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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인도 코사니에서 만난 아스팔트 노동자들
북인도 코사니에서 만난 아스팔트 노동자들 ⓒ 송성영

인적이 거의 없는, 올드 코사니 깊숙한 산길을 꺾어들고 있는데 한 젊은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손에는 사진기가 들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희번뜩이는 눈빛으로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께에 걸쳐 메고 다니는 붉은 천 가방에 사진기를 집어넣었다.

그가 내 앞으로 다가올수록 내 몸은 점점 굳어져 갔다. 뭔가 방어 태세를 갖춰야 할 것만 같았지만 그럴 사이도 없이 그가 곧장 내 앞으로 걸어왔다. 내 앞으로 바싹 다가오면서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순박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그의 숨겨진 순박한 표정에 마음을 놓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라마스테..."
"라마스테!"

그가 화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힘없이 축 쳐진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잽싸게 사진기를 꺼내 연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순간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그가 슬쩍 뒤돌아보았다. 내가 사진기를 내려놓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가 슬며시 웃었다.

 도끼들고 다가온 네팔 사내의 미소
도끼들고 다가온 네팔 사내의 미소 ⓒ 송성영

그의 웃음 하나로 나는 그들에 대한 긴장을 풀고 다가갈 수 있었다. 그들은 북인도 올드 코사니에서 아스팔트를 포장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당신들을 사진기에 담고 싶다'는 몸짓으로 사진기를 꺼내들고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북인도 올드 코사니의 산골 마을 사람들은 자동차가 오가는 신작로를 중심으로 드문드문 서너 가구씩 외떨어져 살고 있다. 나는 아스팔트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매일 아침마다 조금씩 산책길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가텀씨 말로는 이 깊은 산골짜기에 아스팔트 길이 들어서고 있는 이유는 군사도로로 활용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아무튼 그 끝 지점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들에게 선뜻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가 힘든 노동일로 잔뜩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사진기를 꺼내 들고 그들의 표정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과 마주대하고 사진을 찍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들이 우르르 다가와 사진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우르르 다가와 사진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 송성영

그들과 맨 처음 가까이에서 대면했을 때였다. 저만치 언덕 위쪽으로 올라가 멀리서 작은 사진기를 꺼내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왜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느냐' 항의 하러 오는 것은 아닐까 싶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성난 표정이 아니었다. 내게 바싹 다가오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 역시 머뭇거리며 '라마스테' 인사와 함께 웃었더니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한껏 웃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사진 찍어 줄 수 있나요?"
"노프라블럼!

네팔이나 인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뜻밖이었다. 강렬한 눈빛, 순박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노동자들의 표정을 찍고 싶었지만 차마 힘들게 일하는 그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댈 용기가 나질 않았었다. 그런데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달라니 나는 횡재라도 한 듯 흥분된 마음으로 사진기를 들이댔다.

 네팔 노동자들은 열 예일곱 살에서부터 5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네팔 노동자들은 열 예일곱 살에서부터 5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하고 있었다. ⓒ 송성영

 네팔 노동자
네팔 노동자 ⓒ 송성영

한 명씩 두 명씩 세 명씩 클로즈 업 사진을 찍어 그들에게 보여줬다. 다들 너무나 좋아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던 친구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했더니 잘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입에 올리기 싫은 삼성을 끄집어 냈다.

"삼성 모바일 압니까?"
"모릅니다."

내가 만난 인도 사람들 중에서 한국은 잘 몰라도 대부분 삼성 모바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한 네팔, 그 중에서도 가난한 일당벌이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에게 모바일은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의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노프라블럼!"

 아스팔트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고 있는 천막. 저만치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가 보인다.
아스팔트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고 있는 천막. 저만치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가 보인다. ⓒ 송성영

그렇게 나는 그날 이후 매일 아침 마다 열흘 가까이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어 '라마스테' 인사를 나눠가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그들을 만났다. 올드 코사니 산골 마을의 끝자락에 천막이 있다. 천막 뒤편으로는 멀리 히말라야 설산 난다 데비가 펼쳐져 있다. 내가 천막 가까이로 다가가자 그들이 날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인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며 '나마스테' 인사를 하자 그들도 여럿이 덩달아 합장을 하며 인사를 받는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일당벌이를 못했을 것이다. 천막 안에는 여기저기 잠자리가 널려 있다. 이제 마악 천막에서 나오고 있는 수염발이 허옇게 탈색되어 가는 중년사내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해발 1900미터의 고지대, 비가 오는 날의 밤은 춥다. 어젯밤도 아주 추웠다. 나는 월세 방 침대 위에 두툼하게 이불을 깔고 잠바를 껴입은 채 침낭 안에서 자야만 했다. 그것도 추워 침낭 위에 담요까지 덮고 잤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냥 맨 땅에 거적때기 같은 것을 깔고 담요 하나에 의지해 잠을 잤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고 있는 노동자들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고 있는 노동자들 ⓒ 송성영

 천막 옆에 임시 화덕을 만들어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노동자들
천막 옆에 임시 화덕을 만들어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노동자들 ⓒ 송성영

잠자리를 털고 나온 사람들 중에 몇몇은 천막 한 옆에서 불을 지펴 짜이며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젊은 노동자들은 웃통을 벗은 채로 찬 물에 세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천막 안으로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미안해 주변을 머뭇거리고 있다가 용기를 낸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침구들 사이에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노동자가 보인다. 내가 사진기를 꺼내 보이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찍어도 상관없다는 표정을 내보인다. 천막에서 나오는데 한 중년 사내가 손에 짜이 잔을 내민다.

