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4박 5일(7월 22일~26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5년 전 조카 녀석이 태어날 때, 지금 이 순간이 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다행히 조카는 무럭무럭 잘 자라 어느새 삼촌만큼 키가 커버렸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났습니다. 서울 촌놈과 시골 촌놈이 함께한 배낭여행기입니다. -기자 말-
밤사이 부산엔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녘 세찬 빗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잠결에 화장실로 향하는데, 2층 침대 위 조카 녀석이 부릅니다.
"삼촌 비 엄청 와! 천둥도 쳐! 대마도 갈 수 있을까?"천장에 자리한 작은 유리창이 깨질 듯 요동칩니다. 때마침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내리친 천둥과 번개가 방안을 환하게 비춥니다. 조카 녀석의 애끓는 표정이 찰나의 순간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습니다. 하늘에서 누군가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듯합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대마도 갈 수 있을까"초조한 밤이 지났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바람도 잦아들었습니다. 조카 녀석의 표정도 환해졌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쏘냐. 기분이 좋아진 조카 녀석에게 아침 식사 준비를 떠맡겼습니다. 흔쾌히 요리사를 자청합니다. 역시, 아직 순수한 어린아이입니다.
"삼촌, 이래 봬도 내가 토스트계의 1인자야! 기대하시오"게스트하우스의 아침 식사상이 차려졌습니다. 맞은 편에 독일인이 앉았습니다. 그 옆으로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파란 눈의 꼬마 여자아이가 앉았습니다. 꼬마 옆에는 그의 아빠가 함께했습니다. 그야말로 다문화 밥상입니다. 조카 녀석은 전날보다 "독일인 형"을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꼬마의 애교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날씨가 좋으니 아침 밥상 분위기도 화기애애합니다.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환전을 하고 뒤돌아서는데 조카 녀석이 자꾸 주머니를 뒤적거립니다.
"삼촌, 돈 부족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아니 이 정도면 괜찮겠지?"녀석의 등쌀에 환전을 더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빚지기 싫다"고 하던 녀석인데 막상 해외에 나가서 돈 쓸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됐나봅니다. 또다시 얼굴이 굳어지는 조카 녀석을 향해 말했습니다.
"쫄지마 쨔샤! 삼촌이 가봐서 아는데, 사람 사는데 다 똑같어 임마!"텅 빈 대마도, 엇갈린 표정
대마도행 배에 올랐습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적잖게 내리칩니다. 다행히 출항에는 지장이 없는 듯합니다. 광안대교를 거쳐 배가 망망대해를 향해 달려 나갑니다. 조카 녀석과 떠나는 첫 해외여행입니다.
휴대폰 문자가 먼저 대마도에 근접했다는 것을 알립니다. 대마도 북단에 위치한 하타카츠항에 도착했습니다. 부산과 달리 화창한 날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어디론가 떠나고 보이지 않습니다. 부산항에서 출항할 때만 해도 분명히 배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말이죠. 삽시간에 모두 떠난 항구에 덩그러니 조카 녀석과 단둘이 남겨졌습니다.
조카 녀석이 모처럼 큰 일(?)을 해냈습니다. 밥집을 찾아냈습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지쳐갈 때 즈음이었습니다. 허기진 배에서도 반가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대마도서 첫 끼니는 덮밥으로 해결했습니다.
모두 떠났지만 우린 남기로 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좀 번화가인 대마도의 남쪽에 위치한 이즈하라항으로 이동하길 바랐으나 제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귀차니즘이 발동한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가자. 여기 지도를 보니 좋은데 많은데"살살 갓난아이 다루듯 홀리니 꼬임에 혹하고 넘어옵니다. 순진한 녀석입니다. 대마도 여행책을 그렇게 들여다보고도 모르다니 말이죠. 사실 하타카츠항 주변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동네구경도 하고 민박집도 찾아볼 수단으로 거금을 지출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돈을 낼 때가 되니 또 '쫌생이' 기질이 발휘됐습니다. 쌈짓돈을 꺼내듯 손을 벌벌 떨며 "너무 비싼데, 너무 비싸"를 반복했습니다.
자전거가 생기니 편합니다. 두 사내가 동네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항구 주변을 샅샅이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동네가 좁으니 가볼 만한 곳은 죄다 들쑤시고 다녔는데도 겨우 저녁때입니다. 도착한지 불과 서너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디게 가는 시간이 좋습니다. 멍하니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입니다. 문 닫은 카페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적막함을 즐겼습니다. 반면, 서울 촌놈 조카 녀석은 심심한지 몸을 어찌할 바 모릅니다. 시골 촌놈인 제가 훈계하듯 한마디 했습니다.
"으이구~서울 촌놈아! 도심을 벗어나니 죽겠지. 니가 이 맛을 알 턱이 있겠냐"약을 올리자 심심해하던 조카 녀석이 반응을 합니다. 코흘리개 어린애 마냥, 때 아닌 술래잡기 놀이로 지루함을 달랩니다.
좋은 삼촌? 꼰대가 됐습니다
숙소는 동네 끝, 언저리에 잡았습니다. 자전거로 동네를 달리다 발견한 민박입니다. 일본어를 못해 방값을 지불하기까지 애를 먹었습니다. 그동안 남모르게 익혀 온 '보디랭귀지'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방을 잡았습니다.
그 사이 조카 녀석은 미리 방에 들어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습니다. 저놈, 삼촌은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고생하는데, 방바닥에 널브러져 '세월아 네월아'입니다. 한 대 머리를 쥐어박고 싶으나 오늘 하루도 불평불만 없이 여전히 해맑은 녀석이라 참습니다. 역시, 저는 좋은 삼촌입니다.
좋은 삼촌이 되겠다고 또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일본식 식당에 앉아 저녁밥을 먹으며, 고민 상담을 해주겠다며, 미주알고주알, 이것저것 조카 녀석에게 캐물었습니다.
"요즘 고민이 뭐니, 삼촌은 그 나이에 말이야...공부는 말이지..."한참을 떠드는데 조카 녀석 표정을 보니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조카에게만큼은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꼰대질'에 푹 빠져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혼잣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마시자. 하긴 죽어라 얘기하면 뭐하냐. 나도 그랬는데. 그냥 재밌게 놀자"식당서 우리가 통한 것은 "오징어구이가 겁나게 맛있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다시 밤길을 달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서울 촌놈인 조카 녀석은 벌레에 소스라치고 어둠에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시골 촌놈은 그 모습을 골리며, 웃음으로 공포심이 녀석의 가슴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숙소까지 이끌었습니다.
참, 행복한 하루입니다.
조카의 일기 |
부산 숙소-부산국제여객터미널-대마도(히타카츠)-히타카츠 시내-숙소
우리는 오늘 대마도를 가기 위해 11시까지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뭐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을 다 써버리고 배를 탔다.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그런지 배에 올라타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일본은 아직도 메르스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검사를 매우 철저하게 하였다. 히타카츠에 들어선 우리 둘은 숙소를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하였다. 헤매다가 찾은 카페에 들어가서 자전거를 빌리고 숙소도 구했다. 그 이후로 나와 삼촌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다. 지리를 다 외웠다.
오늘의 느낀 점 : 대마도 히타카츠에 도착!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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