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이 말살당하는 치욕스러운 굴종의 시절을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꾹꾹 슬픔을 누르는 말투로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21일 부산대 10·16 기념관에서 열린 고현철 교수의 영결식은 슬픔과 다짐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지난 17일 고 교수는 총장 직선제와 대학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이 대학 본관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전국교수장으로 열린 이날 영결식에서 교수단체 대표들은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민주주의 회복을 외쳐야 하는 현실에 울분을 터트렸다.
최근호 전국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 상임회장은 "고인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바쳐서 우리나라가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나 독재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었다"면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시도하는 모든 세력에 대항하는 힘을 결집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이날 자리는 고 교수를 죽음으로 내몬 교육 당국을 향한 성토의 장이기도 했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교수연합회 이사장은 "국립이든 사립이든 총장직선제는 대학 자율성의 상징"이라며 "교육부가 대학과 함께 이 자율성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까 하는 데 머리를 맞대었다면 지금 대학들은 대학 선진화를 멋지게 구현하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제 유서로 남은 고 교수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약속이 뒤를 따랐다. 권진헌 거점국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 상임의장은 고 교수의 영정을 향해 "당신이 감당한 희생을 당신만의 몫으로 버려두지 않겠다"면서 "온몸 부서뜨려 전하고자 한 당신의 숭고한 뜻을 새겨 대학민주주의 회복과 실현을 위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한 양지석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장은 "교수님의 유지를 받들어 새벽별을 깨우는 효원의 종, 시대의 새벽을 깨우는 민주의 종을 울리겠다"고 다짐했다.
고 교수의 부인은 유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고인이 대학의 민주화와 민주사회 실현이란 소망을 가지고, 자신의 순수한 뜻을 아주 힘겹게 펼쳤다"면서 "남은 저희 가족들은 그런 고인의 깊은 고뇌의 뜻을 받들면서 하나님 안에서 강건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500여 명의 추도객이 국화 한 송이씩을 고 교수의 영전에 올리면서 1시간 40분 가량의 영결식은 끝을 맺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교정으로 운구 행렬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앞장 선 고 교수의 마지막 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연신 빗물과 뒤섞인 눈물을 닦았다.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고 교수의 하굣길을 배웅하며 모두 고개를 숙였다.
고 교수의 유해는 영락공원에서 화장 절차를 거친 뒤 기장군 부산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부산대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고 교수 장례가 끝난 뒤에도 본관에 설치한 분향소를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다. 또 고 교수를 추모하는 비석 건립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