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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된 지 70년 되는 해다. 정부는 이를 경축한다며 8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한편, 대대적인 축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런저런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전 국민이 여행도 다녀오시라고 14일에 한해 전국 모든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겠다고 하고, 또 사상 최대의 특별 사면도 단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을 진짜 아는 사람이라면 처연한 민망함을 금할 수 없다. 바로 민족을 배반한 자들에 대한 미완의 처벌과, 민족을 위해 싸워온 독립운동가를 대하는 이 나라 보훈 정책 문제다.

외세에 의해 지배를 받은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점령 당한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이다. 이들 나라 중 민족을 배반한 자들을 처벌하는 데 모범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100만 명 체포, 10만 명 처벌

 샤를 드골 장군
샤를 드골 장군 ⓒ wikipedia

프랑스는 1940년 독일 나치에 점령 당한다. 그러다가 1944년 8월 프랑스 수도인 파리가 탈환되면서 나치의 지배가 종식됐다. 4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프랑스 임시정부 지도자였던 샤를 드골 장군은 대통령 취임 후 훈령을 내려 나치 치하에서 부역한 자들을 체포해 처벌에 나선다.

가장 혹독한 처벌을 받은 곳은 언론사와 기자, 그리고 문학 작가들이었다. 나치 치하에서 15일 이상 신문을 발행한 언론사는 모두 부역으로 인정해 발행을 금지하고 그 재산은 국유화했다. 또한 그 언론사의 기자는 직을 박탈한 후 언론계에서 영구 퇴출했다. 국민의 건강한 저항 정신을 병들게 한 주범으로 보고 가중 처벌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부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치 체제 하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자는 기본이고 공무원으로 일한 자 역시 전부 체포되었다. 또한 민간인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치에 부역한 자들도 체포되었다. 그렇게 체포된 프랑스 국민은 약 100만여 명. 최종적으로 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은 10만 여명을 넘어가고 있다. 그들 중에는 6763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나치 부역자에 대한 프랑스의 처벌은 끝이 없다. 공소시효도 없다. 나치 부역 사실이 드러나면 언제든 처벌하고 있고 그러한 노력은 오늘도 뜨겁다. 나치에 부역하면서 민족을 배신한 자들을 처벌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프랑스 대통령 드골의 입장은, 그래서 단호했다.

"부역자 처벌을 통해,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는다 하더라도 또다시 프랑스를 배신하는 국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드골 대통령은 민족 반역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한편 또 다른 일도 했다. 바로 나치 체제 하에서 저항했던 레지스탕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이었다. 우리나라가 2015년 현재 연간 4조4000억 원 정도를 보훈 예산으로 책정하는 데 반해 프랑스는 2004년 당시 연간 63조 원의 예산으로 레지스탕스 유공자 450만여 명에게 보훈 혜택을 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들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보훈 혜택은 '돈'만이 그 중심이 아니다. 이제는 늙은 레지스탕스 출신 유공자들을 모시는 양로원과 보훈병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여러 시스템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혜택은 그 유족에게도 부족함이 없다.

보훈 연금뿐만 아니라 유족 전원에게 기업체의 의무 고용 규정을 적용해 취업을 보장한다고 한다. 이러한 지원과 함께 더 경이로운 것은 실제로 전 사회가 이들 레지스탕스를 존경하도록 하는 기념 사업이다. 프랑스 파리의 주요 도로와 거리, 공원 등에는 '레지스탕스 요원'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이 레스스탕스 출신 유공자를 존경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해도 국민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1005명 : 이게 정말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전부일까

서울시청 외벽에 서명문 태극기 든 김구 선생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외벽에 태극기를 든 김구 선생의 사진이 걸려있다.
서울시청 외벽에 서명문 태극기 든 김구 선생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외벽에 태극기를 든 김구 선생의 사진이 걸려있다. ⓒ 유성호

반면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기간은 무려 36년이다. 프랑스의 4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길고 긴 기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민족을 배반한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한 사례는 모두 얼마나 될까. 아니,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부끄럽게도 '단 한 명도' 없다. 1949년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결국 '악질 친일파'로 체포되었던 자들은 모두 무사히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이 나라 민족 정기 수준이다.

그러다가 지난 노무현 정부 출범 후 2005년 만들어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반민특위 해체로 중단된 친일파들의 처벌을 위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친일파들의 이름만이라도 후세의 교훈으로 남기자는 노력 끝에 모두 1005명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전부일까.

프랑스는 나치 지배 기간 4년 동안 무려 10만 명을 나치 부역의 죄로 처벌했다. 과연 우리나라는 일제 36년 치하 고작 1000명 남짓만 민족을 배반했을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민족처럼 '위대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기에 더욱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왜 고작 1005명만 기록으로 남았을까. 부끄러운 일은 이 1000명 남짓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을 남기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청난 저항과 반발이 이어졌다.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는 이 나라 현실에서 자기 조상의 친일 행적을 감추려는 저항이었다.

더구나 내가 4년간 조사관으로 일한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 행위를 대가로 취득한 친일 재산을 국가 귀속한 친일파 숫자를 밝히면 더욱 부끄럽다. 그 숫자, 168명이었다. 이게 이 나라의 오늘날 민족 정기 수준이다. 이 법안 제정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수정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처럼 미약한 조사 권한으로 남게 된 것이다.

황당한 주장 : 생계형 친일? 일제시대에 살아남은 것도 친일?

그런데 이 초라한 단죄마저도 '너무 과격하다'며 비판하는 세력이 있다. '생계형 친일' 운운하면서 "이런 식이라면 일제 시대에 살아남은 것도 친일파라고 처벌하는 것"이라며 터무니없는 공격을 한다. 어처구니 없는 반발이고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데도 '광복 70년'을 이벤트로 넘어가려 하는가. 비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이유다.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말했다.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민족 반역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을 단합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이 분열되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그 이유, 바로 샤를 드골 대통령의 명언에서 찾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서, 독립운동가를 위한 제대로 된 예우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서 어찌 국민이 단합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요구한다. 친일파를 청산하라.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한없이 예우하라. 그래야 진짜 광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나는 소리 높여 외친다. 광복 70년, 친일파를 청산하라.

○ 편집ㅣ조혜지 기자



#친일파 청산#광복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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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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