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당의 나까프'에서 '나까프'는 '나쁜X 까발리기 프로젝트'를 줄인 말입니다. 여기서 'X'는 '놈'일 수도 있고, '짓'일 수도 있습니다. '나까프'의 대상은 공인 중의 공인인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급 공직자들입니다. 나아가 무력을 가진 군과, 공권력을 가진 이른바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그리고 갈수록 힘이 세지는 대기업 회장들도 당연히 '나까프'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편집자말]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은 어떤 국면이건 '내로남불'로 치환하는 데 천부적 소질을 갖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을 정쟁의 표적으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인 이른바 '국회 529호 사건'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정원 직원 임아무개(45)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529호 사건이 떠올랐다. 1998년 12월 당시 국회 연락관 안철현(당시 5급 정보사무관, 2013년 작고)씨도 임씨처럼 전북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국정원에 근무했다. 지방대 출신으로 학구열이 컸던 안씨는 당시 대학원에도 다녔다.
국회에 국가정보기관을 감독하는 정보위원회가 상임위로 설치된 것은 1994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국방위원회에서 국가정보원 소관 사항을 관장했다. 다른 상임위와 달리 정보위에서 보고받은 내용과 회의록은 대부분 비밀에 해당한다.
그런데 비밀의 생산-보존-관리주체인 국정원에 매번 가서 열람할 수는 없다. 또 의원들은 임시회의록과 보존회의록 등을 열람해 회의내용을 파악한다. 그래서 절충적 예외가 생겼다.
필자가 입수한 '정보위원회 편람'에 따르면, '국회 회의록 발간 및 보존에 관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보위의 보존회의록(비공개회의록)은 보안상의 이유로 정보위에서 이를 보존-관리토록 했다. 이를 위해 정보위는 2년 뒤인 1996년 4~6월에 공사비 1억7천만 원을 들여 회의장(530호실) 자료보관실 등 보안공사를 했다. 보안공사비 1억7천만 원은 처음 밝혀진 사실이다.
'정보위원회 편람'에 따르면 보안공사의 목적은 "비공개회의록, 비밀문서의 보관-관리를 위한 자료보관실 설치 및 회의장 등의 방음 등 보안시설"이고 대상은 "회의장(530호실) 자료보관실 및 사무실"이었다. 회의장 옆에 문제의 529호실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 모든 것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집권여당일 때 이뤄진 일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북한을 끌어들인 북풍(北風)공작과 미수에 그친 총풍(銃風)공작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그동안 누적된 비리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1억7천만원짜리 보안시설 때려부순 박근혜와 한나라당
그중의 하나가 국가기관을 동원해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뜯어낸 세풍(稅風)사건이다. 공기업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권영해 부장)가 맡았고, 대기업은 재계의 저승사자인 국세청(이석희 차장-서상목 의원-이회창 후보 동생 이회성)이 담당했다. 이 모든 것 또한 한나라당이 집권여당 시절에 이뤄진 일이다.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세풍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회창의 측근이자 주모자인 서상목 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방탄국회'도 마다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공작의 기술자와 희생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한나라당은 국회 529호실을 "안기부 국회 분실"이고 "도청시설이 있다"고 지목했다. 불과 2년 전 집권당 시절에 만든 보안시설(정보위 자료보관-열람실)을 야당 탄압의 산실로 지목한 것이다. 1998년 12월 31일, 한나라당 의원 40여 명과 당직자, 보좌진 등 총 100여 명이 국회 529호실 앞 좁은 복도에 모여 '도청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그 가운데는 불과 6달 전에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초선의원 박근혜도 있었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정치사찰 및 도청의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온건파가 대립했다. 정치신인 박근혜는 "문을 따고 들어가자"고 거침없이 강경론을 주도했다.
