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 사태 부실 대응으로 경질된 자리에는 17년 만에 의사 출신 후보자가 내정됐지만, 복지에는 '문외한'이었다. 의료 분야 역시 '의료 상업화'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24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정진엽(60) 후보자의 '의료 편향성'을 우려했다. 분당서울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의사 출신으로 지난 30년간 의료계에만 종사했을 뿐, 복지 분야에서는 별다른 행보를 보인 게 없어서다. 후보자 역시 이점을 인정했다.
'복지 문외한'에 대한 우려는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메르스 사태 후속 대처 때문에 보건 전문가를 임명했지만, 보건복지부의 많은 업무가 복지 분야"라며 "후보자는 이 분야에 비전문가라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물었다.
이에 정 후보자가 "의원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복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사실"이라고 답하자 김 의원은 "그렇게 답하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 다시 정 후보자가 "하지만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복지 분야 학습도 열심히 하겠다"고 해명하자, 김 의원은 "이미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공부가 되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자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분야가 워낙 넓고 깊어 아직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야당 간사인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평생 임상 의사로 살아오신 후보자가,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국민 행복과 직결된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수행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는지 우려가 된다"며 "(연금전문가) 문형표 장관이 메르스 대응 부실로 물러나고 후임 장관은 복지는 전혀 모르는 문외한을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 인사가 왜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치는지 걱정이 많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병원 늑장 공개는 매우 잘못... 공공의료 체계 갖추겠다"현시점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는 "메르스 후속 대책 수립과 그로 인한 보건복지부 신뢰 회복"을 꼽았다. 그는 메르스 대응의 문제점으로는 ▲ 콘트롤 타워 부재와 ▲ 역학조사관 등 일선에서 일해야 할 전문가의 부족이라고 답한 뒤 "향후 투명한 위기 대응 체계를 갖추고 공공의료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의 병원 이름 늑장 공개에 대해선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정 후보자는 "신종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정보를 지나칠 정도로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방역) 체계 개편하는 데 (정보 공개) 시스템 확실히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의료계와 보건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원격의료'와 관련해서는 "대도시가 아닌 도서·산간 지역에서만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부 입장을 내놨다. 그는 "원격진료는 공공의료 발전과 의료세계화를 위해 아주 좋은 수단"이라고 설명한 뒤 "근본 목적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것이기에 대도시엔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도서·산간 지역 주민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등의 취지로 원격의료를 추진 중이나,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이들은 원격의료는 ▲ 오진 가능성이 크고 ▲ 이로 인한 의료사고 시 책임 소재 불분명 한데다 ▲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으며 ▲ 장비 구매에 따른 의료비 상승을 불러올 것이라고 본다. 결국엔 원격의료 장비를 생산하는 IT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을 거라고 주장한다.
건강보험 폐지 등 의료민영화에 대해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정 후보자는 "건강은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며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가급적 모든 분께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의료영리화 반대' 밝혔지만, 병원장 시절엔 '의료 상업화 몰두'
하지만 앞서 답변과 달리 정 후보자가 분당서울대병원 재직 당시에는 의료상업화에 몰두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후보자가 분당서울대병원장 재직 동안 진료비 부당청구 환수액이 8억 1만 원에 달했다"며 "이는 국공립병원의 수장으로서 의무와 역할을 방기하고 수익에 몰두한 병원경영을 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의원은 "같은 시기 분당서울대 병원의 응급실 과밀화가 높아지고, 이로 인한 대기 시간이 길어져 응급의료기관 평가가 해마다 하락한 데 반해 IT분야에는 공격적으로 투자했다"며 "메르스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응급실 포함 공공의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은데 후보자의 병원장 재임 시절에는 오히려 이 부분이 악화됐다"고 따져 물었다.
이에 정 후보자는 "2008년보다 2013년에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점점 증가했고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문제"라며 "앞으로 이 분야는 더욱 신경 써 나가겠다"고 답했다.
병원장 재임 시절 병원 내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진 점도 질타의 대상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은 "서울대병원의 비정규직 비율은 후보자 재직 시절에 40%로 늘어났고 오히려 퇴임 후에 줄어들었다"고 지적한 뒤 "동시에 같은 기간 병원 매출은 상당히 늘었는데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남 의원은 "병원에 비정규직 비율 높으면 환자의 생명과 안전 지킬 수 없다"며 "현재 보건복지 종사자 중 비정규직 비율 상당한데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정 후보자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던 것에 대해선 이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