 허름한 천막 속소에서 옷을 입고 있다가 환하게 웃어주는 네팔 노동자
허름한 천막 속소에서 옷을 입고 있다가 환하게 웃어주는 네팔 노동자 ⓒ 송성영

"짜이?"
"고맙습니다."

이들 노동자들은 열 예닐곱 돼 보이는 아이에서부터 5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보이고 있다. 이들 중에 반 수가 무비자로 국경을 넘어온 네팔 노동자들이다. 거의 다 영어를 할 줄 모른다. 네팔 노동자들 중에서 영어를 좀 하는 사람들은 코사니 호텔 주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일하고 있다. 이들 아스팔트 노동자들 중에 십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안다. 그는 아스팔트 노동자들 중에 나와 간단한 영어로 대화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를 통해 이곳 노동자들 중에 네팔 사람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인도 사람들은 배불뚝이들이 많은데 일당벌이 노동자들은 대부분 마른 체구다. 본래 검은 피부인데다가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유난히 피부가 검다.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흰 치아가 인상적이다. 그들은 평소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내가 웃거나 인사하거나 사진기를 들이대면 그제야 환하게 웃는다. 그렇게 웃으며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틈을 주지 않는다. 허락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힘든 일상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웃을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사진기 앞에서는 웃는다.

'그들은 힘겨움 일상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그들이 깔아놓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그들을 만나면서 그 표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 사진기에 익숙해지면서 사진기 앞에서도 본래의 표정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환하게 웃던 사람들에게서 굳은 표정, 웃지 않는 표정이 나왔다. 그 표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했다. 미소 짓는 것 같았지만 미소 짓는 게 아니었다. 그 미소 속에서는 가난한 운명에 대한 슬픔과 분노심이 깃들여 있었다. 오래된 영화, '25시'의 마지막 장면에서 웃을 수 없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억지로 미소 짓고 있는 주인공 안소니 퀸의 표정을 연상케 했다.

 미소 짓고 있지만 행복한 미소처럼 다가오지 않는 일당벌이 노동자. 이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미소 짓고 있지만 행복한 미소처럼 다가오지 않는 일당벌이 노동자. 이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 송성영

어느 사진작가는 고가의 사진장비를 메고 세계의 오지를 다니며 '가난한 삶속에서 웃음을 잃지 사람들, 그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본다'라고 사진 설명서를 거창하게 달아놓기도 한다. 이들 아스팔트 노동자들과 친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에서 그들을 만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말에 의문을 던진다. 적어도 이곳 북인도 코사니에서 내가 만난 가난한 노동자들은 평소에 잘 웃지 않는다. 다만 사진기 앞에서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내가 인도 열차를 타고 지나치며 노동자들의 환한 웃음을 보면서 느꼈듯이 그 사진가의 '희망'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느끼는 설명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진기로 잡아낸 한 순간의 표정이 살아온 한 생의 표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일상의 표정을 보게 되면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덧붙여 놓을 수 없다.

 일하다 말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는 노동자들
일하다 말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는 노동자들 ⓒ 송성영

 고된 노동이 남긴 흔적들. 건설기계가 할일을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아스팔트 콜타르로 신발이 남아나질 않는다.
고된 노동이 남긴 흔적들. 건설기계가 할일을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아스팔트 콜타르로 신발이 남아나질 않는다. ⓒ 송성영

인도의 아스팔트 노동일은 국가사업이라 나름 일당이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보통 하루 일당 500루피(우리 돈으로 1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는데 가텀씨 말로는 중간에서 누군가가 200루피 정도를 소개비 등으로 가로채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난한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없어 서로 하겠다고 난리라는 것이다.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기 위해서는 암 발생 위험이 높다는 아스팔트 콜타르를 장작불에 녹인 다음 파석과 섞어 도로에 펼쳐 놓아야 한다. 그 과정을 일일이 노동자의 힘으로 한다. 그러다보니 끈적끈적한 콜타르가 달라붙어 신발이 남아나질 않는다. 보통 처음부터 끝까지 건설장비를 이용해 아스팔트를 깔지만 여기서는 마지막 도로를 다지는 작업을 제외한 모든 일을 노동자들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먼 길을 돌아 산책길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노동자들은 하루 일당벌이를 시작한다. 그들은 종종 나와 마주치면 일하다 말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 모바일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는 십장으로 보이는 사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시골 사진사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사진기에 담고 일하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사진을 다 찍고 나면 친구처럼 지내자고 했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서고 그들은 힘겨운 노동일을 계속해야 한다.




#산책길#아스팔트 노동자#미소#노동자들의 희망#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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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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