결국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쇠망치와 끌, 드라이버를 들고 문 따기 작업을 시작했다. 집권당 시절에 1억7천만 원을 들여 공사한 보안시설도 쇠망치로 내려치자 속수무책이었다.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 의원 10여명이 529호실에 들어가 국회 연락관 안철현씨의 가방과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십 건의 문건을 확보한 후 철수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방탄국회' 성공
국회사무처는 다음 날인 1999년 1월 1일 "12월 31일 밤,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당원 등 100여 명이 국회 정보위 529호실에 무단 침입해 기물을 부수고 국가 기밀문서를 탈취해 갔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이 박근혜 정부 '최장수총리' 정홍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여야 정보위원들이 국정원에 요청한 비밀자료를 열람하고 업무연락을 위해 국정원 연락관이 상주하던 529호에서 탈취한 문건을 가지고 김대중 정부를 공격했다. 세풍이라는 국기를 뒤흔든 구악의 본산으로 몰린 한나라당은 구정치에 때묻지 않은 정치신인 박근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그 배후에는 국정원 출신의 노련한 정형근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박근혜 부총재는 1월 3일 기자회견에서 "안기부 문건 중에는 '우리당 소속 어떤 의원(이세기 의원)이 탈당 기미가 있는 것 같은데 (안기부) 상부에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기재돼 있다"고 폭로하면서 정치공작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당장 여당인 국민회의가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자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탈취한 해당 문건을 분실했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국민회의는 1월 6일 탈취한 문건의 변조-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신경식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여권의 조작 운운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작태"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당일 529호실 문서를 분류했던 홍준표 의원은 "그 같은 내용의 문건은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고 언급해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같은 날 국민회의는 이런 논평을 내 박근혜를 조롱했다.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이지만 정치 행태는 18년 장기 집권자의 검은 선글라스를 연상케 한다." 529호 사건 강경투쟁을 주도한 박근혜가 입을 다문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김종필 당시 총리가 사건 발생 15일 만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이 국가기밀 탈취 사건은 유야무야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529호 사건을 구실로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서상목 의원을 포함한 비리 정치인 10여 명의 체포 동의안 처리는 결국 무산되었다. 한나라당의 구악 정치인들은 때묻지 않은 박근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방탄국회'에 성공한 것이다.
'박근혜의 외모는 육영수, 행태는 박정희'그로부터 14년이 흘러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 박근혜는 민주당의 '댓글 의혹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급습' 사건을 두고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침해'라고 공격했다. 국가 보안시설 문을 따고 들어가 가방을 뒤진 박근혜와는 '딴나라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529호 사건과 오피스텔 사건은 그 동기가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불법행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전자는 야당(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가 보안시설을 불법으로 점거해 문건을 탈취한 반면에, 후자는 일부 야당(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경찰이 올 때까지 오피스텔을 지킨 것뿐이다. 무엇보다도 전자는 국정원을 희생양으로 삼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 의혹이 짙은 반면에, 후자는 재판을 통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진실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529호실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사찰에 필요한 도청 설비는커녕 그 흔한 컴퓨터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용 LAN(근거리 통신망)이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용 LAN은 국정원 본부와 직원들이 상근하는 지부와 분실에만 깔려 있다. 529호실에 국정원 LAN이 깔려 있지 않은 사실은 바로 이곳이 한나라당 주장과 달리 국정원 분실이 아니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방에는 국회 LAN이 깔려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은 국정원이 아니라 국회(정보위)였기 때문이다.
529호 사건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많은 상처와 함께 업무 스타일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자료를 가방에 들고다니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안씨는 당시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어 논문 작성을 위해 정치 관련 자료를 가방에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군미필자'를 국정원장에 앉힌 군미필자 대통령의 책임
한나라당 위기탈출 공작의 희생양이 된 안철현씨는 529 사건으로 옷을 벗고 나가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 위기관리로 박사학위를 받아 노무현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근무했다. 2013년에 지병으로 작고했다. 주변에서는 그가 529호 사건 당시 엄청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씨에 대한 궁금증은 그가 왜 자살했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흔적'을 지웠지만, 그가 삭제한 자료는 복원할 수 있다니 자료를 복원하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문제는 국정원을 '걱정원'이라고 부를 지경에 이를 만큼 국가정보기관을 실추시킨 것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이다. 문제의 불법 해킹은 원세훈 원장 시절에 이뤄졌다.
국정원은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지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원세훈 행자부장관을 국정원장에 기용하려 했을 때 국정원 직원들은 설마 '원주사'를 보내겠냐고 조롱섞인 푸념을 했다. 서울시청에서만 28년을 근무한 지방행정 공무원을 대통령 직속기관장으로 보냈을 때 직원들의 자괴감은 컸다.
원세훈은 역대 국정원장 중에서 유일한 '군미필자'다.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접경지역인) 강원도에서 관광계장과 위생계장을 하면서 공직을 처음 시작해 남다르게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직원들은 다시 한번 자괴감에 고개를 떨궜다. 국정원은 안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지난 2002년까지도 직원채용 응시자격을 병역의무를 마친 자로 한정했었다.
그러나 '군미필자 대통령' 이명박은 '군미필자 국정원장'을 앉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MB는 자신한테만 책임을 지는 자리에 무능력자를 앉힘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선거)에 개입하고 반헌법 행위를 자행한 국정원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또 공사비 1억7천만원 들인 보안시설을 때려부술 때 앞장섰던 박근혜는 그 정치(선거) 개입과 불법해킹 앞에서 여전히 '나몰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