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맞아? 아무래도 단체로 물놀이 온 거 같은데' '청평호반 수상스포츠 꿈의 학교(아래 수상스포츠 꿈의 학교)' 첫인상이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열중이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 몇몇이 마치 제집 안방인 양 편안하게 강물에 드러누워 물장구를 치고 있다. 물 위를 지나는 바람은 차갑기까지 했다. 여름 태양이 검푸른 강물에 치여 힘을 잃은 듯했다.
이 학교는 지난 7월 11일 가평 관내 중학생 20명을 모집해서 문을 열었다. 수상스키와 카누를 가르친다. 오는 8월 29일∼30일, 1박 2일 캠프를 끝으로 활동을 마치고 1기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지난 10일 오전 이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지만 교실이나 책상 칠판 따위는 없었다. 모터보트가 들어오는 작은 나루터와 물결 넘실대는 드넓은 북한강이 교실이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나루터 앞은 알고 보니 수상 스키 훈련장이었다.
검게 탄 얼굴과 팔뚝, 그보다 더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정형배 교장이 나루터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정 교장은 청평 중학교 교감이기도 하다. 어째서 공교육을 책임지는 현직 교감이 학교 밖 학교인 꿈의 학교 교장을 맡은 것일까. 이것을 물으려 할 때 갑자기 아이들 환호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모터보트가 아이들이 있는 나루터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긴 줄을 잡고 모터보트 꽁무니에 매달려오던 아이가 줄을 놓고 강물에 유유히 빠져드는 모습에 환호를 보낸 것이다. 수상스키다. 이렇게 해야 멋진 마무리다. 나중에 보니 적당한 순간에 줄을 놓지 못한 아이는 엎어져 배에 끌려가다가 물에 빠졌다.
"돈 많은 외지인만 수상스포츠 즐기는 게 안타까워서..."
"보트 타고 강 건너 카누 훈련장에 가 보실래요?" 좋다고 하자 정 교장은 대뜸 모터보트 시동을 걸었다. 이렇게 해서 선상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나서 자랐고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저 아이 중엔 제가 가르친 제자 자식도 있고, 동네 후배 자식도 있습니다. 이곳, 정말 수상 스포츠 하기 좋은 곳인데, 돈 많은 외지 사람만 와서 즐기지 정작 우리 아이들은 못합니다. 워낙 비싸니까요. 그게 안타깝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꿈과 도전 정신도 심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선 거죠. (수상 스포츠 꿈의 학교의) 가장 큰 목표는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지만, 이 중에서 나중에 수상스포츠 선수나 수상 스포츠를 직업으로 하는 아이가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그래서 후배 체육교사들과 함께 꿈의 학교에 도전하게 된 것이고, 지역 주민들 도움을 받아서 문을 연 겁니다. 그동안 제가 길러낸 수상스포츠 선수가 꽤 됩니다. 십 년 넘게 수상스포츠를 가르쳤거든요." 정 교장 말이 끝날 즈음 카누 훈련장에 도착했다. 구명보트를 입은 아이들 몇몇이 물 위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고무로 만든 연습용 카누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훈련이라기보다는 물놀이에 가까워 보였다. 아이들 얼굴에서도 훈련이 주는 긴장감은 엿볼 수 없었다.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든 학교라는 게 특징
알고 보니 이 학교는 공교육을 주도하는 교육장을 비롯한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든 학교였다. 마을 주민이나 특정 분야 전문가, 즉 공교육 밖에 있는 이들이 주도해서 만든 대부분 꿈의 학교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날 황중원 가평 교육지원청 교육장도 아이들 수업을 참관했다. 황 교육장은 "물가에 아이들을 내놓는 것이라 좀 걱정은 되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다"며 "안전수칙만 잘 지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추진했다"라고 말했다.
황 교육장과 정 교장 모두 "내년엔 경기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상 스포츠 꿈의 학교를 운영하는 게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강사도 수상스키 국가대표를 지낸 진건오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지역 체육교사들이다. 학생들 지도를 위해 체육교사들은 미리 보트 조종면허와 심폐소생 자격증을 땄고, 수상안전연수도 받았다.
강사 중에도 정 교장처럼 수상스포츠 꿈의 학교를 간절히 원한 이가 있었다. 김태곤 청평 중학교 교사다.
"재작년 여름방학 때 카누협회 같은 데 도움받아서 5일간 하루 4시간씩 아이들 모아서 (수상스포츠 학교를) 운영해 봤어요. 그게 비용· 강사 문제 등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그 뒤 언제 다시 이런 거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경기도교육청에서 추진한) 꿈의 학교가 날개를 달아 준거죠.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해서 수상 스포츠 학교 한번 해보자고 교육장님이 결정해 줘서 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김 교사의 바람은 아이들이 물과 친해지는 것이다. 특히 물에 대한 안전 지식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 참 물이 많아요. 이 때문에 물과 친해지는 것은 물론 수상 안전교육도 꼭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이번에 배운 것을 친구들한테도 알려 줬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수상스포츠를) 직업으로 삼아도 좋고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수상스포츠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책 보고 배우는 게 아니고 직접 와서 체험한 것이기에 나중에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 보고요." 노트 필기와 시험은 없고 재미만 가득
"노트에 필기하고 시험을 쳐서 점수를 잘 받는 방식이 아닌, 학생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자극하고, 도전하게 하는 게 좋은 교육이다." 덴마크 교육의 선구자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가 남긴 말이다.
'수상스포츠 꿈의 학교'가 이 말에 딱 맞는 학교다. 노트 필기와 시험은 없고, 대신 재미만 가득하니 말이다. 거기에 수없이 엎어져 물을 먹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게 하는 '마력'도 갖고 있다. 학교를 세운 목적이 '도전과 성취 배우기'니 그룬트비가 말한 좋은 학교라 할만하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는 학교는 아니다. 꿈의 학교 신조(motto)인 학생 스스로 정신과 온 마을이 나서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마을교육공동체 정신'이 바탕에 깔렸다. 거기에 마을,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자는 지역·환경 사랑 정신도 녹아있다.
이를 위해 '수상스포츠 꿈의 학교'는 학생자치회를 꾸려, 운영계획은 물론 활동규정까지 학생들이 스스로 짜게 했다. 주민과 체육교사로 이루어진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학생들의 안전한 수상활동을 지원한다. '문학 속의 북한강', '문학 속에 등장하는 북한강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지역·환경 사랑 교육도 빠뜨리지 않은 것이다.
이 학교 목표가 '재미'라면 일단 성공한 셈이다. 한 학생은 "처음엔 물에 잘 뜨지 못해 물먹고, 수상스키 탈 때 (스키 위에) 서지 못해 힘들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서게 됐고, 수상스키 타면 막 날아다니는 것 같아서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재미있다고 해서 왔는데, 진짜 재밌다. 카누 선수 되고 싶었는데 여기 와서 더 하고 싶어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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