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위치한 시흥ABC행복학습타운에 130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은 총 23개의 팀으로 나뉘어, 각각 시흥시의 다양한 지역 현안들에 대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시흥ABC행복학습타운, 월곶동, 오이도, 정왕동 등 시흥 지역 곳곳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나왔다. 27일부터 31일까지 5일 내내 대학생들이 직접 도시 곳곳을 탐방하며 아이디어를 검색하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다.
단순업무 아르바이트에서 청년을 위한 교육과 참여의 장으로
행사에 참여한 130여 명의 대학생들은 시흥시의 하계 대학생아르바이트 사업에 참여한 '알바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시흥시에서는 많은 대학생들에게 직장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예산을 확보하여 2007년부터 매년 여름과 겨울에 대학생아르바이트 사업을 시행해 왔다.
이번 여름, 시흥시의 대학생아르바이트 사업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일선 현장 업무 및 행정 사무보조 등 상대적으로 사소한 업무에 투입했던 것의 한계를 인식하고, 조금 더 실질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있는 짧은 인턴십 과정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운영된 '5일간의 프로젝트'는 그 변화의 중심이다. 행정부서의 단순 업무 지원에서 벗어나, 아르바이트에 참여한 청년들이 스스로의 관점으로 지역의 문제, 시정의 고민을 살펴보고 직접 대안을 찾아볼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한국갭이어 안시준 대표, 모티브하우스 서동효 대표, 청년마을연구소 임새벽 대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로 구성된 시흥시 정책기획단 블루그룹 위원들과 시흥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그룹인 '시흥청년아티스트'가 교육프로그램 설계와 교육 진행, 멘토링 등을 맡았다.
행사를 준비한 '시흥청년아티스트'의 김광수(21) 공동대표는 "5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청년들이 얼마나 시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많은 친구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고 시흥 청년들도 시정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삶이 팍팍하고 지친, 여유가 없는 청년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계 대학생아르바이트 사업에 '5일간의 프로젝트'를 도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시흥시청 정책기획단의 조은주 사무국장은 이 프로젝트가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성장을 도모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사업의 대상자에 머물지 않고, 청년들이 시흥시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시정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 청년들이 떠나버린 지역을 넘어서'5일간의 프로젝트'는 청년의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년과 지역사회의 접점을 고민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조은주 사무국장은 "이 프로젝트가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청년이 가진 의미와 역할, 앞으로의 지향점 등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 시작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흥시의 경우 관내 대학이 한국산업기술대학교와 경기과학기술대학교 외에 없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많은 청년들이 시흥을 떠나게 된다. 아예 시흥 바깥으로 거주지를 옮기거나, 주거는 시흥에서 하더라도 주 생활 반경이 대학 주변 도시인 경우가 많다. 시흥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청년들도 시흥시민으로서의 시흥 현안에 대한 관심은 갖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이렇게 지역과 청년들이 분리되는 현상은 지역 문제와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다. 시흥시와 같은 수도권 주변부 도시의 경우 끊임없는 청년들의 외부로의 유출이 고민이다. 시민의 편의를 위해 전철을 비롯한 대중교통 확충을 통해 서울이나 경기도 다른 지역과의 교통 접근성 제고를 추진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미래인 청년들이 도시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청년들은 거주지에서도, 일과 배움의 터전이 되는 주 생활반경에서도 행정 참여의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어느 지역에도 소속감을 갖지 못하고 떠돌면서 눈앞의 먹고 살 궁리에 압도당한다. 과도한 서울, 수도권 중심 사회에서 기회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주변부 청년들과 지방자치제도는 서로 엇갈리면서 표류한다.
일하며, 배우며, 지역을 고민하는 청년들
시흥시의 대학생아르바이트 사업과 '5일간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생들 대부분도 자신이 사는 지역 시흥과 심리적 거리가 먼 청년들이었다. 대다수 대학생들의 주소지와 거주지는 시흥시 어느 곳이었지만, 삶의 터전이 되는 대학은 시흥이 아닌 전국 곳곳에 퍼져 있었다. 나고 자란 시흥이라는 지역과 지역 문제, 지역 시정에 관심이 있을 터가 없었다.
김승헌(23), 이혜원(18), 임예지(18), 장수린(20), 조수현(22)씨로 구성된 청일점 조는 이번 '5일간의 프로젝트' 정책 제안 발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들도 시흥이 주소지이지만, 모두 각기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시흥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5일간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해 고민한 결과로, 오이도를 20대 커플들을 위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홍보하는 아이디어를 시흥시에 제안했다. 임예지(18)씨는 "이 기회를 통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 시흥의 문제점과 가진 점이 무엇인지 자세히 생각하게 되고, 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 같아서 좋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들을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대야, 신천, 정왕동, 월곶동, 오이도 등 시흥시 곳곳을 누비며, 지역과 청년의 문제를 고민하고 23개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 파일로 정리해 시흥시에 제안했다. 대야동의 시흥ABC행복학습타운을 청년들을 위한 코워킹스페이스로 만들기,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공업 지역인 정왕동에서 문화간 교류와 환경 개선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한 '에코데이 축제' 개최하기, 시흥시의 중고등학생 자원봉사에 대한 개선 방안 등 다양한 제안들이 31일 발표되었다.
월곶동 마린월드를 달물결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하는 아이디어를 내 우수상을 받은 달물결 조의 이원진(23)씨는 3년 전에도 시흥시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는 5일간의 프로젝트를 마친 소감으로 "우리 20대가 만들어낸 정책이 시에 직접 가서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며, "시가 대학생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시 현안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년 문제와 지역 문제, 또한 서울 과밀화와 지역 공동화라는 현상들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아마도 포기하기보다는 작은 시도와 작은 변화들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일 테다. 시흥시와 시흥청년아티스트는 8월 8일 시흥ABC행복학습타운 으뜸관에서 개최되는 '팔팔한 청년들의 도시재생 포럼' 행사를 통해 지역과 청년 사이를 잇고 청년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고함20(http://goham20.com)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