴엘 미술학원' 이경민 선생님은 자폐 아이를 지도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울면서 자해하는 정훈이를 감당 못 할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훈이는 이경민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 울면서 뒹굴었다. 선생님은 "어머니,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러다가 적응할 거예요"라고 했다. 이경민 선생님은 정훈에게 다양한 재료로 표현하게 했다. 신문지도 찢고, 모양 틀도 찍어보고, 아크릴 위에 그림도 그렸다. 정훈은 갈수록 방글방글 웃었다.

두 달 전부터 주고받기 시작한 말...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몰라요"

 정훈은 이경민 선생님한테 여러 가지 재료를 써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정훈은 이경민 선생님한테 여러 가지 재료를 써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 이상원

"정훈이가 미술학원 갔다 오면, '엄마, 엄마, 엄마' 이러면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몰라요.  밤에 잘 때 이유없이 자해하면서 울었는데 그림 그리면서 그런 게 없어졌어요. 아이가 자기 안의 스트레스를 미술을 통해서 다 푸는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은 자해를 하죠. 정훈이 옷 상태를 보면 아니까요. 심지어 그런 날도, 집에 와서는 굉장히 표정이 좋아요."

이상원 선생님은 송영숙씨에게 정훈이가 그린 그림만 모아서 전시회를 열자고 했다. 송영숙씨는 크게 웃었다. 그녀가 보기에 정훈이 그림은 예술성이 떨어지고, 완성미가 없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 좋다. 감격스럽다. 엄마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냉정하게 말하라고 하면, 어설픈 그림일 뿐이었다. 이상원 선생님은 싫다고 하는 송영숙씨를 설득했다.

"정훈이가 전시회를 하면, 장애 아이들한테 희망을 줄 수 있어요. 발달장애 아이들의 특성은 좋아지는 게 눈에 안 보여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하면, 부모들조차 '해도 안 되는구나' 포기하고 말잖아요. 정훈이는 스물네 살이에요. 성인인데 이렇게 교육을 계속 하니까 뭔가를 할 수 있잖아요. 전시회에서 그걸 보여줄 수가 있어요."

 김정훈 작품, 몽!
김정훈 작품, 몽! ⓒ 김정훈

영화 <마라톤>이나 자폐 수영선수 김진호를 봤을 때, 발달장애 아이들의 엄마들은 괴로웠다. '내가 덜 노력해서 아직 우리 애가 이런 건 아닐까?' 자책했다. 영화에 나오는 부모들만큼 장애아 부모들은 헌신한다. 모두 애쓰며 산다. 그런데 정훈의 전시회 소식을 듣고 '나는 우리 애 전시회 열어줄 능력이 안 돼' 자괴감에 빠지면 어쩌나. 송영숙씨가 주저한 이유다.

전시회의 콘셉트는 '웃고 즐기기'. 정훈의 그림에는 웃음 포인트가 있다. "와, 이런 것도 전시해?" 할 만큼 못 그린 그림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들어와 그림을 그린 정훈이를 보시라. 느린 사람이다. 1주일에 3회, 꼬박 3년을 연습해서 수영장에 입수하는 데 성공한 사람. 키 판 잡고, 발차기 하고, 자유형 하는데 또 1년이 걸린 사람.

"정훈아, 오늘 목양원에서 뭐 먹었어?"
"밥, 된장국, 고기, 깍두기."

열 살 때 터진 말문은 세 살 아이 만큼 되는 데 거의 10년 걸렸다. 서로 주고받는 말은 두 달 전부터 가능. 정훈은 아침에 목양원 갈 때 "엄마, '털보 영감님' 틀어줘"라고 한다. "통통통통 털보 영감님" 하며 엉덩이를 흔든다. 주말에 정훈은 아버지와 둘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간다. 그 많은 먹을거리들 중에서 딱 한 개만 고른다. 절제미까지 갖추었다.

정훈은 어제보다는, 그제보다는 나아지고 있다. 그림을 시작한 1년 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태어난 날이 생일이 아니다. 자기가 더 발전한 날이 생일,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연다고 한다. 2015년 7월 24일, 전시회 <夢(몽)>이 열리는 날이 스물네 살 청년, 자폐성 장애1급 김정훈의 '생일'이다. 그림을 보러 오시라. 많이 축하해 주시라.

 김정훈 작품, 몽1
김정훈 작품, 몽1 ⓒ 김정훈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자폐성 장애1급 김정훈 개인전 <몽>은 군산 예술의전당 제1전시실에서 7월 24일부터 7월 28일까지 합니다.



#군산 김정훈 개인전#자폐성 장애1급#군산 목양원#군산 명화학교#미술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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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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