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와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기자 말처음 약속했던 이 주일이 지나고 다시 한 달이 넘었다. 이쯤 되면 추측은 나와 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돈 많은 외국인이니 떼먹어도 된다거나 제풀에 나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수요일, 오늘은 학교 수업이 없다. 점심 무렵 킴비씨가 같이 가보자며 부른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큰아들인 고등학생 지부티도 데리고 갔다.
가게엔 수습공 일을 하는 젊은 애들만 있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전화 들고 부산을 떨 줄 알았건만, 서로 쳐다보며 '씨익' 웃기까지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므중구(외국인)한테 협박까지 들으니 기가 막힌다는 얼굴이다. 한마디로 '당신 마음대로 아무거나 하세요'라는 표정이다. 이거 영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떡하랴. 현지인인 킴비씨와 동행해도 이 모양이라면 막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약속 어긴 목수... 결국 경찰서로 갔다
다행히 경찰서 직원은 외국인이라고 친절하다. 소개해준 경찰을 대동하고 나서야 약발이 먹힌다. 경찰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그를 찾으러 흩어졌고, 그들 중 한 명이 오토바이로 그를 데려온 건 불과 10분도 되지 않았다. 애써 멋쩍은 표정으로 그가 아는 척한다.
"하이, 미스터 리. 우리가 약속했던 날짜가 아직 안 됐잖아.""허거덕.""저어기 책상이랑 찬장이랑 다 만들어 놨는데."정말 쾌지나 칭칭 난다. 약속 날짜가 적힌 영수증이며 책상만 덩그러니 있는 창고를 열어젖힌 후에야 조용하다. 함께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된 사장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단다. 내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돈 받은 것은 더더욱 모르고. 그럼 창문 치수 재러 집으로 왔던 놈은 니 쌍둥이였더냐?
한통속일 모두가 꼴 보기 싫어 그 목수를 앞세워 경찰서로 갔다. 가는 동안 내내 그는 경찰서 가지 말고 여기서 이야기하자며 오사게 징징거렸다. 10m도 채 가다말다, 가다말다….
"아니, 근데... 어이! 어이! 여기서 말하게, 우리.""잠, 잠깐만! 내 당장 이번 주로 해줄게.""미스타 리. 집에서 애가 배고프다고 울어, 제발.""나 으떠억해~애(어떡해)."일반인들과는 달리, 피의자 신분인 그는 신발부터 벗고 들어가야 한다. 소다값이라도 챙겨주길 바라는 경찰 환대 하에 곧장 조사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일주일 안으로 집까지 배달해 주기로 각서를 쓰게 했다. 만약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즉시 구속까지 감수하겠다는.
그는 궁지에 몰린 약자로 변해 있다. 어두운 복도 모퉁이에 무릎을 깍지 끼고 웅크려 있다. 그러나 점차 낯설던 방안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발견한 걸까, 아니면 내 낯짝에 스치는 연민의 빛을 알아차린 걸까. 얌전하게 쪼그려 있던 그가 점차 두리번거리는 쥐 눈빛으로 변해간다.
"미스터 리, 아니 브라더(형제). 일주일은 너무 짧아. 2주만 줘. 이렇게 애원할게.""그런데 으음, 가만 있어 봐... 배달비는 어떡하지? 저기 미스터 리가 부담하면 안될까요?"웅크렸던 그가 머리를 든다. 그러더니 서서히 이곳저곳을 쑤시기 시작한다. 이 상황 속에서도 배달비를 계산하고, 방충망의 철망 값은 애초에 포함이 안 된 것이라며 생떼를 놓는다. 또한, 계속되는 거짓말. 옷장은 작은 것이라며, 소파는 두 개가 아닌 하나라는 등. 머리털 나고 처음 왔다는 경찰서에서 그의 잔머리는 급기야 머리를 풀고 활개를 쳐 댄다. 걷잡을 수가 없다.
나 몰라라 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동행해 주었던 경찰 파비안과 맥주를 마신 후…. 집에 오니 석회처럼 굳어버린 긴장이 풀어져 사지가 방바닥으로 무너진다. 긴 하루였다. 씁쓸한 하루였고 그냥 맥없이 쓰러져버린 하루였다.
