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독일인 부부를 통해 아를과 고흐에 대한 주요 정보를 얻었다. 관련된 책을 예전에 몇 권 읽어 보았지만 사실 입에 익숙하지 않는 지명과 사건을 연결 지어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구입한 한 권의 '프랑스' 책엔 아를의 고대 유적지에 대해 설명했을 뿐 고흐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랬기에 나는 아를에서 고흐가 귀를 자르고, 고흐의 작품세계를 인정해 준 의사 덕분에 이곳에서 계속 그림을 그렸고, 정신이 더 이상해져 힘들어 하다가 죽기까지 '병원 생활 시작에서 죽음까지' 다 이곳에서 다 일어났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인의 입에서 '쉐에나미~' 비슷한 발음이 나왔을 때 무의식의 세계에 있던 그 단어, '생래미'가 떠올랐다. 나보다 고흐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훨씬 많은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를에선 귀를 잘랐고 증세가 더 심해져 생래미로 갔단다.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은 파리에서 맞이했다는 것 같은데. 여하튼 많은 정보를 얻었다.
돌로 지은 높은 건물과 그림자가 있어 정말 다행스러운 날씨다. 습기는 아주 적당하지만 6월 하순의 햇볕은 너무 뜨거웠다. 다행인 건 골목이 좁아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그림자가 많았고, 옛 건물들의 돌로 만든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함이 있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안 후 정신병원을 찾는 건 쉬웠다.
고흐의 그림의 모습에서 보았던, 아치형 기둥들이 여러 개 있는 'ㅁ'자형 건물이었다. 중앙엔 네모반듯하게 화단을 만든 후 다양한 꽃들을 심어 놓았는데 조경에 관심이 있는 내가 보기엔 그다지 수준 있는 조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꽃들은, 비싼 꽃이든 싼 꽃이든, 진귀한 꽃이든, 흔한 꽃이든 상관없이 모두 선명한 색상을 가졌고 한낮의 정오에 내리쬐는 햇볕을 향해 고개를 숙이지도 날개를 접지도 않는 당당함이 있었다.
아를의 거리에 심겨진 올리브 나무잎들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강한 햇살에 뺏겼기 때문일까 잎사귀들이 건조한 가을 낙엽처럼 모두 베베~, 돌돌~ 말렸다. 한낮의 햇볕으로 부터 가로수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달리 발랄한 정원의 꽃들은 뽐내는 고흐의 그림 속 해바라기의 붓 터치의 느낌과 비슷했다. 지금은 레스토랑이 하나, 기념품점이 두 개가 사면 중 한 면을 차지하고 있고 두 면은 잘 모르겠지만 폐쇄 후 보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곳이 사무실이라 생각했는데 호기심 많은 남편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갔고 곧이어 "도서관인데 너도 들어와 봐야 할 것 같아"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천장은 높고 공기는 쾌적했다. 취급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도서, 영상물이 있어 그다지 새롭진 않으나 공간을 구획하고 물건을 배치한 실내의 모습은 신선했다. 계단은 색다른 위치에, 색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발자국 소리를 아주 작게 만들어주는, 실용성까지 뛰어난 것이었다.
죄다 불어라 졸지에 문맹인 고로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도 없는 엄마가 되고 말았지만 안타깝진 않다. 위쪽에 올라가 그냥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천연 염료를 이용해 과거 미술품을 복원하는 내용이 나왔다. 그림을 최대한 똑같이 복원하는 저 아줌마의 일도 직업이라고 말해주었고 엄마가 알기론 돈을 꽤 많이 번다고 말해 주었으나 현이는 아줌마의 아주 느린 붓질 뒤로 가득 쌓인 일거리들을 보고는 "너무 일이 많아"라고 말했다. 아마 저 직업은 별로라는 것 같다.
얘기가 도서관으로 새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우린 고흐의 흔적이 많아 있는 이곳이 그리 요란스런 관광지로 개조, 변형 되어 있지 않고 그냥 정신병원은 문 닫았으며 건물 중 한동이 옆 건물과 연결괴어 꽤 규모 있는, 멋스런 도서관으로 사용된다는 게 참 신기했다. 심심하길 거부하는 우린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만큼 프랑스인, 프랑스의 소도시, 관광 상품화 등을 주제로 쏼쏼쏼 말을 나눴으나 우리도 안다. 우리의 추측은 모든 면에서 비약이 심할 것이란 것을.
서른일곱의 삶으로 서른일곱 살을 살다간 고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고, 개혁 교회 목사의 자녀로 종교를 통한 구원을 갈구했다. 세상에서 밀리고 상처받으면 가족에게 돌아와 휴식하고 독서하고 걸었다. 그의 사색은 미술세계의 바탕이 되었지만 또한 얼마나 많은 고민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을까? '세상 사는 데는 많은 생각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의 나로서는 사색하는 고흐가 그냥 짠하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사람들 틈에 섞여보지만 그는 선천적, 기질적으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보다 긴장감과 고립감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유형의 인물인 것 같다.
그런 그는 사랑하는 여인, 친구, 스승에게 거절당한다. 처음엔 타율적으로 고립을 택할 수밖에 없던 그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는 사건이 있고 다시 아를의 노란 집에 돌아와 불면증과 환각 증세로 고통을 받다가 아를의 주민들의 탄원으로 병원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 두 달 후 병원에서 나와 다시 노란 집에 갔으나 자신의 상태가 좋아졌음에도 자발적으로 생래미의 생폴드모졸 병원에 들어간다.
나는 그가 이부분에서 드디어 세상에 손 내밀기를 멈추고 자발적인 고립을 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미술 지평을 넓히기 위해 그가 택한 화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거절당하는 것보다 그의 일상이 영위되고 있는 공간, 마을의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충격과 좌절감은 훨씬 크지 않을까 싶다. 이일로 더이상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보겠노라는 희망과 의지를 놓게 되진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발작을 반복함에도 정상적인 상태일 때는 더욱 왕성하게 그림을 그린다. 난 그가 그린 하늘로 뻗치는 기운의 사이프러스 나무의 자태를 볼 때면 눈물이 난다. 그림일지언정 그런 기세라면 어디든 도달할 수 있을 거 같다. 그것이 진리이든, 사람의 마음속이든.
그나마도 서른일곱의 생애를 버틸 수 있게 해준 테오를 보고자 파리에 방문했을 때 결혼, 직장, 아이 간병으로 힘들어하던 동생을 보고 온 후 고흐는 집으로 돌아와 폭풍우 몰아치는 하늘 아래 있는 밀밭을 그렸다. 아~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세상 전부였구나. 며칠 후 마지막 편지를 쓰고,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더 보낸 후 권총으로 가슴을 겨눈다.
아를. 난 아를이란 동네가, 아를 사람들이 고흐에게 회복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음을 알았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고흐의 일대기를 읽으며 내가 아를이 아닌 생래미나 오베르를 갔어야 했나 잠깐 생각했다. 아를을 따뜻한 색으로, 낭만적인 장소로 남겨둔 고흐가 가여웠다. 짝사랑 같은 느낌이다. 인생은, 사람 마음은 참 아이러니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