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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默 쾌한 기다림.
思惟 쾌한 자유.
反抗 쾌한 거부.


인간은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내면의 무수한 소리들을 제대로 들어본 적 있는가? 의식 저편에 깔려 있는 근원적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 날에는 누르고 외면하고 무시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그렇게 해야 근사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작가 한수희의 작품 속에서 나의 욕망과 호소함, 흔들림과 눈물, 땀과 사무침, 기도와 소망을 다시 본다. 그 감정들 하나하나 존중받는 느낌이 이렇게 평온한 것을. 선을 긋고 칠하지 않는다. 그저 한 점(點,dot) 한 점(點,dot)을 존중하며 반복했을 뿐이다. 억누르고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다스렸다. 여기에서 작가의 철학적 시선이 녹아 있음을 느낀다.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들을 감상했다. 작품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초기작은 복잡하고 어렵고 화려해 보였다. 지금은 수많은 것들을 털어 버린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의 전면은 단순한 듯하지만, 무수한 내면을 점(點, dot)으로 응집시켜 놓았다. 거기에 철학이 스며 있어서, 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상대를 흡입해 버린다. 풍성한 색채와 성실한 점(點,dot)들, 그 사이로 흘러가는 알 수 없는 분위기는 보는 사람의 내면과 경험이 만난 어느 한 시점에서 툭 터져 버린다. 단번에 보일 수도 있고 자세히 보아야 할 때도 있다. 어쩌면 오래도록 봐야 보일 수도 있겠다.

잠시 잠든 사이 잠시 잠든 사이, 116.8 x 91cm, acrylic on canvas, 한수희, 2014
잠시 잠든 사이잠시 잠든 사이, 116.8 x 91cm, acrylic on canvas, 한수희, 2014 ⓒ 한수희

다시 작품을 보자. 많은 작품 중에 위 그림 <잠시 잠든 사이>는 단번에 내 마음을 쾌하게 흡입했다. 흔치 않은 선홍빛 잉어가 황금빛 잉어로 보일 만큼 찬란하다. 녀석은 웃었다. 신이 났다. 수염이 하늘을 달리고 비늘과 꼬리가 펄떡거린다. 펄떡펄떡 튀어 오르며 온몸으로 털어내는 물방울이 검은 밤하늘을 붉은빛으로 만들어 놓았다.

짜디짜고 쓰디쓴 바닷물에 잉어가 살 수 있는가? 아니다. 잉어는 원래 담수에서만 살 수 있는 어종이다. 잔잔한 연못에서 노니는 동양화 속에 한가한 잉어가 아니다. 누가 먹이를 뿌려 주면 받아 먹고, 어느 날 낚시 바늘에 걸려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는 그런 잉어가 아니다. 밋밋한 생명 근원을 뛰쳐나와 쓰디쓴 세상인 바다로 거슬러 왔다. 거친 파도가 몸통을 휘감으나 펄떡이는 자유를 더이상 가둘 수 없다. 녀석은 때가 오기까지 침묵했고 사유했다. 주어진 환경에 반항할 줄도 알았다. 밋밋한 담수를 거부하고 짜디짠 바다에서 솟구친다. 이런 잉어를 어떻게 가두며 누가 낚겠는가. 여유 있게 웃는 것이 참으로 쾌하다.

예술이 시대의 철학을 담아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담수어인 잉어가 검푸른 밤바다에서 솟구치는 것과 같다. 달빛 받은 선홍빛 비늘이 황금빛으로 느껴지는 것은 다름이고 거부며 반항이다. 그리고 자유다. 수많은 점(點,dot)들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난 목놓아 울었으나 소리내지 않았다. 할 수 만 있다면 녀석을 가두고 싶다. 세상의 복을 다 불러 올 것만 같은 기운이 넘쳐난다.

한수희 작가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는다 한다. 이것이 더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덕분에 보는 이는 작품과 더 깊은 교감이 될 것 같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서 동양적 사유함이 느껴진다. 순박한 얼굴에 콧수염이 제법 어울렸고 유쾌하고 진솔하고 당당하다. 캔버스 위에 점(點,dot)을 찍은 시간만큼이나 내공이 깊어 보인다. 작은 스침에도 배움을 발견해 내는 밝은 눈이 있어서 작가로서 영감은 마르지 않을 것 같다.

한수희 작가 대전 둔산 아트홀릭 작업실에서
한수희 작가대전 둔산 아트홀릭 작업실에서 ⓒ 유미주

점(點,dot)은 작가의 땀이고 호흡이고 눈물이다. 꿈이고 생명이고 기쁨이다. 욕망이고 호소함이고 사무침이다. 마침이자 시작이다. 수많은 점(點,dot)속에 천(千) 가지 영감이 서려있다. 작가의 행위는 노동에 가깝지만, 점(點,dot)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은 사유이며 철학이다. 한수희 작가는 감정과 경험과 의식에 점(點,dot)을 찍는 노동자이며 철학자이다.

기대한다. 세계가 그들 유수의 미술관에 우리 작가들의 작품들을 가두고 싶어하는 날을. 우리 작가들의 작품들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그날을 기대해 볼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도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수희#화창한 살롱#잠시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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