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 울기로 했어. 피켓 들면서 하도 많이 울어서…."청와대, 홍대, 청운동 등에서 수십 일째 "세월호 속에 아직 가족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박은미(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허다윤양 어머니)씨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25일 오전, 비가 내리는 안산에서 출발해 강한 햇볕이 쏟아지는 진도 팽목항에 도착한 박씨는 팽목항 방파제를 서서히 걸었다.
"딸한테 너무 미안해서. 지금 (사고 후) 몇 개월인가요? 16개월? 어제 수학여행 떠난 거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흐른 게 야속하기만 하고. 그래도 매일 피켓을 들다 보면 자원해 도와주는 시민들에게 정말 고마워요. 지금은 시민들의 힘밖에 믿을 게 없잖아요."박씨의 바람처럼,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팽목항에서 진행되는 '기다림의 공연'엔 전국에서 온 시민 100여 명이 모여 "세월호 인양과 진상 규명 촉구"에 목소리를 모았다. 이날 모인 시민들과 국악예술단 '신청'은 이날 오후 7시 세월호 참사 팽목항 분향소 앞에서 공연, 시낭송 등으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추모했다.
팽목항 방파제 메운 '침묵 순례'
애초 팽목항 방파제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연은 이날 오전 팽목항 승용차 추락사고로 숨진 사망자 3명을 고려해 분향소 앞에서 진행됐다. 방파제 입구엔 공연 주최 측이 쓴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대신 공연에 앞서 오후 6시 침묵 순례가 진행됐다. 이날 팽목항을 찾은 이들은 길이 약 30m의 노란 천을 각자의 손에 쥔 채 방파제를 돌았다. 국악예술단 신청의 대금 연주가 침묵 순례 행렬의 맨 앞을 이끌었고, 한복을 입은 채 노란 모형 배를 든 이들이 바로 뒤를 이었다.
노란 천 한 귀퉁이를 오른손에 쥔 유가족 권미화(고 오영석군 어머니)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돼 있었다.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던 권씨는 팽목항 방파제 한편에 앉아 노란 리본을 보고 있는 한 모녀를 보자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우리에겐 뭐든 다 부럽지. 가족이 모여 있는 것도,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저녁에 차에서 기다리는 것도, 아들 좋아하는 거 먹인다고 장보는 것도, 잠자는 시간에 맞춰 자는 것도, 심지어 싸우는 것도 모두다. 남들처럼 술이라도 먹을 줄 알면 술로 세월을 보낼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권씨는 "팽목항 너머 바다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며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특별조사위원회 등과 관련해서 밀어붙이기식으로 나왔는데, 앞으로 또 어떻게 나올지 무섭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팽목항 노란 리본 철거? 사실 아냐"침묵 순례 이후 열린 공연은 가수 나무의 노래로 시작해 국악예술단 신청의 '노랑 아리랑 기다림'에서 절정을 이뤘다. 진도에 사는 박남인씨가 <동백꽃처럼>(박종호, 전남 진도군 의신면)이란 시에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을 넣어 낭독하자 청중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이 세상의 안전한 손을 기다렸던 이름들. 다윤이, 영인이, 은화, 현철이,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님, 혁규, 그리고 이영숙님. (중략) 어머니 뒤를 보세요. 어머니의 손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머니 우리 잊지 않으려 무릎 닳고서 온 어른들의 손을 잡아주세요. 차마 잊었던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세요. 밤이면 몰래 내 이름을 부르는 물결들, 팽목항 동백꽃처럼 그 붉은 마음만 주세요."한편, 사고 이후 줄곧 진도를 지키고 있는 권오복(미수습자 권재근씨 형, 권혁규군 큰아버지)씨는 이날 팽목항을 찾은 이들 앞에 서서 "어제(24일) 나온 '팽목항 주민들과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과 협의해 추모 리본, 현수막을 함께 철거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걸려 있어 훼손된 리본과 현수막을 교체하기 위해 어제 수거한 것뿐인데 마치 모두 철거한 것처럼 알려졌다"고 말한 권씨는 "팽목마을 주민들과 만나본 결과, 모든 주민이 철거를 원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괜찮다고 해주는 주민들이 많아서 인양할 때까지만 양해해달라고 부탁해 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7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 진행된 팽목항 기다림의 공연은 다음 달 29일 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