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과 음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목록 자료가 일본 고음반 전문가에 의해 공개됐다. 1906년 미국 콜럼비아레코드에서 한국 음악가들을 일본 오사카로 초청해 녹음을 한 뒤 1907년 3월에 정식으로 판매 광고를 낸 음반 30장의 목록이다.
한국 음악이 담겨 있는 가장 오래된 음반으로 현재 확인되고 있는 것은 1896년 미국에서 인류학적 목적으로 녹음된 한국 유학생들의 노래로,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가장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기는 하나, 상품으로 제작된 통상적인 음반이 아니라 학술용 녹음 자료이기 때문에, 음반 역사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따라서 상업 음반으로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역시 미국 콜럼비아레코드의 1907년 발매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그런데 미국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제작한 1907년 한국 음악 음반이 30장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그 내용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 다행히 그 가운데 9장은 음반 실물이나 사진이 공개되어 있어 내용 파악이 가능했지만, 나머지 21장의 내용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일본 고음반 전문가 가토 마사요시(加藤正義)씨가 이번에 공개한 목록은, 내용이 확실치 않았던 21장의 수록곡 제목과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음반 실물 못지않게 정확히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한국 음반 초기 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이다. 이 목록을 통해 우리는 20세기 초 대한제국 시기에 대중적으로 인기 있었던 음악의 판도가 어떠했는지를 살필 수 있다.
가토 마사요시씨 제공 자료에 의한 미국 콜럼비아레코드 음반 30장의 수록곡 제목은 다음과 같다. 몇몇 제목 뒤에 붙어 있는 번호는 현재 실물과 사진이 공개되어 있는 9장의 음반 일련번호이다. 이를 통해 아직 실물이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음반들의 일련번호도 그대로 유추가 가능하다.
단위타령유산가(2775)제비가담바귀아라랑타령적벽가(2779)휜머리(2780)난봉가사랑가산염불(2783)삼월절기선유가형장가집장가양산도(2788)다정가(2789)임가(2790)양홍가가진가염불군가승무장단심청가소춘향가시절시조(2798)황계사(2799)백구사수양산가지름가평시조목록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다섯 번째 곡, 음반 일련번호가 2778로 추정되는 <아라랑타령>이다. 아리랑의 일종일 것이 틀림없는 이 곡은 아리랑 녹음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서 본 1896년 미국 녹음 자료에도 아리랑이 포함되어는 있지만, 정식 소리꾼이 녹음한 최초의 아리랑 녹음은 1913년에 발매된 <경성란란타령>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일반적인 학계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목록을 통해 전문적인 아리랑 녹음의 기점이 한층 더 빨라지게 되었다.
<아라랑타령>을 부른 최홍매(崔紅梅)는 관기(官妓) 출신으로, <염불> <승무장단> <심청가>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30장 음반 거의 대부분 녹음에 참여한 인물이다. 최홍매 외에 고수 겸 소리꾼인 한인오(韓寅五) 역시 중요한 녹음자였고, 두 사람의 이름은 앞서 본 광고에서도 확인이 된다.
그런데, 이번 목록에서는 다른 자료를 통해 파악할 수 없었던 또 한 사람의 녹음 참여 음악가 이름이 확인되기도 했다. 바로 해금 연주가 김화여(金化汝)다. 김화여는 다른 고음반 자료를 통해 1920년대 중반에 많은 녹음을 한 것은 알려져 있었으나, 그보다 20년 정도 앞서 이미 음반 녹음에 참여를 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이 명기된 <평시조> 외에 미국 콜럼비아레코드 다른 음반의 해금 연주도 아마 모두 김화여가 맡았을 것이다.
새롭게 공개된 자료가 음반 실물을 포함하지 않은 목록뿐이라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목록만으로도 관련 연구는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자료 조사도 보다 깊이 있게 진행을 한다면, 1907년 <아라랑타령>도 언젠가는 그 실체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