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은 필요악일까요?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저신용자에게 필요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연 34.9% 고금리 족쇄가 따라 붙습니다. 그런 대부업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감성광고도 모자라 프로 스포츠 구단을 만들어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려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TV 대출 광고 제한을 앞두고 대부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3편과 4편에선 대부업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P2P(개인 대 개인) 대출업체' 두 곳을 만나봅니다. '고금리 대부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돈이 필요한 사람과 투자자를 낮은 금리로 연결해주는 '핀테크' 기업, 첫번째는 '8퍼센트'입니다. [편집자말] |
"우리나라엔 '중금리' 시장이 없어요. 은행 대출 금리가 연 3~4%인데 이 문턱을 못 넘으면 저축은행, 대부업 등 연 20~30%로 확 뛰죠. 금융시장의 불합리한 구조를 깨고 싶었어요" 이효진 8퍼센트 대표의 말이다. 회사 이름은 평균 연 8%의 금리로 대출해준다는 뜻에서 붙였다. 이곳은 돈을 빌려주는 업체지만 은행은 아니다. 돈을 빌리려는 개인, 소상공인과 불특정다수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P2P(개인 대 개인) 대출업체'이다.
'P2P 대출'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이다. 간단히 말해 대출을 원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주고 싶은 사람을 직접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 모델이다. 지난해 뉴욕 증시에 상장해 9조 원 가까운 가치를 인정받은 미국 P2P대출업체 '렌딩클럽'이 대표적이다.
8퍼센트는 아직 사업 초기여서 수수료는 받지 않고 있다. 기존 금융기관과 달리 지점을 두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으로 운영한다. 불필요한 부대 비용이 빠져 그만큼 싸게 빌려줄 수 있는 구조가 된다.
대출자는 저축은행, 대부업체보다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고, 투자자는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 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다. 대출 금리는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연 5~15% 정도다. 중금리 대출이 부족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대부업 30% 고금리 대출로 빠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당찬 사업을 시작한 이 대표는 올해 서른넷이다. 100일도 안 된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서비스를 시작했을 당시 이미 배 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그만큼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한 카페에서 이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은행 대출은 대기업, 전문직만 통과... 탈락자에게 중금리 제공이 목표" 우선 기존 금융회사와 차별성이 궁금했다. 금리는 낮더라도 은행처럼 진입장벽이 높다면,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8퍼센트의 총대출금액은 30억 원(지난 7월 25일 기준) 정도다. 대출 건수 73건 가운데 개인 대출이 61건을 차지한다. 이들에게 대출해준 평균 금리는 연 9.37%. 8퍼센트는 신용등급 1~6등급의 개인에게 3000만 원까지 대출한다.
이 대표는 8퍼센트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대출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은행 대출에선 탈락하지만 상환 능력이 '괜찮은' 사람들에게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는 것이다.
"저도 다녀봐서 아는데, 은행은 개인 신용 평가를 할 때 각종 보증서를 끼고 자기들 위험 부담을 피하는 것만 신경 써요. 그러다 보니 대기업, 전문직 등 일부만 이용할 수 있죠. 은행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제 2, 3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들 가운데 저금리로 돈을 빌릴 자격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신용 6등급 대출자가 가장 많아... 중도상환수수료 없는 게 장점" 8퍼센트 개인 대출자 가운데 신용등급이 6등급인 사람이 60%로 가장 많다. 그다음으로 1등급, 5등급 순이다. 6등급이 많다는 것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들이 P2P 업체로 흡수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달 7일 '국내 중금리 대출 시장 현황 및 향후 발전방안' 보고서에서 5, 6등급의 중간 신용계층 1216만 명이 금리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신용등급에 적당한 중금리 대출을 이용하지 못한 채 연 20%가 넘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일단 간편하고 대출 기록이 남지 않아 바로 상환할 목적으로 돈을 빌리는 1등급도 꽤 된다"면서 "기존 금융기관과 달리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출 심사도 은행과 다르다. 은행이 해오던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을 벗어났다. 우선 신용정보회사에서 일차적인 금융정보를 받는다. 그러나 담보나 기존 대출 내역, 연체 정보뿐 아니라 추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분석한다.
제출한 데이터와 SNS 정보가 불일치하면 심사에서 탈락한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출 신청자들의 동의를 받고 페이스북 아이디, 이메일 아이디로 신청자의 진위성 여부나 사기를 감별한다"며 "SNS 기반의 자료들을 모으고 있고 앞으로 '모델링'할 계획도 있다"라고 밝혔다.
