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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책 표지 ⓒ 호미
보통 책을 읽을 땐 스마트폰을 저 멀리 던져놓는 것이 필수다. 안 그러면 책이 아닌 스마트폰만 보다 '오늘은 여기에서 그만 읽자'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일어나게 되기 일쑤니까.

하지만 이 책 이채훈의 <클래식 400년의 산책>을 읽을 땐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게 좋다. 책의 구성 때문이다. 곡을 소개하는 글 하나마다 해당 곡이 링크돼 있다. 책에 새겨 넣어진 QR코드를 스마트폰의 QR코드 리더기로 읽어내면 아주 쉽게 클래식 세상 속으로 빠져 들 수 있게 해놨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유튜브 검색어도 마련되어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스마트폰과 함께 이어폰 하나도 좀 준비해 두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여유를 갖고 음악 감상을 해보면 어떨까. 내가 책을 읽으며 QR코드로 불러냈던 클래식 음악 몇 개 중 특히 마음을 울렸던 곡을 이곳에 링크해 보려 한다. 링크 아래 쪽에는 저자 이채훈의 설명을 짧게 발췌해 넣었다. 음악을 들은 후 설명을 읽어도 좋고, 아니면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파헬벨의 <카논>

▲ 파헬벨의 카논 연주 샌프란시스코 고음악 앙상블 '음악의 목소리'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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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입니다. 누군가 돌을 던졌나 봅니다.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이 퍼져 나갑니다. 동심원은 점점 커져서 결국 호수가 넘쳐날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물결이 아무리 거세져도 물은 처음처럼 맑고 깨끗합니다. 파헬벨의 <카논>은 음악 역사에서 가장 맑은 음악일 것입니다. 혼탁한 세상, 조용히 흐르는 이 음악에 마음을 맡기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마음도 맑게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 본문 중에서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고통에서 자유로운 평화.
순결하고 진실된 평화는
달콤한 예수. 그대 안에 있을 뿐.
번민과 고뇌 속에 살아가는 영혼이여.
순결한 사랑의 희망으로 만족하라.

▲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노래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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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은 번민과 고뇌의 연속입니다. 춥고 어두운 요즘, 우리에게 '사랑의 희망'을 주고 '순결한 평화'를 주는 것은 예수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음악이 아닐까요?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랫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비발디의 이 음악은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위로합니다. "세상에 참 평화가 없다"고 탄식하는 노래에서 잠시나마 평화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참 역설적이지요? – 본문 중에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2번 F장조 BWV 1047

▲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F장조 BWV 1047 지휘 카를 리히터 연주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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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게 지구를 대표하여 인간의 음악을 알려 주게 될 첫 곡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F장조의 첫 악장입니다. 1977년 발사된 뒤, 초속 17킬로미터로 태양계를 막 벗어나 광막한 우주 공간을 날고 있는 보이저 호에 이 곡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헨델의 <물 위의 음악>

▲ 헨델의 물 위의 음악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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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 잘 아시지요. 사람의 일생은 길어야 백 년이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인류를 풍요롭게 가꾸어 줍니다. 불멸의 예술을 남긴 사람의 이름은 그 작품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됩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물 위의 음악>을 작곡한 헨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음악을 연주하라고 명령한 영국 왕 조지 1세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인생은 짧고, 권력은 무상한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바로크

책에는 이와 같은 짜임새로 총 54곡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곡이 소개돼 있다. 대표곡 아래에 함께 소개된 곡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곡이 소개되어 있는 셈이다. 저자 이채훈은 특히 우리 귀에 익은 친숙한 선율을 골라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게 바흐의 무슨무슨 곡이다, 라는 식의 딱딱한 설명보다는 "그 곡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실마리 하나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이 책은 곡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의 곡에 담긴 작곡가의 일화라든지, 시대 배경, 저자의 느낌이 곡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곡 하나하나에 집중했다고 해서 전체적인 바로크 음악의 흐름에 둔감하게 다가갔다는 말은 아니다. 한 곡, 한 곡에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몬테베르디에서 카치니, 비발디에서 페르골레지, 바흐에서 헨델로 넘어가는 바로크 음악계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바로크 시대는 1600년부터 바흐가 사망한 해인 1750년까지, 150년을 말한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말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단정한 양식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발전했다는 인식이 강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조성과 기보법, 연주 기법과 합주 형태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실험을 강행한 이 시기의 음악가들에 의해 마침내 근대 음악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우리에겐 아주 오래 된 음악으로 여겨지는 클래식이 당시에는 너무 새로워 거부감을 주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클래식 하면 왠지 어렵다는 생각이 크다. 그리고 왠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음악은 사랑하는 만큼 아는 것"이라고. 우리에게도 우연히 듣게 된 클래식에 마음이 끌려 반복해 듣게 됐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곡이 클래식이라는 이유로 이후 마음을 접고 다시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접을 필요는 없었는지 모른다. 그 곡을 좋아하게 됐다면 그냥 계속 즐기면 됐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클래식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저자만큼은 됐을 수도 있다(!).

이런 각박한 시대 음악마저 사라진다면...

어린 시절 하이든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소년은 자신이 음악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철학에도 소질이 없었던지 MBC PD가 되어 서른 해 가까이 일한다. 그러다 해고 노동자가 되었고, 지금은 음악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사람들과 방송이 아닌 음악으로 소통하고 있다. 저자 이채훈 이야기다. MBC를 떠나고 나서야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조금 가난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말한다.

내가 가진 것은 음악 사랑뿐이다. 내가 생존할 수 있도록 부축하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보답하는 방법도 음악뿐이다. 냉혹한 자본의 세상에서 음악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물으실 수 있다. 부자들의 여흥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음악마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황량할까? 각박한 이 시대,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의 불을 지펴 드릴 수 있다면 내 삶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저자의 음악 사랑이 듬뿍 배어 있는 이 책을 나는 자기 전에 읽었다. 한 곡 한 곡을 빠짐없이 따라가며 어설프게나마 눈을 감고 클래식을 음미했다. 그러다 그냥 잠이 들어 버린 적도 있었지만, 하루의 마지막을 이렇듯 음악과 함께 하니 다른 때와는 달리 잠도 푹 자게 됐던 것 같다. 여러분들도 자기 전에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잠이 잘 올 것이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그러니까 모차르트 이전의 음악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후 출판 예정인 두 번째, 세 번째 책에서는 바로크 이후의 클래식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을 꼭 쥐고 다음 책 첫 장을 넘겨볼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다음엔, 모차르트다.

덧붙이는 글 | <클래식 400년의 산책>(이채훈/호미/2015년 06월 24일/1만5천원)



클래식 400년의 산책 -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

이채훈 지음, 호미(2015)


#바로크 음악#바흐#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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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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