가구도 돈도 잃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4월이 다가온다. 오늘도 그 목수 얘기다. 약속했던 지난주 수요일 그는 책상, 찬장과 방충망을 가지고 와서 종일 창문틀에 고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놈 코빼기도 보기 싫어서, 밖에서 애들과 놀다가 들어왔다. 어떤 방범창은 귀퉁이가 맞지 않아 하나 마나이고, 찬장은 약속과는 다른 얇은 패널로 짠 간단한 박스 형태이다. 떠나는 그가 말하길 이틀만 더 달라고 한다. '그러라' 하고 덧붙이길, 만약 나머지 소파와 테이블·서랍장도 이런 식으로 한다면 잔금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목요일, 나머지 잔금을 주려 환전한 20만 실링을 몽땅 잃어버렸다. 아마도 음부유니 시장에서 100실링에 두 개짜리 바나나를 하나라도 더 얻으려 흥정하려다 소매치기당한 모양이다. 저녁엔 밥해 먹으려다 냄비를 홀라당 태워 먹었다. 새까만 냄비 바닥을 벗겨낸 후 다시 물을 끓여보니, 코팅이 벗겨져 바닥이 벌건 녹으로 가득하다. 인도인 가게에서 비싸게 샀는데, 된장….
약속했던 금요일, 그 놈은 안 왔다. 열이 다시 오른다. 토요일, 휴대전화가 없는 그놈을 대신해 사장에게 전화하니 오늘은 그가 쉬는 날이란다. 일요일, 사장 전화는 온종일 꺼져 있다. 밤새 화를 식히려 사립문 안팎을 서성거렸다.
월요일 밤, 통화가 되었다. 그런데 그놈이 말하길 잔금을 먼저 내고 직접 가져가라고 한다. 내일 경찰서를 다시 간다고 하니, 갈 테면 가라고 웬 배짱이다. 킴비씨의 큰아들인 지브티를 시켜서 차분하게 통화를 하게 했다.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라고. 그것은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욕지거리가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탄자니아에 와서 처음으로 사람이 싫다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제기랄, 아프리카에서 이거 뭔 지랄하고 자빠졌다'란 생각도 순진하였고, 이젠 증오의 바다에 놓여있다.
밤새워 뒤척이다 잠을 깼다. 왼쪽 뒷머리 쪽 혈관이 돌출되어 파닥거린다. 스트레스가 강했나 보다. 세찬 비바람으로 창문이 흔들린다. 바닥에서 서늘한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와 새벽까지 달린다.
화요일 아침, 전에 동행했던 경찰 파비안과 함께 가게로 찾아갔다. 파비안이 말하길 자기를 보면 숨을 줄 모르니 먼저 가 있으란다. 역시나 그는 숨어있었다. 어디 있는지 모른다던 주위 동료 놈들의 말과 달리, 경찰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뒤쪽에서 그가 느린 걸음으로 나타난다. 옷장을 보여주든 말든, 뭐라고 떠들든 말든 '쌩'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이제 난 돈도 책상도 관심 없다. 이게 몇 번째던가. 내가 원하는 건 저놈이 벌 받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증오로 몸서리치고 있는데, 사람 헷갈리게 할 사랑, 용서, 화해란 먼 세상 찌라시 얘기일 뿐이다.
듣기 싫다. 아이가 운다는 소리. 저기 가서 떠들어라. 일당 1만 실링짜리의 고단한 삶 이야기. 오직 저놈이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콩밥 먹는 걸 봐야 내가 살 수 있다. 나부터 살아야겠다.
유치장 들렀더니 "벌써 귀가했는데요"
돌아오는 길, 샨티 타운의 한국인 목사님 댁에 들렀다. 전에 교회를 지을 때, 시멘트 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을 가지신 분이기에 조언이 필요했다.
솔직히 어떻게 하면 저놈 눈에서 눈물이 펑펑 나오도록 하게 만들까 하는 분노와 함께, 혹여 이 일로 타국 땅에서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떡하느냐는 불안이 공존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무엇이 최선의 방책인지 시원한 말씀이 있을 것 같았다.
지금 그놈은 경찰서에 있다 하니, 그분 말씀이 다 소용없다고 하신다. 돈 몇 푼 주면 경찰이 바로 풀어준다고. 옛날 사기를 친 사람을 현장범으로 잡아넣었어도, 다음날 그는 자기 가게에서 담배 물고 있더라는 경험담을 얘기하신다.
고소를 해봤지만 판결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판결 전까지 그 과정이 지리멸렬해서 나중엔 거기에만 얽매일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마셨다 한다. 그러니 최선의 방법은 아무리 인간이 밉더라도 이 선에서 끝맺음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신다.
돌아오는 길. 혹시나 하고 경찰서 유치장에 들렀다.
"그 놈 있어요?""히히, 벌써 귀가했는데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