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셋째 날,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넘어간다. 인터라켄은 툰과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끼어 있는 관광 도시로 알프스의 고봉 융프라우요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침 9시쯤, 루체른 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 안은 여행객들로 만원이다. 특히 중국 여행객들이 많다. 기차는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출발을 한다.
차창으로 보이는 푸른 초원에 펼쳐진 예쁜 집들과 맑은 호수들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집은 대부분 목조 주택으로 창문에는 붉은 꽃의 화분이 모두 걸려 있다. 참으로 마음이 넉넉해지는 풍경이다.
한국의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옥수수 밭도 있고 포도밭도 간간이 보인다. 기차가 정거하는 마을 역에는 대부분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11시가 넘어 인터라켄 동부 역에 도착했다. 기차로 두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숙소가 서부역 근처에 있기 때문에 기차를 갈아타고 서부역으로 갔다. 동부역과 서부역은 2km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인터라켄 도심에 있는 숙소를 찾아간다. 도로에 차도 별로 없고 높은 건물도 없다. 거리에는 시계를 파는 가게와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도시가 크지 않아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만년설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식사
숙소에 짐을 맡겨 놓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인터라켄에 있는 숙소는 오후 3시가 넘어야만 체크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짐을 프론트에 맡겨 놓을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심 거리로 나왔다. 어제 저녁에 먹은 음식이 너무 실망스러워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가 않다.
궁리 끝에 쿡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해 보기로 했다. 샌드위치도 있고 삼각 초밥도 있다. 초밥은 비린내가 좀 나고 샌드위치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만년설이 올려다 보이는 잔디 광장에서 과일과 음료를 펼쳐 놓으니 마치 소풍에서 먹는 점심 같다.
인터라켄에서는 다양한 레포츠가 가능하다.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가파른 계곡을 타고 내려가는 캐녀닝도 있다. 오후에는 인터라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하더쿨룸에 오르기로 했다.
하더쿨룸은 인터라켄 바로 앞에 있는 산으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물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갈 수도 있다. 스위스패스가 있으면 50% 할인을 받아 1만7000원 정도면 올라간다. 하더쿨룸으로 가는 산악열차를 타는 곳은 동부역 주변에 있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과 흡사하게 생겼다. 열차는 크지 않으며 약 30명 정도 탈 수가 있다. 올라가는 길이 거의 직선에 가까워 손에 땀이 날 만큼 경사가 급하다.
하더쿨룸에는 노천카페가 있고 융푸라요우흐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는 절벽에서 공중으로 길게 돌출시켜 놓았는데, 그냥 서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인터라켄의 풍경이 너무 장관이라 공포감은 금세 잊고 만다. 그 전망대에는 커다란 소 한 마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소등을 타고 알프스 산을 바라보는 재미가 그만이어서 사진 찍는 장소로 인기가 많다.
전망대에 올라 가만히 살펴보았다. 인터라켄은 마치 요새의 땅처럼 두 호수 사이에 교묘하게 위치해 있다. 알프스 산도 장막처럼 앞과 뒤를 딱 가로 막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사방이 꽉 막혀 있는 형국이다.
단지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만이 요새의 땅을 찾아가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만년설과 호수가 그려낸 인터라켄은 마치 선녀가 사는 천상의 세계 같다. 호수에서 물안개라도 피어오르게 된다면 구름을 타고 선녀가 금방 내려올 것만 같다.
인터라켄은 두 호수를 잇는 수로처럼 보이는 강이 있다. 그 강을 따라 철길이 지나간다. 동부역과 서부역으로 이어지는 철길이다. 물이 깊어 수영하는 사람은 없으나 간간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사람은 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물이 생겨나는지 강을 가득 채워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저녁이 되자 도시는 활기가 넘친다. 한국 일본 사람보다는 중국 인도 관광객을 참 많이 볼 수 있다. 노천카페도 있고 거리에 나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도 있다. 도심은 가로등이 켜지고 골목마다 여행객들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음식점은 어디를 가도 만원이다. 오늘 저녁은 또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한국 음식점은 많지는 않으나 몇 군데 있는 거 같고 중국 음식점도 있다. 당장 한국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러나 꾹 참고 스위스 전통 음식을 다시 먹어 보기로 했다.
한국음식 생각났지만, 스위스 전통 음식에 도전
골목을 몇 바퀴 돌아 사람들도 많고 분위기도 좋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동양 사람보다는 서양 사람이 많았는데 노천카페라서 마치 파티장 같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감자와 치즈가 들어간 전통 음식을 시켜보았다.
주문한 지 한참 후에 음식이 나왔다. 맛이 어떨까하고 조심스레 먹어 보았다. 맛도 고소하고 어제 저녁처럼 그렇게 짜지는 않다. 그러나 짠맛의 여운이 입안에 남아 유쾌하지가 않다. 그래도 포만감이 들 만큼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 별 수 없이 입맛도 서서히 적응이 되어 가는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도 할 겸 거리를 돌았다. 도심 한가운데에 조그만 무대가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사람들이 모여들고 박수와 함께 경쾌한 음악이 연주된다. 사람들은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한판 춤이라도 신나게 출줄 알았는데, 몸만 가볍게 흔들 뿐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두 손에는 와인 잔을 하나씩 들고 있다. 그러나 무대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눌 뿐 흥겨운 몸짓은 없다. 마치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작은 파티장에 온 분위기다. 와인 한잔을 사서 마셔 보았다. 음악 소리가 제법 흥겹다. 술과 음악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인터라켄의 밤공기는 덥지도 춥지도 않다. 산책하기에 딱 좋다. 도심은 차의 경적 소리도 없고 호객하는 상인도 없다. 가끔 손님을 태운 마차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그러나 거리 곳곳에서 관광지의 활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노천카페에 앉아 술을 마시며 여행의 피로를 푸는 사람도 있고, 거리를 돌며 도심을 탐방하는 사람들도 많다. 밤이 깊어간다. 하루 내내 눈앞에 보이던 알프스 만년설도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다. 가로등만이 거리에 남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