벤처기업 쏘카에 13억 원 대출 성공... "금융도 축제"
8퍼센트는 개인뿐 아니라 법인 대출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기업들에 대출해줄 투자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8퍼센트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투자자를 모아 자동차 공유 서비스 벤처기업인 '쏘카(SOCAR)'에 13억 원을 대출해줘 화제가 됐다. 국내 P2P 대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8퍼센트는 지난달 3일 대출금리 연 4.5%, 상환 기간 12개월(원리금 균등상환) 조건으로 쏘카 대출 상품을 내놨다. 출시하자마자 4시간 만에 3억 원이 모일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무공간 임대 스타트업 회사인 '패스트파이브' 대출도 주선했다. 지난달 1차 모집에서 목표 금액인 2억 원을 12분 만에 달성했다. 이어 이태원 경리단길의 수제 맥줏집 '더부쓰', 여의도의 맥줏집 '한국맥주거래소' 같은 소상공인 대출도 진행했는데 홍보 효과도 컸다.
"쏘카 대표가 먼저 연락이 왔어요. 들어보니 주차장에서 노는 차를 여러 명이 공유하는 '카셰어링' 취지가 좋았어요. 우리나 쏘카나 '공유경제' 모델이에요. 저는 8퍼센트가 금융업의 '에어비앤비'(다른 사람에게 빈집 빌려주는 숙박공유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자체 자금 없이 플랫폼만으로 대출자와 투자자를 연결해주니까요." 이 대표는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을 언급하면서 "재밌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재차 되물었다. 은행이었으면 대출을 안 해줬을 만한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받고 마케팅 효과까지 얻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금융은 원래 '펀(Fun)'할 수 있어요. 축제일 수 있는 거죠. 투자자 모집을 오픈하는 시간에 땡 하면 고객들이 들어와요. 마치 (공연) 티켓 오픈하는 것처럼요. 투자자도 대출자도 모두 재밌어해요. 또 투자자들은 (투자한 가게가) 내 가게라는 주인의식도 생긴다고 해요. 자금 조달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여러 명이 소액씩 모아 관계를 맺어주는 것도 의미 있고요." P2P라도 대출은 대출이다. 대출자의 부도나 연체 걱정은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아직은 부도율, 연체율이 0%다. 은행과 달리 P2P 업체는 충당금과 지급준비금을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즉, 대출자가 만기에 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이는 곧바로 투자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펀드나 주식 투자의 경우 원리금 손실이 가능한데 잘 모르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우리도 이같은 '불완전판매'를 없애려고 기업들의 모든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답했다.
"우린 '고금리' 아닌데... 관련 규제 없어 '대부업자' 취급"이 대표는 '직관적으로' P2P 대출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리은행에서 8년간 일하면서 은행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를 알기에 답도 간단했다.
"지난해 4월 은행에 사표를 냈어요. 은행에서는 아이디어보다는 타성에 젖어 살았어요. 특정 상품을 팔아야 퇴근할 수 있으니까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이 아닌데도 억지로 권해야 하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였어요. 고객과 회사 그리고 직원이 모두 '윈윈'(win-win, 서로 도움이 되는)하는 금융회사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출범한 지 1년도 채 안 된 8퍼센트가 탄탄대로만 걸은 건 아니다. 지난 2월 8퍼센트가 '불법 사이트'란 이유로 한 달 정도 폐쇄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대부업 등록을 앞두고 수수료를 받지 않는 베타 서비스를 진행했는데, 금융당국이 이를 불법으로 본 것이다.
현재 8퍼센트와 같은 P2P 대출 사업자는 늘고 있지만 관련 법이 따로 없어서 '대부업'으로 등록해야 한다. 따라서 대부업체와 똑같은 광고 규제를 받고 '고금리 대부업자' 이미지도 감수해야 한다. 이 대표는 "당시 금융당국이 (사이트 폐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해가 갔다"면서도 "P2P 대출 사업자를 위한 규제는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금융 규제는 금융업은 'A, B, C, D만 하라'는 식이에요. 난 E인데도 선택할 게 대부업밖에 없는 거죠. 미국은 반대로 'A, B, C, D만 빼고 다 할 수 있어'예요. 우린 대부업보다 훨씬 금리가 낮은데 똑같은 업자로 분류되고 있어 답답해요. 규제를 없애 달라는 게 아니에요. P2P 대출에 맞는 적정한 규제를 빨리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