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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여름> 표지
<그해 여름> 표지 ⓒ 이숲
일 년 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심신을 편히 쉬게 하기 위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매년 새로운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익숙한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다. 익숙한 곳이란 다름 없는 '고향'. 하늘 맑고 물 좋은 그곳으로 가는 건 심신을 쉬게 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

나 또한 어릴 때면 온 가족이 모여 그곳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할아버지·할머니, 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의 산소가 있는 강원도 평창으로. 언제나 먼저 할아버지 내외, 증조할아버지 내외 분께 인사를 드리고 휴가를 즐겼다. 나에게 그때 그 시절들은 완벽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없이 편안한 공간, 그곳에서의 여름

<그해 여름>(이숲)은 그 시절의 완벽한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로즈는 가족과 함께 매년 여름 아와고 비치(미국 온타리오 주에 있는 해변 휴양지 와사가 비치)를 찾는다. 그곳은 로즈가 태어난 곳 근처다. 로즈의 아빠는 이와고가 나무에서 맥주가 주렁주렁 열리고 사람들이 대낮까지 실컷 자는 동네라고 하고, 엄마는 이와고에 오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함께 살던 오두막집이 생각난다고 한다. 그곳은 그런 공간이다. 한없이 편안한 공간.

로즈에게는 매년 여름마다 만나는 친구 윈디가 있다. 로즈가 다섯 살 때부터 매년 여름이면 만나는 오두막집 친구로, 로즈보다 한 살 정도 어리다. 그들은 십 년 동안 그곳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며 좋은 추억들을 쌓아 왔다. 그 좋은 추억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곤 했다. 그러다가 그해 여름이 왔다. 어김없이 찾아온, 매년 여름과 다를 바 없는 여름이었지만 그해 만큼은 달랐다.

그들은 열다섯 인만큼 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섹스에 대해서도 조금은 안다. 관심도 있고. 다만 두렵다. 그렇지만 누굴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로즈는 이와고에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가게인 브루스터 종업원 던크를 좋아하게 된다. 던크가 로즈에게 던진 한 마디 '어, 거기 금발도 또 보자'. 얼굴이 빨개지는 로즈.

한편 로즈의 아빠와 엄마 사이가 심상치 않다. 편안하게 지내려고 온 휴가에서도 그들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2년 전 엄마는 둘째를 낳고 싶어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일로 냉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로 만이라고 보기엔 뭔가 이상하다. 엄마는 아빠의 스킨십에도 너무 심하게 긴장을 하는 듯 보이고, 아빠는 엄마의 한 마디로 갑자기 화가 나곤 했다. 그리고 툭하면 이혼 얘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느끼고 있는 로즈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곤 하지만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실제로 다가오는 압박이. 그럴 때면 엄마는 잔소리만 할 뿐이고, 아빠는 과장된 유쾌함으로 로즈를 불러내 해명 비슷한 말로 안심 시키려 한다. 하지만 로즈는 다 알고 있다.

로즈가 좋아하는 던크, 로즈의 가족인 엄마와 아빠, 그들은 모두 그해 여름 로즈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모든 걸 함께한 친구 윈디 만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뿐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던크에겐 여자가 있었고, 엄마와 아빠에겐 그들만이 간직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

로즈의 사랑이, 로즈의 갈등이, 로즈의 우정이 곧 나의 사랑과 갈등과 우정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아픈 사랑은 오롯이 친구 윈디하고만 견뎌내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어느 누구도 내 사랑을 대신 해주지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그 사랑에 질투를 느끼지 않고 방해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녀의 가족과의 갈등은 그녀가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아픔이다. 열다섯에 불과한 그녀에게 닥친 최대의 시련이다. 단순한 다툼을 넘어 큰 소리로 서로를 물고 할퀴는 그들의 모습에 로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냥 바라고 바랄 뿐이다. 그들이 돌아오기를. 분명한 건 그들이 돌아오려면 어떤 크나큰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윈디와 나누는 우정은 그녀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그녀의 아픈 사랑과 아픈 갈등을 언제나 함께 하며 그 아픔을 최소한 반은 가지고 간다. 윈디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이다. 그해 여름이 달랐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윈디와의 잊을 수 없는 우정 확인이었을 것이다. 아픔만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만화로 나왔다. 그림으로만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을 잘 표현해 놓아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수월했다. 그 수월함은 작품의 그 이면을 살피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건 곧 로즈의 사랑과 갈등과 우정 그 이면이었다. 그림 자체는 내 스타일이 아닌 관계로 예쁘다고 할 순 없었다. 등장 인물들이 하나 같이 못생겼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덜 성숙한 그들의 모습이 다름 아닌 우리라는 걸 느낄 수 있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극화적으로 꾸미지 않은 스토리는 더욱 오감을 사로잡는다. <그해 여름>은 분명 아픈 이야기이지만, 여름 휴가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오감을 사로잡는다는 건 그 잔잔함 속에 묻어 나는 잔인함 때문일 것인데, 그 잔인함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 (마리코 타마키 지음, 질리안 타마키 그림, 심혜영 옮김, 이숲 펴냄, 320쪽, 15000원, 2015년 7월)



그해 여름

마리코 타마키 지음, 심혜경 옮김, 질리안 타마키 그림, 이숲(2015)


#그해 여름#여름 휴가#사랑#우정#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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