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팀장님은 나더러 좀 남아 있으라고 말했다. 퇴근 시간쯤이었다. 나는 이미 그날 일을 다 끝내놨기에 퇴근을 한 후 뭘 하고 놀까 손을 꿰고 있었지만, 할 수 없이 손을 풀고 팀장님의 말대로 잠자코 남아 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다. 팀장님과 서브팀장님은 물론 영문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같이 저녁을 먹고 나는 또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12시가 넘어도 나는 계속 기다려야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왜 기다려야 하는지 팀장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팀장님은 별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듯 설명해 주었다. 유럽 법인에서 뭘 좀 받을 건데 그걸 받으면 내가 사내 사이트에 좀 업로드를 하라는 거였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유럽 법인에서 정말 뭐가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뭐를 함께 테스트했다. 이제는 내가 업로드 할 일만 남았다. 업로드는 한 10분 정도 예상되는 일이었다. 팀장님과 서브팀장님은 내게 일을 잘 마무리하라고 지시하곤 먼저 회사를 떠났다. 나는 일을 잘 마무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결국 잘 마무리했다. 그제야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세시였다. 그 날 나는 텅 빈 사무실에서 엎드려 자다가 첫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씻고 다시 출근했다.
다음 날 다른 팀에 있는 동기에게 내가 눈이 왜 이렇게 빨간지를 설명해주며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 일 없이 9시간을 기다려 10분을 일하고 퇴근한 후 바로 출근하는 게 맞는 일이냐며 괜히 동기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동기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네가 군대만 갔다 왔으면 이 정돈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될 텐데."군대? 군대를 갔다 오면 왜 이 정돈 문제가 아닌 게 되는 건지 나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차차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의 기업 문화란 그런 거였다. 까라면 까고, 대신 토는 달지 않는 것!
프랑스인이 본 한국기업 이미지? '무식한 농부, 경직된 군인'
아마 <한국인은 미쳤다>를 쓴 에리크 쉬르데주는 내가 느낀 놀라움과 절망을 10배는 넘는 강도로 느꼈을 것이다. 나는 어찌 됐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문화의 맛을 좀 본 사람이었지만, 프랑스인인 그는 이런 문화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경험한 적은 없었을 터였다.
아마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 이런 식으로 반응할지도 모른다. '에이, 뭐 이렇게까지 할라구.'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이 프랑스인이 일한 바로 그 엘지전자에서 7년이나 일을 하고 나왔는데도 '에이, 이건 좀 심했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됐다. 나의 이런 반응은 아마 낯부끄러움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성공과 성장만 외치다가 인간적인 많은 것들은 놓친, 그래서 너무나 코믹하게마저 느껴지는 지금 우리 기업환경의 민낯을 외국인에게 고스란히 들켜버린 데서 오는 낯부끄러움이었다.
저자가 엘지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일하기 전 풍문으로 들은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이러했다. '무식한 농부, 경직된 군인'. 저자는 그래도 한국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사 엘지전자에 이력서를 냈다. 그리고 채용됐다. 이후 10년을 일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였다. 2006년에는 외국인 최초로 상무로 승진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일하고 떠나면서 저자가 느낀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10년 전 풍문으로 들은 그것과 같았다. '무식한 농부, 경직된 군인'. 어느 한 기업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기상천외'했다고 기억하는 그의 과격한 소회는 그가 겪은 경험들을 들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에서 부사장이 온다고 큰 비용을 들여 프랑스 지역 대형 매장 디스플레이를 딱 하루만 엘지 제품으로 도배해놨다가 다음 날 다시 원위치 시켰던 이야기, 부사장 사진을 찍었다고 하루아침에 잘리게 된 한국인 간부를 보호하려 자신의 자리까지 걸며 말리려 애를 썼던 이야기, 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져 궤양 수술을 받은 직원을 찾아와 "언제 복귀할 수 있느냐"고 물은 어느 직원에 대한 이야기, 14시간을 일해도 찍소리 하나 못하는 한국인 직원들 이야기, 되레 프랑스 직원을 게으르다며 괴롭히는 이야기, 이미 잘 나가는 기업이 됐는데도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찼던 회사 내부의 공기, 효율과 팩트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버려지는 기업 풍토, 오로지 성공만을 보던 한국 기업, 그 속에서 눈치를 보며 내쳐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들 털어 넣으면서도 정작 본인의 발전엔 시간을 쓰지 못하던 한국인 직원들. 이것이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한국 기업과 그 속에서 살아내던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저자는 인정했다. 변방의 작은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국 기업이 보여준 그 놀라운 여정의 대단함을. 명확한 목표 의식과 강력한 추진력이 없었다면 분명 그 여정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나버렸을지도 모른다. 극단의 효율성, 모든 걸 일일이 통제하는 세심함,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에너지와 의지를 끌어내는 한국 기업의 능력은 분명 단연 세계 최고인 것은 맞다.
