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에 각인된 피부색에 관한 편견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소위 잘산다는 친구 집에 놀러가 보면 부드러운 감촉의 책들이 책장을 빛내고 있었다.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이 등장하는 당시 어린이들의 선망 "디즈니 전집"이었다.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그 책들을 빌려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책들 속의 주인공은 대부분 백인에 금발머리였으며 좀 더 자라면서 읽은 <톰소여의 모험> 속 흑인은 가난하고 소위 말하는 3D업종(힘들고_Difficult, 더럽고_Dirty, 위험한_Dangerous이라는 영문의 첫 자를 모아 3D라고 부름)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동화책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백인은 부자이거나 귀족이고 흑인은 가난한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만화영화 <포카혼타스>나 <뮬란>에서 피부색이 다른 주인공이 나왔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가 소싯적 읽었던 이런 동화들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인종을 차별할 의도가 있었는지 단정하여 말하긴 어렵다. 다만 이런 동화들로 인하여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각인된 피부색에 관한 인종적 편견이 우리의 일상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주민 인권교육 때 참가자들과 동화에 나타난 인종차별적 편견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공감을 표시한다(*이주민 :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사는 사람으로, 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외국인주민 자녀 등을 말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영어만이 아닙니다
현재 나의 직장은 가톨릭근로자회관이다. 가톨릭교회의 정신과 가르침에 따라 이주민의 인권보호와 가톨릭전례(예배 등)지원을 위해 활동한다는 측면에서 종교기관이면서도 시민단체로 분류된다. 이곳에서 8년 넘게 이주민 상담과 지원 업무해 오면서 나를 괴롭힌 것은 11개 정도의 각기 다른 언어다.
상담을 위해 마주한 영어권 이주민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를 영어로 이야기 한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나는-사실 한국어도 잘 못하는 것 같다- 영어상담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상담할 때가 있는데, 영어상담사 없이 혼자서 상담을 이어갈 때면 어김없이 내담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왜 영어를 못해요?"당당하게 질문하는 이주민에게 '내가 왜 영어를 잘해야 하죠? 당신은 왜 한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안 배워요?'라고 소심하게 반문하면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면 거의 불편을 못 느껴요'라고 대답한다. 그의 말이 틀린 구석하나 없지만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그런데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주민과 상담을 하게 되면 통하지 않는 언어 앞에서 어쩔 수 없이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묻게 된다. 나의 이런 질문에 죽을 죄라도 지은 것 같은 표정으로 '저 영어 못해요. 한국말 못해서 죄송해요'라며 서툰 한국말로 대답한다. 아차! 영어를 하지 않는 이주민만 차별하는 듯한 나의 말실수를 깨닫고, '아뇨, 제가 미안해요. 제가 베트남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요'라며 급히 사과를 하게 된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 영어만 우월하다고 할 수 없을 텐데, 유독 한국에서 영어가 이토록 대접받는 이유는 단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편리하다는 것 외에 낯선 이주민의 언어에 대한 우리의 어색함과 편견이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영어권 이주민의 서러움개인적인 일로 방문한 쇼핑센터나 병원에서 가끔 이주민들과 한국인 종업원들과의 대화를 듣게 되는 일이 있다. 영어권 특히 백인들이 방문하면 담당 직원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면서도 'please wait'라는 말과 함께 어딘가로 연락을 하여 영어가 되는 직원이 안내할 수 있게 조치하여 주고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객응대에 (스스로) 만족스러워 한다.
하지만 비영어권 특히 동남아 지역 이주민이 방문하면 전혀 다른 '고객응대'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친절한 한국어로 안내를 시작하지만 생소한 언어로 상대방이 말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짧아진다.
그런 직원의 모습 때문에 비영어권 이주민은 점점 위축되고 결국엔 그나마 하던 한국말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너무도 다른 고객응대의 이유가 낯선 언어뿐 아니라 혹시나 그 이주민의 고향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추측, 그리고 반성을 해본다.
주변의 지인들은 평소 이주민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스스로 이주민을 차별한 적은 없으며 차별하지도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인들의 가깝거나 또는 먼 이웃인 이주민들은 신문에 보도되는 노동착취나 성적 희롱보다 소소한 일상의 체제 속에서 무수히 많은 차별을 느끼고 그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국내 이주민 180만 명 시대.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함께 사는 다 같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란 동화 속 주인공을 통해 은연중에 생긴 피부색에 대한 좋고 싫음,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어느새 저절로 따라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어버리는 그의 고향, 외모, 직업, 쓰는 말들에서 벗어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배려하는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갈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김선규님은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인권상담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