직원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한국기업
하지만 저자는 기업가가 해야 할 프로젝트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기업의 수익. 둘은 소비자의 만족. 셋은 직원의 미래. 한국 기업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것은 이루어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직원의 미래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국 기업의 업무 방식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너무 소모적이었고, 사실 기업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한계를 매일 경신하며 달려왔기 때문임에도 직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
하루 10시간 근무,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 경직된 명령 체제, 불안정한 고용은 기업이 시장지분을 넓히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노동자의 가정생활을 좀먹고 가치 있는 삶의 즐거움을 놓치게 한다. - 본문 중에서 저자 또한 상무와 법인장을 겸직한 2년 동안 단 5일만을 휴가로 썼을 뿐이며, 주 6일제에, 일요일에도 격주로 일했다. 그전과 후에도 한국 기업 문화에 적절히 적응해가며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해 '반 한국인'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해를 거듭해 일할수록 저자의 초심은 사라졌다. 자신의 창의적인 마케팅 수법을 최대한 활용해 다각적인 면에서 엘지전자의 브랜드 파워와 위상을 높여보려던 저자의 계획은 상사의 'no(노)' 사인 하나로 간단히 무시되곤 했다. 한국 기업에서 위계질서는 모든 것을 앞섰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말이라도 상사가 'yes(예스)'하면 그것은 말이 되는 말로 둔갑했다.
결국 저자는 비로소 왜 한국인 직원들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고 나머진 나 몰라라 하며, 자신의 목소리는 전혀 내지 않는 무책임한 직원이 돼버린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제거하고 기계처럼 일하던 한국인들을 보며 얼마나 놀라워하던 저자인가. 하지만 저자 본인도 그 길에 합류하기로 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하는 것보다 내 경력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계속해서 똑같은 장애물에 부딪히다 보면 닳게 마련이다. 나는 순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 본문 중에서 순교자 되기를 포기했던 저자는 회사에서 2012년에 쫓겨났다. 2010년 새 부회장 체제가 들어서며 엘지 전자는 갑자기 전통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기업 기조를 과거로 돌려 버렸다. 당시 '400 클럽'이라 불리던 최상위 임원들 중 외국인은 17명. 새 부회장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단칼에 쓸어냈다. 그나마 저자는 마지막까지 버틴 외국인 임원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새 부회장 체제 아래 엘지전자는 큰 시련을 맞게 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엘지전자가 얼마나 고전을 면치 못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엘지전자가 처한 상황을 저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누구도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한 민족도 그렇고 개개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역사는 자유가 발 디딜 틈 없이 엄격하게 서열화된 군대식 규율 속에서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이 사무실에 틀어박혀 내놓은 예측과는 딴판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파악하지 못해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의 약점은 외부에 대한 관찰보다 내부의 효율성을 더 신뢰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엘지가 스마트폰으로의 대전환을 얼마나 참혹하게 놓쳤는지 기억하고 있다. 확신에 찬 나머지 엘지는 이동전화라는 불안정한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그런데, 이 무슨 타이밍의 장난이란 말인가. 이 책이 나온 올해 역시 엘지전자는 다시 한 번 고전 중이다. 지난 2분기 엘지전자의 영업이익은 지난 해에 비해 60%가 감소했고, 휴대폰 사업부의 영업 이익은 2억 원에 그쳤다. 지금 내부에서는 어떤 말이 오가고 있을까. 혹시 여전히 직원들의 한계를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만 모든 전략이 집중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도 내부의 효율성만을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몇 년 전에 엘지전자를 그만뒀지만 아직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들은 많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의 걱정은 두 개로 요약된다. 하나는, 10년을 일했는데도 본인에겐 남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회사 일을 열심히 했으면 자기 발전도 따라 와야 하는데 그게 안 돼 허무하다고 친구들은 말한다. 둘은, 미래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여기서 버티면 남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는 것이다. 친구들은 보통 50이 되기 전에는 회사를 나가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가선 뭘 하지?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가장 길게 일을 하는 나라 2위이지만, 그 생산성은 유럽 국가들의 절반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렇게 오래 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 효율성 때문일 테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의 성공은 제품 생산 프로세스에 적용됐던 극단의 효율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직원들의 삶은 언제나 비효율의 극단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자아실현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이런 방식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는 하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한국인이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지 않고" 하루에 12~14시간을 일해도 "오히려 거기에서 진짜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은 미쳤다!'고 외친 것이다. 우리의 순응하는 모습이 그에겐 그렇게 비쳤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그런 생활이 정말 즐거울까. 우리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자아실현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고, 특히 젊은 층에선 더욱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에 맞춰 기업도 조금씩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다. 너무 더뎌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상, 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무식한 농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 편이다. 우리더러 계속 미친 채 살라는 거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인은 미쳤다><에리크 쉬르데주/북하우스/2015년 07월 24일/1만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